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아줌마는 아침나절 내내 울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하루종일 울기도 했다. 그럴 때는 실컷 울도록 내버려 둬야했다. 아줌마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요 몇일
아니 더 오래전의 그 언제부터였던가?
몇일전인지, 몇주전인지, 아니면 몇년전부터인지 모르게 마음의 침잠이 마치 질척이기만 한 늪위에 서 있듯이 조금씩 가라앉아가는 기분이다. 그 가라앉음이 요 몇일 조금은 더 빨라진걸까? 무기력함만 남아간다.
무기력은
못그리는 그림
못쓰는 글마져도 막는다
새로운 것보다 옛 시절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때 혹여라도 다른 선택의 길을 내게 할 기회나 지혜가 있었더라면 하는 의미없는 생각들의 시간이 마치 현실 속에서 가능할 것처럼 다가와진다. 갈 수록 내 의견도 없어진다. 그냥 하자면 하고, 가자면 가고, 달라면 주고, 자식이든 주변 누구든 뭘 하든 의미도 가지게 되지 않는다. 가깝고, 멀고의 의미도 사실 뭐가 다를까? 어차피 내가 아닌건 매 하나인 것을
어찌보면 현대라는 문명은 관계의 의미들이 가지는 혼동을 더 가중시켜버리고 있는지도
'우정은 감정 뿐 아니라 행동도 함께여야 한다'
반 고흐는 그림이나 그릴 것이지 말도 제법 많이 했던 듯
그의 글 속 한 문장이다
시끌벅적한 테이블위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 껏 건배를 외치는 감정이 실제의 마음이나 행동과도 같을까?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들은 내 보이지 않아도 소리만 들려도 반가움에 목청껏 짓어댄다
얼굴을 보고, 곁에 다가가면 반가움에 꼬리를 흔들고, 자다가도 뛰어나와 조금이라도 곁을 붙이려 몸위로 뛰어 오른다.
시작의 문장은 아주 오래전 읽었던 책, 몇 주전 다시 구매하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중의 문장이다. 새로운 책보다 읽었던 책들에 손이 간다. 문제는 갈 수록 더 이전에 읽은 책으로 내려 가진다. 대학시절에서 고교시절로, 다시 중학시절로 내려가며 그 때 내 모습은 어땠었던가를 생각케 되고, 고교시절 대학과 과의 선택이 만약 달랐더라면, 졸업후 전공과의 선택이나 어쩌면 인생에서 작지 않았던 선택을 달리했더라면? 삼성에서 불러주었을 때 나오지 않고, 머물러 있었더라면? 대학교단을 그렇듯 가벼이 떠나지 않았더라면? 합격증, 입학 허가증을 받아 유학을 고민할 때 그냥 현실을 무시하고 가 버렸더라면? 의미없음을 알면서도 가지게 되는 생각들 때문일까? 꿈들이 사납다.
우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
어쩌면,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너무 울어 곁으로 우는 것을 잊거나 울음에 대해 부끄러움, 손가락질을 두려워하게 된건 아닐까? 언젠가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왔다. 너 아무말 말고 그대로만 있어줘의 말 뒤에 한 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더니, 고맙다 하며 끊는다. 그러고 보면, 울고 싶어도 울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울음이 주는 여과의 능력은 아주 많이 클지도 모르는데
여과능력을 잃어가는걸까?
좋은 생각
나 스스로를 일으키기 위해 편한 생각으로 나를 이끌려 해본다
의도적으로라도
마치 달리는 경주마처럼 주변에 대한 가림막을 두르고 바라보지 않으면서
의미없는 말들은 이젠 하지 않으련다
나만 아프니까
한가롭기만 한 진료실
오히려 편하다
맘은 편하건만, 날라드는 세금이나 각종 명세서들이 한 쪽에 쌓여만 가는 현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