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대한극장
알랭 드롱의 조로
근 40-50년이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큰 스크린 전체를 채우며 마스크를 찬
알랭 드롱의 검은 마스크 속 푸른 눈동자
헛발질
빛나가는 헤딩을 보면서 왜 뺴지 않느냐
너만 마스크를 썼나?
다른 마스크 선수들의 활동력과 너무 다르다
나이 들며 알게 되는 슬픈 진실 중 하나는
사람들의 이해력, 이해심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함부로의 말에 대해서 내가 그 상대가 아니어도
상처를 받는데 본인은 어떠할까?
뭘 한 게 있다고 눈물을 짓느냐 에서
본인의 무능을 아니 울지 라는 말까지
참 인터넷 시대의 무서움
이젠 입에서가 아닌 손끝에서 나오는 몇 자의 글들이
칼이 되고 총알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손홍민은 상처부위가 아물지 않아 마스크를 단단히 고정시키지를 못하기에 자꾸만 흘러 내릴 수 밖에 없다 한다. 그런 선수가 뛸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의 우리, 아니 그가 필드 내에 있다는 존재만으로 어찌 보면 상대가 보는 우리는 경계의 대상이 되는 거 아닐까?
박수가 비난이 되고
응원이 어찌 보면 내 감정에 대한 나에 대한 응원
오늘 밤이라 해야 하나
내일 새벽이라 해야 하나
결과보다 모습들이 아름답다
문턱에 부딪치기만 해도 아프다
태클에 넘어져도 급히 일어나 뛰고
몇 십 분만 뛰어도 헉헉거리게 됨에도 수십 분을
구장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뛰는 그 모습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맙고도 행복하다
작은 말
작은 글
작은 감정 하나라도 그 대상이 내가 되어 서
내가 받으면 아플 것임을
작은 말
작은 글
작은 응원과 안아줌 이라도 그 대상이 내가 되면
그 따스함에 아마도 큰 힘듦도, 슬픔도 이길 수 있음을
역시 난 어쩔 수 없는 꼰대 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