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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Oct 01. 2015

<열하일기>, 내가 이 책에 공감 0%인 이유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를 재미있게 읽고 다음으로 고른 책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었다. 자칭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열하일기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덮어 버렸다. 그 이유를 적어 보고자 한다.     


연암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나 천재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지만 평생 벼슬길을 마다하고 제도권 밖에서 유유자적한 사람이다. 어쩌다 청나라 황제 칠순잔치 사절단에 따라나서 기록한 저서 열하일기가 유명하다.      


사소하지만 처음부터 거슬렸던 부분은 저자의 과장된 열하일기 찬양이었다. 예컨대, 열하일기의 문장 한 줄을 소개하고는 이 문장이 얼마나 위트 있고 해학적인지 열 줄에 걸쳐 훙분하는 식의 서술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다. 열하일기의 문장을 읽고 내가 무언가를 느낄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정도는 참고 끝까지 읽으려 했다. 결정적인 부분은 따로 있었다. 


저자는 연암이 과거에 응시하기만 하면 벼슬길은 따 놓은 당상인데도 이를 마다하고 제도권 밖을 고집하는 모습에 열광한다. 한데 연암은 노론 명문가 출신이다. 그 시절 노론 명문가라면 왕 앞에서도 신발 소리를 크게 내고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무려 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안하무인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집단이다. 말 그대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격 아닌가.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제도권 밖에서 유유자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돌아갈 곳이 든든한 사람의 일탈은 불안보다는 자유로서의 의미가 훨씬 큰 법이니까. 요즘으로 치면 재벌가 아들이 경영수업 안 받고 세계 여행하는 것쯤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더구나 연암은 노론 벽파다. 벽파라면 정조 임금과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집단 아닌가. 노론 벽파 연암이 정조 치하에서 벼슬 안 산 것이 정치적 신념일 수는 있어도 그것을 제도와 세상의 틀을 깨는 통찰적 행보로 해석하는 저자의 관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물론, 연암 박지원이 노론 명문가 출신이기도 해도 벼슬을 살지 않았으니 무척 가난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연암의 가족을 누가 먹여 살렸느냐. 바로 형수다. 책에 자세한 언급이 없어 모르겠으나 연암의 형도 식솔을 거둘 형편은 안 됐는지 형수가 평생 농사짓고 고생해 연암 형제를 먹여 살렸단다. 그 형수마저 죽어 비빌 언덕이 없어지자 그제야 연암은 면천 군수로 첫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저자는 자유로운 영혼의 연암이 군수를 하며 얼마나 답답했을지를 걱정한다. 한데, 나의 감수성은 자꾸 죽은 형수의 고단함에 가 닿는 것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니 드디어 본격적인 열하일기 부분이 나온다. 연경으로 가는 여정에 연암은 두 명의 하인을 딸린 참이다. 저자는 연암이 하인 둘을 관찰하고 풀어낸 부분을 소개하며 박장대소를 하는데 나는 우습지가 않았다. 우습기는커녕 슬슬 화가 올라왔다. 연암이 하인 둘을 한껏 낮춰 보는 시선 때문이었는데, 팔자 좋은 양반이 무지한 상놈들을 보며 ‘잡것들이 주는 재미’ 운운하는 식의 정서가 계속 거슬렸다. 그것을 유머와 해학이라고 유쾌하게 해석하는 저자의 시선도 의아하기만 했다.


몇 장을 더 넘겼다. 사절단이 황제가 정한 날짜에 맞춰 가느라 강행군을 한 뒤 숙소에 도착해 모두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 잠드는 장면이 나온다. 한데 연암은 출출하다. 저자는 이런 연암을 ‘못 말린다’는 투의 애정을 담아 묘사한다. 배가 고픈 연암은 하인 둘을 깨워 보려 하나 곯아떨어져 소용이 없다. 채찍질까지 해도 꿈쩍 않고 곯아떨어져 있더라는 대목에서, 책을 덮었다.


성리학 질서 속에서, 더구나 노론 명문가 태생의 연암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 따위를 할 수 없었을 거라는 점은 이해하겠다. 그러나 평등까지는 아니라도 ‘피곤함’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공감도 못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고, 강도가 어쨌는지 몰라도 채찍질을 했다는 것에서는 살짝 분노도 올라왔다. 그 장면을 연암의 엉뚱한 면모를 엿보는 일화로 묘사하는 고미숙의 신나는 해설에 더 열불이 난 것 같기도 하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해설서다. 저자는 열하일기의 위대함을 알려주고자 했던 것 같지만 내게는 오히려 열하일기를 부잣집 도련님의 신변잡기쯤으로 여기게 만든 결과과 됐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이 있었다. 이 책은 보론이라는 목차를 따로 두고 동시대를 살다 간 다산 정약용을 깎아내리며 굳이 연암의 대단함을 한번 더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 읽은 <인문학 명강 - 동양고전>에서도 고미숙은 열하일기를 강의하다 말고 또 정약용을 갖다 붙이며 연암의 비교 우위를 언급하고 있다. 연암이 정약용에 콤플렉스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연암이 조선 말기 최대이자 최장수 권력집단인 노론 명문가, 그중에서도 핵심 권력층인 벽파 출신이라면, 정약용은 그 노론에 의해 60여 년간 출사의 길도 막혔던 남인 출신이다. 돈과 권력뿐 아니라 제도까지 독식한 노론은 자신들에 반기를 들었던 남인 출신의 과거 응시 자체를 금지했다. 이 금지 조치는 정조가 임금이 된 후 노론을 견제하기 위해 남인과 서자의 출사 길을 열어주면서 풀리게 된다.      


고미숙은 그 정도로 막강한 집단에 속했던 연암 박지원이 벼슬살이 안 한 것은 제도 밖으로의 위대한 탈주로 그려내고, 정조에 발탁돼 노론 세상을 개혁하려 애썼던 남인 출신 정약용은 어떻게든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려 몸부림친 격 떨어지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런 해석이 어떻게 가능한지도 의문이었지만, 갖다 붙이지 않아도 될 정약용은 뭐하러 끌어대는지도 궁금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이 책은 마지막 보론에 이르기까지, 나의 공감을 1%도 끌어내지 못했다. 연암 형제를 먹여 살리다 죽은 여인(형수), 연암의 놀잇감 같은 하인들, 조금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해도 관직에 나아갈 방법이 없다가 정조 때 잠깐 반짝하고 만 남인에 이르기까지 나의 감수성은 시종일관 고미숙과는 반대의 것에만 가 닿았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비추'다. 다른 책들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2>,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2>, 정은궐, 파란미디어. 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 각색,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소설로 노론의 벽파와 시파, 소론, 남인의 갈등 구도와, 거대 권력 노론에 맞서 고군분투한 정조와 정약용의 역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소개한다.

■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사계절. 이 책은 '수양에서 실천으로의 전회 - 정약용, 「맹자요의」' 챕터가 있어 소개한다.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2>, 이덕일, 다산북스. 유네스코가 2012년 올해의 세계 기념인물로 다산 정약용을 선정한 것을 계기로 발간된 정약용 일대기를 정리한 책이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 15, 16>, 박시백, 휴머니스트. 만화로 된 조선왕조실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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