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십 수년간, 지구의 평균 온도가 점점 높아지는 지구 온난화 가속의 이유에 대해 우리는 인간이 가장 주된 원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양극 지방의 빙하가 대거 녹아내리고, 평균 해수면이 꾸준히 상승하여 해발고도가 낮은 나라들이 하나둘 물 아래로 가라앉는 아픔을 겪으며 지구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인간의 존립을 위해 우리가 자초한 결과인 지구 온난화를 멈추고자 많은 노력들을 지속해왔다. 이 모든 게 우리가 흔히 외계인이라 부르는 우주 생명체인 알테론들의 이주 준비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지구는 그렇게 오랜 기간 알테론들의 새 터전이 되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된 테라포밍 위에 숨 쉬고 있었다.
약 46억 년 전 큰 별들이 죽을 때 일어난 대폭발에 의해 생긴 성간 기체 구름이 뭉쳐 태양이 만들어졌고, 태양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부산물로 우리 행성인 지구가 탄생했다. 다만, 그때 탄생한 행성이 지구뿐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알테론들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중 우주에 우리보다 먼저 태어나 살고 있었다. 다중 우주에 존재하며 ‘제노바’라 불리던 알테론들의 지구는 우리의 지구와 닮은 듯 달랐다.
알테론들의 지구인 제노바는 태양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태어났다. 대신 우리의 지구보다 훨씬 두꺼운 대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꺼운 대기가 더 많은 온실가스를 포함하고 태양의 열을 가두는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태초의 제노바는 태양 에너지를 많이 받으면서도 평균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어 강과 바다가 존재했고 온난한 기후 덕분에 알테론과 같은 생명체가 태어나 살아갈 수 있었다. 다만 지속적으로 태양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아주 더딘 속도로 제노바의 표면 온도가 서서히 올라갔고 이 변화는 알테론들이 고온의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기에 충분한 간격을 두고 일어났기 때문에, 그들은 사막화된 생태계와 평균 기온이 40°C~80°C에 육박하는 극한의 환경 속에도 멸종되지 않고 몸의 색깔을 변화시켜 낮에는 밝은색으로 태양열을 반사하고 밤에는 어두운색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야행성 생활을 했다. 또한, 배설물을 극도로 농축하여 수분 손실을 최소화하고 땀샘이 거의 없어 땀을 흘리지 않았으며 물을 직접 마시지 않고 먹이에서 수분을 섭취하는 등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막 동물들의 생존 메커니즘과 유사한 방식으로 더 강인하게 진화하였다.
여기까지만 일이 진행됐다면 알테론들의 지구 테라포밍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태양의 은하 공전 주기에 맞춰 점점 거세지는 태양풍으로 인해 두텁게 제노바를 둘러쌌던 보호막인 대기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이는 온실 효과의 감소를 불러일으켜 알테론들의 제노바는 죽은 별처럼 식어버렸다. 이미 고온의 극한 기후에서 생존하도록 진화된 호열성 종족인 알테론들은 저온의 환경을 견디지 못해 자신들의 존립을 위해 이주할 행성을 찾기 시작했고 평균 온도만 조금 높인다면 그들이 생활하기에 아주 적합한 행성인 우리의 지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우선, 어떤 방법으로 지구의 기온을 상승시킬지 고민했다. 가장 빠르게 지구의 기온을 상승시키는 방법은 아무래도 태양과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안정화된 지구의 궤도를 변화시켜야 했는데 소행성이나 거대 우주선을 이용해 지구 근처를 지나면서 중력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구의 궤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는 우주 탐사에서도 흔히 쓰이는 방법으로 작은 우주선의 궤도를 바꾸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지구는 매우 큰 질량을 가지고 있어 이 방법으로 지구의 궤도를 바꾸려면 지구와 우열을 겨룰 만큼 엄청난 크기의 천체나 우주선이 필요했다. 알테론들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기 전, 지구인들이 스스로 테라포밍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우주 전쟁도 무릅써야 할 것이기에 이 방법은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했다.
두 번째로 거론된 방법은 소행성의 충돌이었다. 소행성과 같은 천체를 지구에 의도적으로 충돌시켜 궤도에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지구인들을 대멸종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그들이 이주할 새로운 터전인 지구가 함께 파괴될 우려가 있었다.
이처럼 지구 테라포밍은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알테론들은 고심 끝에 ‘오메가 컨버전 프로젝트 : Omega Conversion Project’를 통해 지구를 테라포밍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지구에 거대한 추진기를 설치해 연료를 태워가며 지구를 서서히 이동시키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즉각적인 결과를 도출할 순 없었지만, 지구를 안전하게 테라포밍하면서 지구인들에게 들킬 우려도 없는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거대한 질량의 지구를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를 효율적으로 태양 가까이 밀어내야 했기에 지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곳에 모두 추진기를 설치해야만 한다. 이 작업을 지구인들 몰래 실행하기 위해서 알테론들은 지구의 약 71%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를 이용했다. 지구인들이 눈치챌 수 없을 만큼 깊은 심해에 ‘오메가 컨버전 프로젝트’의 핵심인 추진기들을 설치했고 놀랍게도 이 모든 일 들은 1은하년 전, 우리의 시간으로 약 2억 2,500만 년 전에 이미 일어났다.
당장은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우리 지구의 심해 속에 박힌 수조 개에 이르는 알테론들의 추진기는 태양이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공전 주기인 은하 년에 맞춰 약 828,000km/h의 공전 속도로 아주 서서히 지구를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항공 우주 공학을 전공하여 NASA에 우주 장비 시스템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주로 우주 장비와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을 하지만 내 업무나 NASA라는 집단과 조금은 동떨어진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 : Golden Record Project’에도 참여했다.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는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생명체에게 지구를 소개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었다. 고작 90분에 불과한 분량의 레코드에 지구의 다양한 언어로 된 인사와 자연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 115장, 흑동고래 울음소리를 포함한 지구의 소리, 세계 각지의 대표 음악 27곡을 담아 우주로 쏘아 올리는 것이다. 인간의 수명으로는 감히 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넓고 먼 곳에 사는 생명체가 말도 안 되는 확률과 우연으로 그 레코드를 읽고 답신을 줄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NASA에서는 꼭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공학 프로젝트만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실험과 분석을 통해 이론을 검증하고 지식의 정확성을 추구했던 내가 고작 문학적 상상력에 기대는 수준의 가능성 하나를 믿고 진행되는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은 새로운 영감과 경험이 되었다.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 이후 우주와의 교신에 관심이 생긴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가능성에 대한 응답을 받고자 매일 전파망원경을 통해 130억 광년이나 떨어진 우주에 강력한 라디오파를 송신했다. 이는 NASA에서 진행되는 공식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나는 이것을 마치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시듯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행위로 받아들이고 지속해왔다.
그러다 답장이 온 것이다.
바로 그들, 알테론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