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고 싶지만, 보낼 곳이 없어져 버린 사람들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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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곳에서

너무도 오랜만에

반가운 손한 분이 찾아왔다


20여년만의 만남인가?

대학을 그만두고, 현실을 무시하고 유학길에 오를지, 현실적으로 연구소로 갈지

아니면 이젠 주저 앉아 개원의 길로 들어설까를 고민할 때

한 주립대에 내 이력과 지원서를 대신 넣어주어

자신이 교수로 있던 곳으로 나를 불러주었던 선배


임상유전학, 같은 전공,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함께 했기에

때로는 의기투합을 하기도, 때로는 다른 의견들도 다툼도 많았던 시간들


가져온 위스키에 육포를 안주로

공원벤치에 앉아 오랜만에 그친 비를 즐기며 한 잔을 나누었다


갑자기 선배가 내게 따진다

너 그 때는 내가 형이더니, 이젠 선배구나

그 만큼 시간이 흐르고 우리 모습이 달라진건가?


30대, 겉멋에 겨울 때의 우리와

이젠 대학교수로 은퇴를 앞둔 중년을 넘어 장년, 노년의 모습을 보이는 선배와

한국이란 사회 속에서 버티며 나이들어온 나의 모습


늬가 어느 순간 그리 훌훌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같이 은퇴 뒤의 생활을 논했을 텐데

그 시간, 그 때는 말려도 떠남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늬가 후회하지 말 것을 바랬건만

이젠 여기도 저기도 내 집이 아닌 자신보다 부럽다한다


한 취객이 가로등에 가렸지만

희미한 윤곽으로 공원 한 컨에서 소변을 보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니 다시 30대로 돌아가게 되는건지

선배에서 형이라 불리어진다

'형', 우리도 예전에 저런 적 있었는데 기억나?

서로 내가 더 급하니, 먼저 망보고 있으라 했던 그 때가


형은 우리가 그럴 때가 있었나?

에이, 나 아냐... 너 누구야, 누구와 그렇게 돌아다닌거야?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다


때로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어도 기억은 서로 다르다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만남은 시간이 지나도

지루함없이 이어지게 되는걸까?


형의 기억 속 일들 중엔

내 기억에서 잊혀진 것들도 있고,

왜 그걸 잊었어 하며 따지게 되는 기억들 속에 그 날의 밤이 깊어갔다


마지막 기차로 여동생이 사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형과

택시를 탔다


보름이라는 격리의 시간, 처음엔 어색하고 답답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그 보름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한다

돌아가면 다시 보름간 그 행복의 시간들이 오히려 기다려진다는 형의 말


그 만큼 지쳐보인다

기차에 오르며,

우리 다시 볼 때는 아마도 아주 많이 달라져 있겠지?

그래도, 다시 보자는 형의 말뒤에 이어지는 볼 수 있겠지?


그렇게 20몇년의 시간은 돌아왔다가

돌아가 버렸다


그 날밤 꿈 속에 대학 캠퍼스

연구실에서 함께했던 동료 몇몇이 보인다


오랜 비가 그쳤다

편지라도 보낼 수 있다면 보내주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오르지만 주소를 모르겠다


이번주말이면 휴가지만 아직 어디를 갈지 정하지를 못했다

어딜 갈 수는 있을까?

가고 싶은 맘은 그득한데, 어딜 갈지는 잘 떠오르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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