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그의 말들은 곧잘 여러 곳에서 응용되어지고,
가르침이나 훈계 또는, 틀림에 있어서 옳음을 비유할 때 쓰여질 때가 많고는 하다
그럴까?
그 시대의 철학자, 학자들의 말과 글들
군주와 때론 신, 계급의 절대성에 이의를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들이 이루었던 학문은 우선 그 출발 선상이 지금과는 많은 다름을 가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중 하나 '정치(politica')'에서 이렇듯이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노예이며, 날 때부터 노예인 사람들에게는 노예제도가 편리하고 정당하다'
이는 그만의 생각이 아닌 그리스, 로마의 거의 모든 지식인, 사상가, 지도자들의 생각의 출발점이었다
노예들은 나와 다른 종족이란 생각, 그리고 그 들은 마치 쥐가 어둠속에서 움식을 훔쳐 먹는 것이 자연 스럽듯 노예로 태어난 이들의 삶은 그 모습 자체가 그 들에게 자유롭고도 편한 것이기에 다른 변화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상류층, 지배층들은 기본 지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여러 부족들과 힘을 가진 토족들을 하나로 모아 만들어졌었던 국가 고려
왕건은 수 많은 결혼을 통해 지방의 토족세력들과의 연대를 꾀했지만, 고려는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안정적인 시대보다 혼란의 시대가 더 많았던 건 아니었나? 고려 시대를 잘 모르고, 분석하여보지를 못했기에 뭐라 분명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
나는 역사에 대해 깊이는 모르기에 어디까지나 얋게 가진 사견으로 글을 쓴다
틀림이 있다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넓은 재량으로 의생의 부족한 역사지식에 대하
이해를 부탁드린다.
한반도 최초로 일어난 민초의 난 '만적의 난'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라는 말로 민초들을 이끈 만적이지만,
사실 이 말은 만적이 한 말이 아닌, 중국 진시대의 진승이 농민 반란에서 처음으로 썼던 말이다
만적의 기대와는 달리 모은 수가 적었던 민초들의 난은
당시의 집권자 최충헌에 의해 너무도 허무하게 평정되 버렸다
하지만, 만적의 난을 지금도 적지 않은 역사서에서 언급됨은 최초의 민란이었기 때문만이 아닌
그 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권력자에 대한 저항의 시작, 도화선이 되었기 때문일것이다
봄이 되면 어렵지 않게 이 곳 저 곳에서 노란 민들레들을 볼 수 있다
다가가 곁에 앉아 가까이 보면 볼 수록 그 생김은 신비롭다
어느 커다란 중심이 있어서가 아닌, 서로 모여 이룬 꽃망울
누가 심어 피어남보다 어디선가 날라와 그해의 봄에 그 곳에서 피어난 꽃망울들
잔디라도 있어 누워있으면 노란색만이 아닌 흰색의 민들레도 얼굴을 간지럽힌다
언제던가 한 창 방송을 하던 시절
함께 출연했던 한 사람이 민들레의 소박함을 말한다
바보
민들레를 모르나보다
민들레를 바라보면 화려하다
색도 선명하고, 욕심으로 너 넓은 영토로 종족을 퍼트리려 한다
무엇을 보아 민들레가 소박하다 하는 걸까?
작고, 흔해서?
작지만, 단단한 꽃을 이루며 강한 힘없이도 바람을 부하삼아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는
민들레는 강하다
가평에 작게 마련한 땅위에 심은 나무들의 가지가 몇년 가지 않고 방치해두었더니
엉망이 되 버려 손을 좀 봐야할 듯하다는 이장의 전언에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젊은 후배 몇몇의 도움을 받아 가지치기를 하고 왔다
마치 이발사가 머리를 다듬듯이 모양을 이리 저리 내며 가지를 치다보니 재미가 붙는다
이 나무는 이렇게 저 나무는 저렇게
그 아래로 참 노란 또 하얀민들레들이 피어나 있다
군데 군데 흙이 파여 있음을 보니 아마도 누군가 들어와 민들레를 캐갔나보다
열쇄도 팬스도 막지 못할 힘과 매력을 민들레가 가지고 있나보다
내 할 수 있는건 뭘까?
그냥 30여년을 이어온 의생의 길만이 내 얼마 남은지 모를 시간
이어 가는게 전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