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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진문화연구소 Aug 05. 2019

[8호] 나루생활사_변함없는 익숙함


변함없는 익숙함


군자동에서 벌써 12년째다. 2007년 난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전역 후 학부 복학, 대학원 그리고 짧은 대학 강사 생활까지 모두 이곳에서 보냈다. 12년 동안의 군자동 주변은 변하지 않은 것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 난 변하지 않은 풍경에 대해 이야기 할까 한다.지금 살고 있는 군자동 옥탑방에서 단 한 번도 이사를 가지 않았다. 이제는 이 주변이 익숙하다 못해 그냥 당연한 풍경이다. 의식의 흐름이 아닌 신체의 흐름으로 동네를 돌아다닌다. 매일 같은 거리를 걸어 다니면 당연히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다.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단골 식당이 사라지는 것은 참을 수 없이 슬픈 일이다. 같은 자리에서 3개의 간판을 바꿔 단 헬스장부터 3개월 장사하고 사라진 태국음식점까지. 군자동일대 자영업의 흥망성쇠에 대해 글을 써도 족히 며칠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크고 작은 변화 속에 거의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풍경이 있다. 어린이 대공원이다. 서울시내에 몇 없는 대형 녹지공원이자 어린이들의 성지. 봄이면 커플들로 여름이면 분수 앞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로 항상 붐비는 장소. 난 사실 대공원을 그리 자주 가지 않는다. 산책을 그리 즐기지 않는 것도 있지만. 너무나 당연해 오히려 일상에서 잊고 사는 것 같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63빌딩을 더 안 가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가끔씩 생각을 정리하거나 사람에 치여 답답할 때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들을 보러 간다.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해질녘 선선한 바람이 불어 올 때, 동물들의 퇴근시간 즈음 찾아 간다. 한바탕 단체 관광객이 빠져나간 후의 공원은 꽤나 공허하다. 사람에 가려져 있던 풍경이 드러날 때의 대공원은 묘한 편안함을 준다.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공적인 것으로 꾸며져 있는 풍경들. 그런데 그 풍경이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하다. 오히려 빌딩숲 안에서 완전한 자연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정성이 보이는 구조물들과 적당히 사람 손이 탄 입체 조각들은 오랜만의 만남에도 어색하지 않게 맞이해준다. 인체비례가 어긋난 어색한 돌 조각, 입구부터 웅장하게 서있는 대형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는 처음 어린이 대공원을 마주한 기분으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익숙하게 배웅한다. 


변함없는 익숙함은 편안하다. 새로 적응할 필요도 없이 따듯하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두커니 옆에서 자리를 지켜준다. 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휘몰아치는 파도 위에 끝없는 서핑을 하는 것 같다. 급변하는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정신과 육체를 집중하며 균형을 잡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파도타기는 때로는 포기하고 싶지만 어려운 파도를 넘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 뽕에 맞아 포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변화무쌍한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나에게 주변의 변함없는 익숙함인 것 같다. 굳이 애를 쓰고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곁에 머무르는 것. 머릿속이 3살 조카의 크레용낙서 같이 혼란스러워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시간을 내어 주는 곳.

내일은 14시부터 16시까지 군자동 주민센터에서 벌어지는 민방위 4년 차 훈련 때문에 17시에 퇴근하는 동물들은 만날 수 없지만 글 쓴 김에 대공원을 만나러 가야겠다.


※ 리빙포인트

어린이 대공원 내 동물원 운영시간 :10:00~17:00

어린이 대공원 운영시간 : 05:00~22:00


노승표 | e-mail : rosna@naver.com

1. 어느 순간부터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쭈뼛거리는 중
2. 문제들에 대한 사실을 붓으로 희롱하며 그것들과 마주하는 중
3. 내가 온전히 그것들과 경계를 두고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고민 중
4. 현재 현실 속에서 현실과 아웅다웅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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