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를 시작하고 생긴 변화에 대해서
이 글은 감사일기에 대한 지침서가 아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감사일기에 대한 감사기록이다.
언젠가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우연히 감사일기에 대한 영상을 봤다. 감사일기를 오랫동안 써왔다던 인터뷰이는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그분 주변의 시간만 느리게 흘러가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솔직히는 감사일기에 대한 감사가 지나쳐 보였다.
'평소에 저렇게 감사할 일이 많나? 힘든 일이 없었나 보네.'
당시에 나는 남들보다 고생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크게 변하는 환경의 변화들을 지침대 없이 맞아왔고 지금 만들어진 멘탈은 그 시절을 살아낸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불행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 나와 전혀 다른 환경의 사람을 보면 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열등감, 패배의식, 부러움, 시기 뭐 그런 거. 그런 마음이 드는 내가 미웠고, 나도 모르게 그들이 누리는 행복을 나는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인터뷰이가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게 '나와 다른 환경이라서'라고 생각해 버렸다.
도망치고, 외면하고,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나만의 또랑에 박혀있는 좋은 방법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일기는 내 뇌리에 박혀서 꾸준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시작했다. 어렵지도 않은데 매일 쓰는 일기 루틴에 넣어볼까 하며. 오래되진 않았다. 2달가량이 됐을 뿐이고 그마저도 매일매일은 아니었다. 일주일에 5번 정도는 썼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감사할 거리를 찾는 게 어려웠다. 제일 어려웠던 것은 감정적으로 고된 날이었다.
아래는 내가 실제로 쓴 일기다.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내 인내심을 실험하게 해주는 **에게 고맙다! 조금 더 참을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나의 공방 상대가 나를 화나게 할 때는
감사… 감사…. 오늘은 감사할 게 없는데? 버틸 수 있는 내 당당함에 감사합니다.
독하게 악하게 만들어주는 세상에 감사합니다.
답변서를 그지같이 써준 **에게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ㅋㅋㅋ) 적었었다. 장난으로 보일지라도 막상 저렇게 적으면 "내가 생각보다 '화'라는 감정에 몰입하고 있었구나, 내 화는 굉장히 작네?" 라며 감정에 환기를 할 수 있게 된다.
감사일기에 쓰지 못할 감사는 없다. 나도 처음에는 특별하지 않은 날에는 감사할 것이 없었다. 출근하고 일하고 밥 먹고 퇴근하고. 뭐 누구나 똑같은 삶을 사는데 특별한 지점이 있을까? 그래서 하루를 세분화해서 되새김질했다. 그러니까 하나둘 드러났다.
회사에 출근했을 때 웃으며 인사해 준 회사 크루
퇴근을 하고 집에 왔을 때 밥을 먹었냐며 묻는 엄마
미루다 미루다 결국 운동을 간 나
밖에 나갈 때 미세먼지가 있음을 알려준 동생
점심에 오는 친구들의 단체 채팅방 알림
전부 내가 감사일기에 쓴 것들이다. 처음에는 쓸게 없어서 굳이 골라서 쓴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저것을 지속적으로 쓰다 보니까 내가 얼마나 안정적이고 사랑받는 일상을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일상은 별 탈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굴러가고 있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이뤄낸다. 내 주변인들은 내 생각보다 나를 많이 감당하고 있으며 사랑하고 아껴준다. 이전에는 안 그랬던 것이 아니라, 내가 감사를 하고 나니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다. (특히 사람에 대한 감사가 많아진다!)
이 사실을 깨달은 날은 감사일기를 마무리하고 꽤 충만한 느낌으로 잠을 들었더랬다.
앞서 나는 내가 남들보다는 고생을 조금 더 많이 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물론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나를, 나의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냐는 것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일기를 쓰고 나서부터는 나는 내 생각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왔고, 그 힘든 지점들도 나 내가 감당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에게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나 지금의 만족하는 나의 모습은 과거들과 그 과거를 감당한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앞으로 올 힘든 지점들도 다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날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올 것이니 감사를 하려고 노력하자라고 다짐했다.
나는 지금의 내가 좋고 감사하다. 물론 아직까지도 꼬이고 미운 마음들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완벽하고 완전한, 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나의 깊이와 넓이를 위해 걷고 달리는 동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 미운 마음마저 고마워하고 좋아하려고 한다. 결국엔 그 마음마저 품어야 하니까.
감사일기를 꾸준히 쓰려고 한다.
아직 1년도 안 됐지만 평생을 내 삶에, 존재에 감사하고 싶다. 감사일기를 쓴 분들의 경험담이 궁금하다.
좀 더 좋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나눔을 받고 싶으니 댓글을 남겨주셔도 좋다-
이하는 내가 올해 읽은 <우울할 땐 뇌과학>의 감사 챕터에서 나오는 구절 몇 개다.
감사가 부정성을 무너뜨리는 막강한 해독제인 이유는 삶의 조건에 따라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굶주리는 와중에도 따뜻한 산들바람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감사는 자신이 가진 것들의 가치를 실제로 음미하는 데서 오는 감정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가졌는지 갖지 못했는지는 상관없다. 감사의 힘은 시기심을 줄이고 이미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의 가치를 높이고 그럼으로써 삶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주는 데 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