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연극을 좋아하고 사진과 시를 좋아하던
어줍잖던 그 시절
주머니가 가볍기만 했던 우리들에게 시나 극에 대한 나름의 시시비비성 평들은
가장 좋은 안주가 되어주고는 했었다
허름한 작은 극장내 먼지속 부조리극을 보고
경복궁앞 프랑스 문화원에서 500원에 영화를 보고
한 권의 시집을 돌려보며
술잔앞에 안주삼아 떠들던 시절
기형도, 신동엽등은 무거웠지만,
가을이 되면 가볍지만, 슬프지만, 우리를 달래주던 시인 천상병
삐뚤어진 입이 웃음을 보여줄 수 있음을 알려준 사람
그는 웃음으로 세상에 많은 것을 던져 주었던 듯
하지만, 그의 시들은
그의 얼굴에 비친 웃음은
어찌 보면 죽음을 그리워하고
가난에 대한 사회속 외로움을 노래하려한 것들은 아니었을까?
한 잔의 막걸리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 세상을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살아 유고집을 낸 아마도 유일한 시인일 듯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옥고와 모진 고문이 남긴 그의 얼굴은
그 시대를 말해주는 하나의 표상중 하나다
70년대초반 동가숙서가식하던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를 아끼던 동료들은 전국으로 찾다 결국은 어디선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간 그가 써왔던 시들을 모아 유고집을 내주어
우리는 그의 시집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 정신병원 1호
청량리 정신병원, 이중섭등 많은 이들이 머물다 간 그 곳도 2-3년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으며 폐원을 했다
1945년부터 73년간 우리나라 정신병원의 대명사와도 같던 그 곳에 머물던 천상병
죽은 줄로만 알았던 천상병이 기인답게 특유의 웃는 모습으로
친구들 앞에 나타났다
살아 쓰여진 유고시집이란 블랙코미디를 품고서 시인은 웃으며 다시 세상속으로 나온 것이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누가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뺵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그의 행복은 이러했다
간혹 삶에 지쳐갈 때면 읽게 되는 그의 시 '행복'
너무 가져서 그 무게감에 스스로가 깔림을 말해주는 그의 시에
막걸리 한 잔하며 훌훌 털고 일어서곤 한다
하지만, 그의 글안에 담긴 지난 시절의 슬픔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생식능력을 잃었기에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이 가을
어제는 옥상의 하늘아래 햇살을 맞으며 그의 싯귀하나를
서너번 읽고 또 읽어본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의 삶이 소풍이었다고?/ 그 소풍이 아름다웠더라고?
오늘 한쪽의 일터에서는 굴뚝 위에서 농성을 하고/ 바람이 바뀌었다고
다른 쪽의 사람들은 감옥으로 내 몰리는데/ 이 길이 소풍길이라고?
따르는 식구들과/ 목마 태운 보따리 / 풀숲에 쉬면 따가운 쐐기
길에는 통행료/ 마실 물에도 세금을 내리는 세상
홀로 밤길을 걷고/ 길을 비추는 달빛조차 몸을 사리는데
이 곳이 아름답다고?
항상 행복하게 삽시다/ 작은 행복을 즐기며'
천상병의 (소풍)
그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었을까?
하긴, 그도 젊어 꾸었을 그 꿈을 한 순간에 앗아간 시대속에서
그가 무언가에 대한 바램을 가졌다면
아마도 그의 삶이 더 고달프지는 않았었을까?
그의 시에는 죽음이, 죽음에 대해서, 죽음을 곁에 둔 듯한 글들이 많은 것도
그러함이 아닐까?
아마도 젊어 무언가 가슴속에 품은 것이 남아 있던 시절을
그리며 쓴 시는 아니었었을까?
그의 시 '새'를 몇번이고 읽다보면 젊은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그를 말하는 시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해바라기 밭을 일군 한 농부가 키가 큰 해바라기들은 올 한해 불어온 바람에 다 쓰러졌지만,
코스모스는 쓰러졌다 맑은 햇살아래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았다 말해준다
부는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리다, 때론 땅에 꺾기듯 쓰러졌어도
바람은 지나가는 것
다시 찾아준 햇살아래 자기 자리를 찾아주는 코스모스와 같은 마음으로
주어진 삶의 시간속을 지나갈 수 있었으면
어제, 오늘, 그리고 아마도 내일은 천상병과 함께하게 될 듯하다
따스한 햇살아래 의자에 앉아 졸듯하며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예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 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에게 편지를 쓴다네'
천상병 시인의 편지처럼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