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공간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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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여백이 없는 시간이나 공간이 싫다

나도 몰랐었던 것을 군대에서 알게 된 것 중 하나

나에게 밀폐공포증이 있음을 그 때서야 알았다


재미난 건 몰랐을 때는 별 문제없이 좁디 좁은 곳에 있어도

불안하고, 답답하다 생각되던 것이

동료 군의관으로 있던 정신과 닥터에 의해

밀폐공포증 진단을 받고 나니 더 견디기가 힘들어져 버렸다


후배가 일하던 제약회사

다른 누군가의 가족사이기에 구체적 구술은 안하련다

구석, 벼랑끝에 몰려 눈물을 훔치던

그를 돕는다는게 아마도 일정 제약사에 대한 처방이

어느 순간 처방이 늘어난것이 문제가 된 것인지


한 창 쌍벌죄로 제약사와 닥터들이 문제가 되던 시절

검찰청이라는 곳에서 연락이와 태어나 처음으로 그런 곳도 가 보았다

그와 먹은 저녁 술자리의 영수증을 보이며 리베이트이야기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듯 처방이 늘어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불가한게 아니냐는 수사관의 말


영수증을 좀 더 자세히 보지 않은채 지레 짐작을 했는지

영수증 속 결제자는 내 이름 석자가 쓰여져 있다


처음보는 그에게 후배의 사정을 구차하게 이야기하며

아님을 설명한다는게 오히려 그냥 웃겼기에

더 조사 뒤 죄가 있으면 받겠다며 반나절 만에 나온 검찰정

그 뒤 사과 한 마디를 전해 들은게 없다


그 때 알았다

내게 공황장애가 있음을

애써 당당해 보이려던 사무관앞에서의 모습은 검찰정을 나온뒤

애처로울 정도로 무너져 버려 한 동안 땅바닥에 주져 앉은채

머리는 허공을 맴돌기만 했다


이유없는 부당한 대우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감

어디다 표현하고 표출할 수 없는 화남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는 불합리함들이 그냥 고스란히

내 안에 갖힌채 나 자신을 옭아메고 있었던 것을


그 옭아맴이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건만

시간이 흘러갔다해서 내 안을 떠나지 않고

시시때대로 나 아직 여기 남아있어 하며 존재를 말해주고는 한다


누군가 있어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며

수고했다 한 마디라도 듣고 싶었었던 듯 하다


내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는 것들만 해 왔던 시절

그 때부터 내가 하지 않았던

내가 못하는 것이라해도 해 보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졌었나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식당의 네프킨위에

그러다, 작은 수첩과 노트에서 스케치북으로

색연필을 사고, 물감을 사고


사람을 그려보고 싶었었다

그러다 접한 에곤 실레, 아내와 함께 들린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보다 습작앞에

여인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은 그림

왜설적 소재지만, 왜설이 아닌 사람이 느껴져 그 앞에 오랜 시간 머무니

아내는 눈치보인다며 내 옷소매를 끌어 다른 자리로 이동시겼지만

다시 찾아 그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사람의 그림

그 무엇으로도 치장하지 않은 거친 어느 누군가의 육체


때로는 혼자

때로는 두 사람의 외롭지 않음을 그리고 싶었지만


내 그림의 수준 탓인지

한 분의 왜설에 대한 그림이나 그려 올린다는 지적에

나만의 그림책 속에 넣어두고 있다


종교?

종교의 그림이나 조각들엔 오히려 나상들이 더 많건만

내가 그리면 왜설이 되나보다


누가 한다는것의 의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유명인이 그리면 대작이지만,

같은 것을 내가 그리면 낙서가 될 수 밖에


겨울이 오면 좋겠다

나목에 눈이 내려 덮히면 그 아래에 의자 하나 두고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빈 공간

여백의 곳에서 아주 오래 머물고 싶다

바쁨뒤의 허탈함일까?

토요일 진료를 마쳐가며 맘이 가라앉아간다


그 후배는 지금 어찌 살고 있을까?

오래전의 일이고, 연락이 없음은 미안해서일까?

잊혀져서일까?

아니면, 그 어려움에서 끝내는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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