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를 떼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위태롭기 그지없다. 사실 일어서 본 적이 없으니 넘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딛어보자. 어쩌면 가벼운 호기심과 약간의 용기가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광진구’라는 지역과 사람, 사람과 문화, 문화 그리고 다시 지역까지. 그 사이사이를 들여다보는 지역문화 월간지 <나루사이>. 매 호 다양한 지역 문화 콘텐츠를 담아내며 드디어 대망의 20호를 발행하게 되었다. ‘창조는 고민 속에서 나오고 발전은 고생 속에서 움튼다.’는 말처럼 <나루사이>와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통을 함께한 두 기획자가 있다. <나루사이>의 시작을 함께한 기획자들을 만나 첫 걸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문지은 광진문화재단에서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웃음) <나루사이>를 만들고 있는 문지은이다. 2016년 재단에 입사해 2017년부터 지역문화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실 사업 초반에는 이렇게까지 꾸준하게 월간지를 만들 계획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벌써 3년차가 되었다. (웃음)
신보경 2018년, 광진문화재단에서 <나루사이> 1호부터 6호까지 참여했던 신보경이다. 오늘 인터뷰를 통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기분이 참 좋다. 현재는 타 기관에서 문화예술교육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나루사이>를 통해 깨달은 기록의 중요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웃음) 웹진(Web-zine) 사업을 자원해서 담당하고 있다.
현재 <나루사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 선배님들을 인터뷰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웃음) 이제 나루사이는 대망의 20호를 바라보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루사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문지은 인터뷰를 앞두고 오랜만에 2017년, 2018년 지역문화 사업 계획서를 들춰보았다. 그때만 해도 <나루사이>가 지금의 목적과 방향은 아니었다. 원래 취지는 매 달 2회씩 진행됐던 ‘작당모의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다양한 광진구의 이야기 중 하나를 콘텐츠로 뽑아 이에 대해 리서치하고 연구하는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작당모의 프로젝트’를 이어가던 중 지역을 깊게 다루는 콘텐츠에 대해 참여자들이 지루해하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재미없어 하는데, 이와 관련한 책을 만든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보경 맞다. 그래서 당시 급하게 방향을 변경했고, (웃음) 지역의 숨은 공간과 지역 예술가들을 소개하게 되었다. 이 방향이 당시 우리의 상황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더불어, 지역문화 사업의 초창기였던 2017년 연말, <문턱 없는 회의 – 인터뷰 북>을 발행해 배포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상황과 계기로 갑작스레 <나루사이>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얼마나 느닷없었는지 <나루사이> 1호를 만들 때에는 촬영 작가님도 없어서 내가 직접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글도 썼었다. (웃음)
<나루사이>에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당시의 냉철한 판단으로 오늘날의 <나루사이>를 만날 수 있음에 두 분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웃음) 그렇다면 다양한 매체 중 잡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문지은 일단 내가 넘겨보는 책 자체를 굉장히 좋아한다. (웃음) 잡지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책으로 만들어 놓으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역의 다양한 공간에도 둘 수 있고. 그리고 지금은 흔해졌지만, 그 무렵에는 재단에서 지역문화로 아카이빙을 시도하는 곳이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해보지 않은 분야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되었다.
신보경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웃음) 위에서 언급했던 <문턱 없는 회의 – 인터뷰 북>을 만들 당시 지역 내에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고, 잡지가 점점 손에서 손을 타면서 책 내에 소개된 공간들을 찾는 이들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가 모르는 순간에도 책을 통해서 계속 만나고 있었구나 하면서 잡지의 파급효과를 기대하게 되었다.
우리가 모르는 순간에도 책을 통해서 계속 만나고 있었다.
제작하면서 <나루사이>의 형태도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에는 광진구에서 발행하는 구청 홍보 소식지 ‘아차산 메아리’처럼 신문 형태의 얇은 일회성 잡지를 생각했는데, 편집 디자인을 맡아주신 디자인스튜디오 ‘A32’에서 굉장히 고급스럽고 예쁘게 만들어 주셨다. 우리 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정말 마음에 쏙 든 잡지였다. (웃음) 그렇게 지금의 나루사이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문지은 맞다. 그런데 <나루사이> 1호를 발행하고 보니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사람들이 무가지인 줄 모르고 가져가지 않는 불상사가 생겼다. (웃음) 보다 편히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2호부터는 표지와 내지를 비교적 저렴한 것으로 바꾸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주변에 <나루사이>를 접하는 분들 모두 빠지지 않는 칭찬이 디자인이 예쁘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흥미로운 에피소드였다. (웃음) 개인적으로 디자인만큼이나 정감 가는 것이 <나루사이> 이름이다. <나루사이>를 작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신보경 당시 여러 의견을 모아 매주 월요일에 회의를 진행했다. 이름이 나와야 하는 시한이 굉장히 촉박했기에 앉으나 서나 계속 고민을 더 하면서 10개 정도 이름을 지었다. 그중 가장 유력한 후보에는 ‘광진사이’가 있었다. (웃음)
문지은 사실 어떻게 이름을 지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는데, ‘광진사이’를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웃음) 지역문화 관련 보고서를 만들려고 했을 당시 지었던 이름이 ‘나루 실험실 – 사이 프로젝트’였는데, ‘사이’라는 글자를 살리고 싶었었다. ‘너와 나 사이’, ‘지역과 나 사이’가 담긴 의미로 서로의 간격을 좁혀간다는 뜻을 담고 있었는데, 이를 살려 지역의 사이사이를 들여다보는 월간지 <나루사이>로 최종 결정되었다.
역시 타이틀을 정하는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루사이>에 대해 깊숙한 질문을 드리고 싶다. 기획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신보경 책을 만드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편집 과정이 어려웠고 부담스러웠다. 또, 사람을 섭외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모든 것이 생소했기에 거절하는 분도 많았다. 이번 호에는 어떤 분을 섭외해야 할까 스스로 찾아보고,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발굴한 문화 주체들이 쌓여 가다보니 나중에는 인터뷰 순서가 밀려있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웃음) 다시 돌이켜봐도 그간의 서러움을 날려 보내는 벅찬 순간이었다.
문지은 나는 내부적으로 ‘지역문화 월간지를 만드는 것’, 이 자체를 설득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재단에서 월간지를 만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사진이나 디자인에 예산을 많이 들여 홍보물(인쇄물)을 제작해본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돈을 지불하고 사진을 왜 찍느냐’, ‘더 적게 받고 내가 찍어주겠다’ 등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무형의 가치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이렇게 힘든지 처음 알았다. <나루사이>에 실리는 사람들은 본인의 얼굴도 나오고, 공간도 소개되는데 적어도 당사자가 기분 좋게 받아볼 수 있는,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나루사이>가 되고 싶었다.
인쇄소 사장님들과의 눈치 싸움도 많았다. <나루사이> 자체가 후가공이 많아 괜한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웃음) 독자 분들이 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나루사이> 1호부터 13호까지 나루살롱 코너에 절취선을 넣었는데, 정해진 예산 안에서 추가 작업을 요청하니 짜증을 많이 내셨다. (웃음)
그럼, 이제 <나루사이> 콘텐츠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나루사이>에는 나루살롱, 특별기고, 칼럼, 인터뷰, 문화 소식 등 지역의 이야기가 알차게 담겨 있다. 처음 <나루사이>를 제작할 때 카테고리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문지은 <나루사이> 작명만큼이나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 카테고리다. 몇 주간 고심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 1호 잡지의 기준이었던 16페이지를 콘텐츠별로 나누었고 작품 소개, 공간 인터뷰, 에세이는 필수로 넣고 싶었다. 지금은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들도 많았다. (웃음) 회의를 거듭하여 어렵사리 카테고리가 확정되었다.
신보경 당시 확정된 콘텐츠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매 달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소식들이 담긴 ‘들여다보기’, 지역 문화 공간이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나루의 발견’, 광진구에서 활동 중인 청년/신진 예술가들을 위한 ‘나루살롱’. 자유로운 기고지 ‘나루생활사’가 있었다.
마침 인터뷰를 진행하는 오늘, <나루사이> 19호가 발행되었는데, 말씀주신 구조들이 크게 변하진 않은 것 같다. <나루사이>의 첫 시작을 듣다 보니 왠지 살아있는 역사를 마주하는 느낌이다. (웃음) 혹시 추가로 다뤘으면 하는 코너가 있는지
신보경 2018년 원래의 기획대로 광진구 연구 보고서를 이젠 다루어도 좋을 것 같다. 몇 개월에 한 번씩 특별 호여도 좋으니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는다. 지역 주민 중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칼럼을 모아서 실어도 좋고. 형식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방향으로 나아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문지은 사실 지금의 <나루사이> 카테고리와 형태는 20호를 끝으로 안녕할 생각이다. 매 년 새로운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재단에서 이제 들여다 볼 만큼 다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그리고 초창기와는 달리 이젠 다른 문화재단에서도 지역문화 사업의 결과물로 잡지를 많이 발행하고 있고, 지역 청년들이나 문화그룹에서도 자체적으로 월간지를 만들곤 하더라.
그래서 내년에는 <나루사이> 이름은 그대로 가되 포맷을 바꿔 매 호 특정 주제를 가지고 풀어나갈 생각이다. 또, 지금까지는 내부적으로 인터뷰 섭외부터 취재, 편집까지 모두 도맡아 했는데 2021년에는 지역에서 <나루사이> 기획에 의지가 있는 분들을 모아 매달 바뀌는 편집위원회를 구성해보면 어떨까 싶다.
2021년을 앞두고 새롭게 바뀔 <나루사이>가 한층 더 기대된다. 추가로 바뀌는 계획은 또 없는지
문지은 영상 매체를 추가해볼 생각이다. 지면으로 만나던 <나루사이> 인터뷰를 짧게는 30초에서 1분 사이의 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시도하려 한다. 그리고 웹진 제작을 고려하고 있다. 물론 잡지 형태의 <나루사이>를 없애는 것은 아니고 함께 가려 한다. 아무래도 책의 특성상 한 번 인쇄물이 나오면 수정이 불가한데, 웹진은 이 부분에서 아주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트랙킹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나루사이>가 매 달 1,000부씩 서울 전역에 배포되고 있는데, 정말 1,000부를 모두가 읽을까에 대한 갈증이 계속 있었다. 또한, 매 달 우리 PM들이 양손 가득 책을 들고 공간을 일일이 찾아가는 배포 문제도 크게 한 몫 한다. 이런 고민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웹을 활용해보면 어떨지 고민하고 있다.
<나루사이>를 유튜브로 볼 수 있다니! 설레는 마음이다. (웃음) 질문을 다시 <나루사이> 콘텐츠 이야기로 돌려 보고자 한다. 두 분에게 있어서 <나루사이> 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 혹은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신보경 <나루사이>하면 역시 디자인스튜디오 ‘A32’가 아닐까 싶다. 초창기 <나루사이>를 제작하는데 가장 기여도가 큰 팀이다. 1호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고. 그 외에는 MK갤러리, 닻 프레스, 화양사진관 등. 사실 모든 곳이 다 기억에 남는다. (웃음)
문지은 한 공간을 꼽는 것은 너무 어렵다. 정말 안 아픈 손가락이 없을 정도로 (웃음) 다 좋았다. 사업의 특성상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나루사이>부터 ‘작당모의 프로젝트’까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웃음) 지금까지도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추려보자면 아무래도 제작에 힘써주시는 분들이 마음에 남는다. 항상 고생해주시는 우리 PM 분들과 매 달 다음 호를 기대하게 만드는 디자인스튜디오 ‘A32’, 언제나 좋은 사진을 찍어주시는 ‘느린나무 작가님’까지.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다.
<나루사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 돌아왔다. 광진구의 문화예술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문지은 드디어 화살이 내게 왔다는 생각이 드는 질문이다. (웃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르지 않는 샘물 같다. 문화 자원과 청년, 지역에 관심 있는 활동가들이 정말 넘쳐나는데 이들을 담기에는 광진구라는 그릇이 아직 작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길을 열어주면 날아다닐 분들이 눈에 훤한데 참 아쉽다. 부디 문화/예술을 대하는 마음에 있어서 광진구의 품이 더 넓어지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문화/예술에 대한 자원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잘 담아낼 수 있을지, 함께 성장하고 키워나갈지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신보경 초창기 인터뷰를 다니며 광진구 문화예술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불모지다’, ‘없다.’ 등의 답변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현재는 작은 모임들도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고, 점차 재미있는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앞으로의 광진구가 정말 기대된다.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다. <나루사이>가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이 있는지
신보경 <나루사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갔으면 좋겠고 나아가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이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늘 마음으로 응원하겠다.
하고 싶은 것, 담고 싶은 것들을 잘 지켜내서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는 잡지로 남았으면 좋겠다.
문지은 지금처럼만 흔들리지 않고 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것, 담고 싶은 것들을 잘 지켜내서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는 잡지로 남았으면 좋겠다. 내용, 퀄리티, 디자인 그리고 나까지, (웃음) 모두 한 결 같이 잘 버티기를 바란다.
글 이슬기 사진 느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