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인연을 맺어오고
백 가지의 +를 주었다 해도, 단 한 순간 하나의 –가 관계를 좌우한다면?
지난 시간의 인연도 결국은 그 +의 이해득실에
따른 관계였고, 내 존재였음을 말해주는 것이구나
늦은 이해와 관계의 의미를 알게 되는 건
그가 아닌 바로 내가 아프다는 것을 주말 동안
그리고, 그 시간들이 지나도 흘러가기 보다 마음속에
마치 몸에 박힌 가시를 빼지 못한 것처럼
아프다.
괜스레 오랜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시비를 걸게 되는
지금의 시간들
눈이라도 제대로 내려 아침 교통의 혼잡과
폭설주의보를 기대했건만 오다 마는 눈에게마저도
시비를 걸고 싶어진다
하이데거의 존재론
왜?
그 들은 쉬운 말을 그리도 돌고 돌려서 어렵게만 하려 했을까?
그게 더 있어 보이는 걸까?
사실, 실존주의에 대해 가장 몸으로서 살아온 사람
그 나마 표현해준 건 카뮈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라는 존재를 알려면, 현존재의 나를 분석하려면
우선 내 주변 속 나의 위치와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던 하이데거의 말
그의 말은 실존주의 속에서도 바로 나를
세상 속의 나를 먼저 알고, 그 뒤에 주변을 논할 수 있게 되야 함을
세상의 의미는 나란 존재에서 시작됨을 말한다
사람은 모두가 죽는다
즉, 무로 돌아가게 되고 그 무에 대한 불안감이
현재의 존재 속 내 감정과 행동, 생각을 가지게 한다던 그의 말
어제의 모습이 포효를 하며 세상을 지배하려 했든
초라한 모습이었든 결국은 무로 돌아가는 삶이라면
오늘을 굳이 거짓되게
내 감정을 이기려 하고, 아닌 듯 포장해 가면서
보낼 이유가 있을까?
사람에 대한 실망감은 나이탓일까?
조금은 내, 나 스스로의 생각보다 큰 듯하다
이 무기력함과 피로감을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촌놈은 결국 마음속의 그 시골을 벗어나지 못하나 보다
오늘은 눈에 덮인 들 넓은 작은 한 마을 속의
한 집에서 창을 내다보며 책이나 보고 싶다
내 나에게 감사하는 한 가지
못그린다해서 주저하던 그림을 언젠가부터
못그리면 어떠냐, 엉터리라도 내가 맘을 풀 수 있으면 그만이지
사진은 있는 것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는가 라면
그림은 내 맘속의 것을 담는 것이니
그려보려 한 내 자신에게 그 시작을 감사하게 된다
진료실에서의 시간이 내 전생의 전부이기에
좁은 공간 내 책상 위, 의자에 앉아 쓰고, 그리고를 할 수 있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삶의 시간을 돌아보니 참 그거 별것도 없이
짧기만 하건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