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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명식 Oct 28. 2020

기쁘다. 서른 아홉 오셨네

참고로 아래 글은 지난 6월에 적은 글을 업데이트 하는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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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1년의 중간인 6월이 되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일년의 중간이기 때문에 대부분 비슷한 마음을 갖게 된다. 지난 반 년 어떻게 지냈는지 다시 돌아보고 남은 반 년 동안에는 나쁜 일은 모두 없어지고 좋은 일만 더욱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나만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직장 다니면서 가장 많이 하는 업무 중의 하나가 소위 ‘계획’을 작성하는 것이다. 세일즈맨이라면 각각 달성해야 하는 월별, 분기별, 반기별, 년별 매출 달성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포캐스팅’을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적/구체적 계획을 세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물론 세일즈가 플랜 되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단기, 중기, 장기 플랜을 세워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이 위해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은 힘든 부분도 있지만 달성하게 된다면 성취감과 뿌듯함에 스스로 굉장히 만족해 할 수 있는 거부할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사회 생활 4년차 정도였을 때다. 대리라는 직급을 갓 달게 되어 어떤 것이든 열심히 할 때도 회사 생활도 가장 재미있을 때였다. 다만 그 당시 발생한 소위 ‘금융위기’로 어떤 기업이라도 위축된 경기 상황과 기업들의 비용 절감 운동 등으로 세일즈 활동이 녹록치 않았다. 내가 속한 부서는 특히 SMB로 불리는 중, 소기업 등을 담당하였던 터라 금융위기의 여파가 어느 곳보다 컸다. 좋지 않은 실적에 나도 괴로웠지만 가장 괴로운 건 팀장님 이었다. 위에서는 매일 깨지고 새로운 계획을 제출해야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분을 팀원들까지는 전가하지 않는 굉장히 고마운 팀장님 이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이어지는 팀 미팅 중간에 팀장님이 불쑥 ‘그런데 팀원 분들은 본인 만의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라며 팀원들께 질문을 던졌다. 어떤 아이디어로 좋은 세일즈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던 팀원들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지만 팀장님은 덤덤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요즘 보시다시피 경제도 어렵고 회사 분위기도 좋지 않아 여러분이 힘든 것들 알고 있습니다. 나도 어렵지만 IMF를 겪어본 경험도 있고 이럴 때일수록 팀원들의 단합이 중요한 것을 알고 있기에 여러 분들에게는 특별한 요청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부탁 드리고 싶은 건 이럴 때일수록 본인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겁니다. 회사가 어렵다고 여러분들 자체가 어려워하거나 힘들어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직장 생활은 팀원 분들이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 중의 하나 일 뿐이며, 중요한 건 여러분들이 인생이란 긴 여정을 어떻게 계획하고 살아갈 것인가 입니다. 그래서 회사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는 끊임없이 되물어보며 지내야 합니다” 라는 얘기였는데 머리를 망치로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그 때까지 그런 얘기를 해 주는 분들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입사했으면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라는 얘기만 들었지 개인의 목표를 세우거나 인생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듣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팀 미팅을 끝내고 팀장님은 임원 미팅을 위해 방을 나섰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팀장님의 얘기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자리에 앉아 노트를 꺼냈고, 그렇게 그 날은 나만의 인생 계획을 세우게 된 첫 날이 되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의 건 타의 건 본인만의 계획을 갖고 살아 왔다. 어린이집 다니는 아들도 매주 계획안에 따라 움직인다. 초등학교 방학이 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것도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지낼지 계획하는 하루일과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은 중요시 되는 학업 성취를 나타내는 중간, 기말 고사를 중심으로 계획을 세웠다. 대학생이 되면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할지에 따라 선택하는 계획이 모두가 달랐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개인의 인생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보다는 팀을 위해 부서를 위해 조직을 위한 계획만 작성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조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다만 내가 강조하는 부분은 조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선 ‘나만의 인생 계획’은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지나친 개인 목표 달성을 위한 집착과 고집은 조직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지만 적정한 비율로 조직의 계획과 개인 인생 계획을 갖는 시간을 가지는 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초등학생 때 작성했던 하루일과표를 생각해보면 방학 초반에는 당연히 ‘공부 시간’을 많이 넣었다. 그냥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반나절의 시간을 그냥 공부하기로 채웠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부는 뒷전이고 친구들과 그냥 놀러 다니는 시간이 훨씬 많이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방에 걸려있는 하루일과표를 보면 부끄러워 결국은 일과표의 공부하기를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기’ 라는 항목으로 바꾸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계획은 한 번 작성했다고 끝이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너무 경직된 몰입으로 본인을 구속하는 것만큼 나쁜 것도 없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라.’라는 조언처럼 인생의 계획도 큰 방향성을 잡고 그에 맞게 내가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나아가야 한다.

나는 가끔씩 그 때 쓴 나만의 인생 계획을 펼쳐볼 때가 있다. 처음 작성했던 내용 중 달성한 부분도 고 여전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중요한 건 나만의 페이스로 남에게 보여주려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한 번 사는 나만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때마침 카페에서 들리는 노래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다. 구주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가사도 정확히 모르지만 매년 듣게 되는 크리스마스 캐롤의 중독성 덕분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모습이 다소 놀랍기도 하다. 구주도 오셨지만 나에게도 서른 아홉이 왔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나름 젊은 삼촌이나 이모 등의 기준은 삽 십대까지 였던 것 같다. 


그 이후의 나이는 대부분 아이들도 커서 젊은 친척의 범주에 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삼 십대의 마지막 나이를 맞이하게 되었다. 슬프지는 않고 담담한 기분이 들 뿐이다. 물론 삼 십대가 끝난다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역설적으로 나 자신에게 외쳐 보기로 했다.

‘기쁘다 서른 아홉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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