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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Nov 19. 2024

영화 이야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숲에서 살고 있던 토끼들은 어느 날 문득 자살을 결심한다. 도무지 다른 동물들 등쌀에 살 곳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자가 오면 사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호랑이가 오면 호랑이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이다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숲에는 내 자리가 없는 것만 같고 그래서 결론은 이렇게 끊임없이 다른 동물들에게 치이고 자리를 내주면서 쫓겨다니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힘은 없어도 심지는 굳은 토끼들이라 어느 한 마리 변심하지 않고 다들 절벽 위로 모인다. 그리고 일제히 절벽 아래 호수로 몸을 던지는 순간 토끼들은 보게 된다. 허공에 출현한 자신들을 피해 달아나는 개구리들을.


다른 동물들에게 자리를 내주기만 하는 게 서러워 호수로 뛰어들었지만 정작 토끼들 역시 그곳에 살고 있던 개구리들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초등학생 지소는 이 이야기를 싫어한다. 지소가 이해한 게 맞다면 이 이야기는 아무리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도 어딘가에는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다. 지소가 이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자기보다 불행해 보이는 아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아이들이 토끼에 몰입할 때 지소는 개구리에 몰입한다. 초등학생 치고는 너무 비관적인 게 아닌가 싶지만 지소의 사정을 이해하면 그럴 법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는 행방불명이고 어머니는 직장이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집이 없어서 벌써 한동안 차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소가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는 이유는 바로 생일파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일파티를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는데 집이 없는 지소로서는 도저히 생일파티를 할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지소는 부동산에서 평당 500만 원이라고 씌어진 아담한 주택 사진을 보게 된다. 평당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지소는 단순히 집의 가격이 500만 원이라고 생각하고 어디서 500만 원을 구할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방법을 생각해 내는데 그건 바로 개를 훔쳤다가 주인이 사례금을 걸고 개를 찾으면 마치 자기가 찾은 양 개를 돌려주는 방법이다. 지소가 이 방법을 떠올린 계기는 다름 아닌 쓰레기장에서 개를 찾아주면 사례금으로 500만 원을 준다는 전단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지소는 친구인 채랑이와 함께 어떻게 하면 개를 훔칠 수 있을지 열심히 방법을 찾기 시작하고 마침내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기지만 사실상 그 방법은 무의미한 방법이다. 애초에 집의 가격이 500만 원이 아니라 평당 단가가 500만 원이기 때문이다. 개를 훔쳤다가 돌려주면 500만 원은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걸로 집을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지소가 찾은 방법은 개를 훔치는 데는 완벽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집을 갖는 데는 불완전한 방법이다. 지소에게 개는 집을 살 수 있는 수단이므로 이것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단을 찾는 완벽한 방법은 알고 있지만 목적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은 알지 못한다고.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목적을 이루는 방법과 수단을 이루는 방법을 종종 헷갈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지적이기도 하다. 수영은 고모의 가게를 매각하는 완벽한 방법은 찾아냈지만 결국 사기를 당해 부자가 되겠다는 목적을 이루는 데는 실패한다. 수영의 고모인 노부인은 아들이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아 부유하게 살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하는데 성공하지만 아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지소를 위해 도시락 공장에서 일하는 정현은 정작 지소에게 한 번도 도시락을 싸준 적이 없다. 딸의 행복을 위해 딸에게 다가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럼으로써 딸에게 아빠가 없는 불행을 안겨주는 대포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완벽한 방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 방법으로 인해 목적과 멀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목적이 아니라 방법에 골몰했기 때문일 것이다.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문제라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거꾸로 목적지로 인도하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영화 속에서 정현에게 가장 큰 문제는 남편의 부재나 고장난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아이들이다. 얼마든지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정현이 공중화장실에서 씻고 매일 밤 차에서 잠드는 이유는 바로 지소와 지석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 즉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끝까지 품고 견뎠기 때문에 정현은 비로소 자기가 진정으로 도착하고 싶었던 목적지에 온전히 도착한다. 반대로 방법만을 찾았던 수영 같은 이들은 문제를 아예 없애버림으로써 목적지로 향하는 다리까지 함께 치워버리고 만 것이다.


지소가 노부인에게 개를 돌려주면서 모든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은 그래서 뭉클하다. 아이는 여전히 평당이라는 뜻을 모르기 때문에 500만 원이 있으면 집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소는 노부인에게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500만 원을 받는 대신 자기가 없애버리기 위해 그토록 고군분투했던 그 문제를 다시 끌어안는다. 그것은 이제까지 목적이라고 생각했던 집이 사실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음을, 진정한 목적은 바로 가족이 서로를 위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개는 노부인에게 가족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가족을 훔쳐서 받은 돈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지소는 알았을 것이다.


영화의 서두에 나온 이솝우화에는 한 가지 뜻이 더 있다. 그건 바로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공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공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살하기 위해 뛰어든 호수에 개구리들이 살고 있었던 것처럼 집 없고 아빠 없이 고장난 차를 타고 거리를 전전하는 삶에도 행복과 감동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앞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깃든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우화와 같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전달한다. 다만 우화와 달리 이 영화는 아이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하도록 시킨다. 그 말들이 너무 직접적이고 교조적이어서 지소가 평당이라는 말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 영화의 흠이다. 그러나 그 흠은 오래 일한 배우들의 관록으로 가려진다. 오래 일한 배우들은 교조적인 말을 쉬지 않고 쏟아내는, 어른보다 더 어른 같아 보이는 아이를 표정과 몸짓만으로 다시 아이로 되돌려 놓는다. 그래서 이 영화 속에서 아이는 말하고 어른은 움직인다. 이것은 영화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뜻하지 않게 보여주는 유의미한 차이다.



2024년 11월 18일부터 2024년 11월 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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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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