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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휠체어를 타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의 대화가 재미있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동안 느끼지 못하던 불편함을 느꼈다. 길이 불편했다. 울퉁불퉁 매끄럽지 않아 위험하게 느껴졌다. 길에서 건물로 향하는 입구에는 얕은 턱이 있었는데, 걸을 땐 인지하지도 못하던 턱을 휠체어와 함께 가니 높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친절한 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사로로 길을 이어준다면 바퀴의 움직임이 한결 수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사로, 이 작은 ‘오르막 길’은 누군가에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경사로에 대해 관심이 시작되었다.
광진문화재단에서 <나루사이> 인터뷰 문의가 왔다. 책방을 열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인터뷰라면 이루어 놓은 것이 많아 해줄 수 있는 말이 많거나, 특정 이슈에 관하여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책방을 시작해 이렇다 할 경험은 전무 했고, 전달할 메시지나 콘텐츠는 더욱이 없었다.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누군가 책방을 궁금해 해준다는 일이 사뭇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걱정보단 호기심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잘 보이고 싶어서 넘치는 말을 할 땐 버벅거렸고, 질문을 통해 책방의 의미와 목적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시간이 떨려서 어떻게 인터뷰를 마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루사이>는 광진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광진구의 지역문화 잡지로 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안내하고, 문화/예술인들과 소상공인을 조명하는 잡지다. 그날 서툴렀던 첫 인터뷰와는 달리 지면으로 받은 인터뷰는 매끄럽고 친절했다. 질문에 답을 했을 뿐인데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답은 의미가 되었고, 작은 의미들이 모여 책방의 이야기가 되었다. 광진구에서 책방을 운영한다는 이유만으로, 문화/예술의 범주에서 책방을 바라봐주었다. 시작하는 것에 대해 의미를 주었고, 책방을 운영하는 운영자들에 대해 조명해주었다.
이렇게 광진구 골목골목 사이 길을 누비며 경사로를 쌓아 턱을 넘듯,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왔다. 예술가, 창작자, 기획자, 자영업자, 제조업자, 활동가, 연기자 그리고 모임과 단체까지 <나루사이>를 통해 만난 사람들 모두 하는 일도, 생각도, 관심사도 달랐다. 하지만 이 잡지는 '지역에서 함께 사는 것'이라는 방향을 제시하며 각기 다른 사람들의 길을 완만하게 이어주었다. 그렇게 지역의 잡지가 보여준 관심은 꾸준하게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루사이>를 통해 만난 제작자들과 함께 광진구 경사로 부족을 이야기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책을 만들었다.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기획자와 나루사이에서 만난 예술가는 책방에서 새로운 모임을 만들었다. 사람과 책방을, 책방과 사람을 연결해주고, 그 사이 새로운 길을 놓아주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역 사이사이를 관찰하고 질문하며, 의미를 주고 함께 만들어가는 <나루사이>의 이야기가 계속되면 좋겠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여러 다양하고 새로운 사이 길들도 기대해본다.
이미지 ㅣ 광장동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책이 좋아서 책방을 시작했는데, 요즘은 책보다 사람과 생태에 관심이 더 많다.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배리어 프리, 경사로를 꿈꾸는 자영업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