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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진문화연구소 Nov 06. 2019

[11호] 나루생활사_모든 사람은 스토리가 있다




나루생활사



모든 사람은 스토리가 있다.


건국대학교에는 일감호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다. 일감호는 학교 가운데에 있고 그 크기가 너무도 커서 캠퍼스에 오는 사람이면 반드시 한 번은 지나치는 곳이다.     


학교에 다닌 지 어언 3년, 매일 마주치는 일감호의 풍경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사시사철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호수의 경치에 감탄하고 지나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호숫가에 있는 낯선 사람들이다. 건국대는 주택가와 번화가가 인근에 있어서 캠퍼스를 찾는 외지인이 많다. 일감호 벤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벤치에서 노래 들으시는 어르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학생들, 서로 사진 찍어주는 연인들, 대학 탐방 온 고등학생들까지 각자 다른 이유로 캠퍼스를 찾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사람 구경을 좋아한다.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디에 있든지 내 주위에 있는 낯선 이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겨한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그들은 왜 여기를 찾았는지, 무엇을 하다가 이곳에 왔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그 사람의 표정을 보고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본다. 상상이 깊어질수록 낯선 이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간다. 가끔은 충동적으로 그 사람에게 대화를 걸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특히 건대에서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넨다면, 길을 묻는 게 아니라면 십중팔구 전도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거다.     


그래서 ‘Humans of KONKUK’을 만들었다. ‘Humans of KONKUK’은 건대와 건대 주변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이들에게 들은 스토리를 전하는 웹 매거진이다. 인터뷰 대상은 길에서 마주치는 누구든지 될 수 있다. 인터뷰 내용은 ‘방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부터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인상’, ‘최근 고민’, ‘죽을 뻔했던 순간’까지 어떤 내용이든 주제가 될 수 있다. 여기까지의 설명으로는 어떤 매거진인지 잘 모를 수도 있다. 조금 더 궁금하다면 이 글 마지막에 있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주소로 들어가서 글 몇 개를 읽어 보는 걸 추천한다.     


이러한 매거진 포맷은 내가 처음 만든 건 아니다. 2012년 뉴욕에서 처음 ‘Humans of New York’이 시작됐고, 이에 영감을 받아 전세계 여러 도시에서 ‘Humans of OOO’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나도 ‘Humans of New York’과 ‘Humans of Seoul’를 우연히 접했는데, 한 번 읽기 시작하니까 계속 읽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짧은 글을 읽었는데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나도 이런 일을 하고 싶었다. 대중매체에서 비추는 유명인의 이야기나 극단적인 일반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앞서 언급한 나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Humans of KONKUK’을 시작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할 때는 걱정이 많았다. 사람들의 거절이 두려웠다. 인터뷰 방법에 대한 코칭을 해줄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낯선 사람에게 접근할까 고민하다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무작정 캠퍼스로 갔다. 그렇게 인터뷰하겠다고 친구와 함께 캠퍼스에 나갔다. 하지만 우린겁쟁이였다. 우리 학교 캠퍼스에는 낯선 이에게 전도하려고 접근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그 사람들로 의심받을까 걱정하기도 했고, 거절당하면 상처받을 것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우린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누가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고 잘 받아줄까 얘기하면서 머뭇거리다가 그냥 일감호 한 바퀴만 돌고 왔다. 그러다 결국 청심대 벤치 앉아있는 분이 우리 인터뷰를 거절하시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가가서 첫 번째 인터뷰를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거절하지 않으실 것 같은, 어딘가에 앉아있는 사람들부터 접근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멈춰 세워서 인터뷰하기도 하고,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싶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전보다 수월하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대화를 이끌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인터뷰 나갈 때 거절에 대한 두려움만 있었던 건 아니다. ‘사람들이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있었다. 나였어도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쉽게 해주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솔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일감호 벤치에서 만난 할머니는 가족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외로움, 그리고 친구를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셨다. 어떤 대학생은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슬픔이 너무 무거워서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가,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이 있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지금이요.”라고 답하면서 현재 겪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 다시는 안 볼 사람이기에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한다.


내가 사실은 굉장히 외롭거든자식이 있고 손주가 있고 남편이 있어도 외로워.

정말로 내 속을 말할 수 있는 사람 한두 명만 있어도 돼.

그 사람도 정말 진심으로 말할 수 있고나도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그러면 돼.

내가 살아보니까 그러더라고모르지 뭐할머니 말이 맞는지.”     


“모든 사람은 스토리가 있다.”     


‘Humans of KONKUK’의 모토다. 인터뷰 요청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지 고민하고 주저한다. 그럴 때면 이 모토를 말씀드린다. 모든 사람들에겐 타인과 공유할 만한 가치 있는 스토리가 있다. 다만 스스로 그 사실을 모르거나 들려줄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이찬호 | Humans of KONKUK 초대 편집장

건국대에 진학하면서 광진에 거주한지 3년. 사람, 강연, 러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글이 실릴 때면 논산 훈련장 바닥에서 구르고 있겠지요. 육군 복무를 마치는 2021년 5월 광진에 복귀 예정입니다. ‘Humans of KONKUK’은 건국대와 광진구를 기반으로 한 스트릿 스토리 매거진으로,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과 모습을 담아냅니다. 건국대학교 중앙동아리로 건대 학생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 e-mail : clee17@konkuk.ac.kr
· Instagram : humansofkonkuk
· Facebook : KonkukHu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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