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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인 Sep 10. 2023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에게 보내는 송사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되었다.


일상 어느께 갑자기 울컥하는 순간도 생겼다. 그땐 조용히 마모시키듯 운다. 눈물의 모양은 이유를 담지 않는다.


밤에 가끔씩 엄마의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가서 엄마의 야윈 등을 쓸어내리기도 하지만 어느 땐 내가 필요 없는 날도 있다. 엄마는 엄마를 천천히 보내고 있다.


8월 10일, 재택근무 중이었다. 아침에 엄마가 카톡으로 오늘 밤부터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에 할머니 상태가 좋지 않았던 터라 엄마가 일을 하면서도 할머니를 밤낮으로 챙기셨는데, 아무래도 엄마가 없을 땐 스스로를 못 챙기시다 보니 엄마가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할머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바로 받지 못해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울부짖으며 얘기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몸이 차가워.. 숨을 안 쉬셔"


나는 옷만 제대로 입고 바로 달려갔다. 내 입에선 울음인지 비명인지 모르는 소리가 계속 나왔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바보같이 조리를 신고 나가서 자꾸 넘어질라고 했다. 그날은 진짜 비가 많이 왔다.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가니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할머니와 그 옆에서 서서 울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달려가서 할머니를 만져봤다. 할머니의 손이 차가웠다. 할머니를 안아봤다. 할머니가 굳어있었다. 얼굴은 아무 표정이 없었다. 다만 다신 입을 열지 않을 것처럼 굳세게 닫혀있기만 했다.


할머니 손을 부여잡고 한동안 울었다. 할머니의 손은 차가웠지만 아직은.. 아직은 부드러웠다. 이렇게 기분 좋게 차가운데 어떻게 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 둘의 울음소리에도 할머니는 시끄럽다는 엄포도 없이 가만히 누워계시기만 했다.


엄마는 화를 냈다가 울다가 매달리다가 마지막엔 엄마 엄마하면서 아이처럼 울었다.


"오늘 아침부터 이상했어. 일을 가는 게 아니었는데.. 오늘 이상해서 30분 일찍 퇴근했단 말이야."

"오늘 점심에 홍시가 맛있어서 하나 더 가져왔는데.. 하나만 먹어봐 엄마.."

"최근에 곡기를 끊으시다가 어제 간신히 드셨는데..."


내가 더 챙겼어야 했는데... 자책하는 엄마 앞에서 나는 감히 성급한 위로를 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선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개인적인 일로 충격을 받은 상태였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정말 정신이 반쯤 나간 듯했다. 친구들이 조문을 와줬을 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따로 연락해주시고 부의도 해주신 나의 지인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잊지 못할 감사함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주었다. 특히 엄마의 손님이 많이 왔는데, 엄마의 친구와 지인을 상대할 때 엄마는 울지 않았다. 딸로서는 못하는 위로를 엄마의 친구들은 할 줄 안다. 그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다음날 발인을 하고 할머니를 납골당에 안치했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우리 가족은 집에 와서 그야말로 뻗어버렸다. 몇 시간이 지나고 저절로 눈이 떠졌다. 왜 아침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이른 저녁 시간의 적막함이 너무 고독하게 느껴졌다. 너무 곤히 자는 엄마와 동생을 깨울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 배는 고파서 닭강정을 시키고 막연하게 유튜브에서 애도에 관한 영상을 틀었다. 고인에 대한 애도는 남은 이들끼리 고인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고 슬퍼해야 한다고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이 말했다. 다음날 가족끼리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쪼그려 앉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었다. 잠은 다시 잘 수 없었다. 남자친구와 통화를 마치고도 아직은 해소되지 않은 커다란 무언가의 울분이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았다. 8개월 만에 소주 한 병을 깠다. 그리고 디즈니 플러스에서 썸벨리나 애니를 보며 엉엉 울었다.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서 처음 봤던 비디오 애니메이션이었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취한 채 잠들었다.


다음날, 전 날에 다짐했던 대로 가족들끼리 밖으로 외식하러 갔다. 우리는 샤브샤브를 먹으며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했다. 엄마의 한스러움, 우리의 아쉬움을 나눴다. 카페에 가서도 할머니에 대한 얘기, 우리의 미래. 앞으로의 다짐 등 굉장히 좋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울면서도 웃다가 마지막엔 서로 좋은 미소로 자리를 마쳤다. 엄마도 굉장히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가족끼리 좋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나 의문이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가까이 살아왔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생까지. 엄마 아빠가 일하러 가면 할머니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밥도 먹고 잠도 잤다.


할머니랑 같이 자던 어린 날 어느 밤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내가 시집가고 나서야 하늘나라 간다고 말씀하셨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죽는다는 게 무서워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엉엉 울었었다. 우는 나를 보면서 '할머니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며 웃으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삼우제 날, 우리는 다른 곳에 안치되어 있던 할아버지의 유골을 할머니와 함께 안치시켰다.

거진 20년 만의 재회였다. 가족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오랜만에 봐서 어색해서 어쩌냐며 농담을 했다.


나는 사진을 낄 수 있는 곳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젊을 적 찍은 사진을 잘 정리해서 넣어두었다.

서로를 메리와 캐리로 부르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곳에서는 걱정없이 평안하게 지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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