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난다
예전에는 다 쓰고 난 뒤의 볼펜몸통에 연필을 꽂아 끝까지 쓰고는 했던
몽당연필
침도 묻혀가며
아직도 연필이 좋다
좋아함은 알리면 듣이 되기도
그 간 어쩌다 보니 37권의 책을 출간했나보다
처음 나온 책은 8년간 대형서점 좌대에 놓여
사람들의 눈길에 익숙해져도 졌었고
수십쇄의 출판을 이어가면서 나에게 글에 대한 의미를 가져다 주었었다
그 떄의 첫 원고부터 몇권의 책은 연필로 썼었는데
그 뒤로 또 몇권은 선물받은 만년필로
그러다 언젠가부터 컴푸터로 자리를 잡아 버렸다
담장기자가 오고가고
떄론, 우편으로 한 뭉치의 원고가 붙여지고 보내지고
수정본이 보내져온 것을 뜯을 땐 기분이 복잡했었는데,
얼마나 내 쓴 글들에 손이 봐져 있을까?
난 또 어디까지 고집을 해야할까?
이젠 시간이 흘러 현역에서 물러나거나
다른 직종에 머물러 있는 기자나 편집담당자들이
어딘가에서 연필을 보면 사서오거나 붙여주고는 한다
그 때는 선인세에 글세, 인세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었는데 ^^
언젠가부터인가 자비에 의한 자가 출판
방송도 오히려 기획료, 연출료, 쵤영료 나 기타 다른 어떤 단어로
출연하면서도, 내 노동을 하면서도 내가 지불해야하는 방송들이 적지 않나보다
책은 그냥 책인 것을
방송은 그냥 방송인 것을
책을 내고 방송을 하면 유명인, 명의로 취급되어지나보다
아니, 유명인이나 전문가보다 광고의 또 다른 모습이 되가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마지막 낸 책도 3년내외가 되어간다
매년 적어도 2편이상은 출간하고는 했었는데,
이젠 의료, 건강에 관한 책은 더 쓸것도 없고
더 현대의학에 명석한 분들의 책이 앞서기에
쓰지 않으려한다
나에 대한 이야기
에세이를 쓰고 싶어했었는데,
3곳의 출판사에서
한 곳은 요즘 이런 책 안팔려요의 직설화법을
또, 한 곳은 너무 쉽게 쓰여져서 좀 더 어렵고 내용을 구체화해서 써달라한다
또, 한 곳에서는 어제에 대한 것보다 내일의 무게감 평균수명은 늘었지만 그 만큼 그 시간만큼
내 육체를 더 끌고 가야만 하는 건강이나 삶속의 힘듬을 의사로서의 눈으로 써달라한다
다 내 희망함과는 다른 것인데
그 중 가장 맘에 드는 답은 안팔린다는 직설화법
어차피 나머지 두 곳의 답도 말만 다를 뿐 같은 뜻일 듯하니
어렵게보다는 더 쉽게 쓰고 싶고,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어제의 이야기를 쓰면 그 속에 내일에 대해 결국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철에 맞는 한 꽃축제장에 전화를 걸었다
난 그져 꽃이 피었나요를 물었을 뿐이건만, 돌아오는 답은 짜증과 조금은 약한 화를 섞인 답이 돌아온다
피었지만, 축제는 취소되었다며 쏘아붙인다
축제 취소된건 알지만, 꽃들이 어느 정도 피었냐니 취소된걸 알면서 왜 전화했냐며 끊는다
아마도, 힘이 많이 드신가보다
아니, 어쩌면 속상해서 그럴지도
내일 새벽같이 아내와 구례로 내려갈까싶다
산수유도 보고, 또 미쳐 다 보지 못한 매화도 보고
어차피 쓰면 닳는게 순리
이 정도면 인생살이 적지 않게 써먹었으니 좀 닳으면 어떠하리
바이러스에 지배당하고 싶진 않다
피한다해서 피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있는거라면, 수천명의 전염자에 사망자가 늘어나게 될까?
웬수같은 직업
어제도, 오늘도 보건소에서 그 증상이 다소 덜 의심스러우니 일선병의원으로 가라는 말에
두 분이 오셨다
한 분은 오늘이 되니 열이 떨어지고 몸이 좀 편해졌다고 전화를 주시네
오히려 내가 고맙다, 환자분의 불안감을 달래주려해도 내 해 줄것이 없는것을
내 방법이 맞는걸까?
마스크가 오히려 불안감을 더 가중하지 않을까 싶어 진료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마스크로 대화를 하면 우선 그 만큼의 거리감으로 멀어진다는 느낌도 들고
친구에게 말하니, 너 제 정신이냐며 큰일 날 놈이라고 야단을 친다
병이란 뭘까?
삶속에 관여를 주는 여러 요소중 하나인 질병
언제까지 이 이야기를 이어가게 될까?
4월 여수 진달래 축제는 불안감없이 보고싶다
태어나 처음으로 보게되는 꽃축제들
좀 더 편한 마음으로 편한 사람들 속에서
꽃을 보며 웃는 모습이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채
보게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