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헤매다
친구들과 전원풍의 펜션에서 1박을 했다.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떠났는데 왠지 팔 쪽이 서늘하다 싶어 만져보니 나만 외투를 안 입은 상태다. 펜션 옷장 속에 걸어 둔 까만 단추의 회색 울 코트가 떠올랐다.
"잠깐만~ 나 코트 두고 왔어. 너희들 먼저 가고 있어 뒤따라 갈게."
일행의 일정에 지장을 줄까 봐 다음 목적지에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다시 산장에 들어가 코트를 찾아 입고 나섰다.
'서둘러 가야 일행 뒤를 쫓을 수가 있지.'
하며 발을 디뎠는데 아까 나섰던 숙소 광경이 아니다.
마치 역전 광장 시위대처럼 휩쓸려 다니는 무리들은 빨랫줄에 걸어놓은 나일론 이불처럼 펄럭거리며 더구나 눈코입은 보이질 않는다. 누구인지 어떤 무리인지 확인을 해볼 여유조차 없다.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잘못하다가는 나도 휩쓸려 들어갈 소용돌이다. 한떼의 바람처럼 보인다. 멀리서 보면 바람 떼같이 보인다.
마치 좀비들이 얼굴을 파묻고 누군가 걸리기만 해라 하는 형국으로 떠다니고 있었다.
한 무리는 바람이 부는 쪽으로 한 무리는 거스르는 쪽으로 아님 대각선으로 다른 색채의 무리들도 겹쳐져 마음대로 흩어지고 있었다. 어느 쪽에든 내 몸이 쏠리기만 한다면 나도 그들 속으로 합류되고 말 것이다.
나는 그 속으로 휩쓸리지 않으려고 양다리에 힘을 주며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어디로 빠져나가야 하지?"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음산한 소리마저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든 여기를 빠져나가야만 한다.
팔다리가 긴장이 되며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 무리는 무채색이었다.
갑자기 단테의 신곡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지옥편인데
2 옥은 색욕에 빠져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 놓은 자들이 가는 곳으로 시도 때도 없이 폭풍에 휩쓸리는 광경이고
3 옥은 지옥의 문지기 케르베로스(Cerberus)가 있는데 세 개의 목구멍을 벌려 개처럼 짖으면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영혼들을 할퀴고 물어뜯어 갈기갈기 찢어놓는 장면이다.
머릿속으로는 빠져나가야 한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으나 내 몸은 얼음처럼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사진출처: 네이버
"나는 색욕에 눈먼 사람이었던가. 왜 이렇게 험한 곳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여기는 지옥이 맞을 것 같아. 난 빠져나가고 싶어."
광장의 이곳저곳으로 비상구를 찾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길건널목에서 행인들을 체크하고 있다.
그 사람은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지붕 세 가족의 순돌이 이건주다~'
그나마 아는 얼굴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알은체를 하려는데 나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이 사람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내 이마에서 뭔가가 보이는지 보이는 걸 숫자를 세고 있다.
"세 개 네 개..... 어랏 열 개?"
나와 눈이 번쩍 마주친 그는
열개에서 멈춘 나의 이마의 표시를 보고 손사래를 치며 빨리 가라고 한다.
어디로 가라는 건지도 알려주지도 않고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며
"가~~! 가라고!!"
이마에 삼지창을 그리며 성난 얼굴로 내뱉는다.
이마에 보이는 게 뭔지 모르지만 스크린처럼 내 이마에서 뭔가 보인건 틀림없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가? 열 개는 뭘 의미하는 거지? 커트라인이 있는 건가?'
발을 디디며 머릿속으로는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디로 가라는 거야?"
다행히 발길을 옮기다 보니 조용한 들판이 나온다.
안도의 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한다.
우왕좌왕하는 무언가 삼킬 것 같은 거센 숨소리와 회오리소리를 뒤로 하며 돌아 나왔다.
소돔과 고모라를 떠올리며 나는 소금기둥이 되지 않으려고 계속 발을 허공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다시 알람소리가 울린다.
나는 지옥을 보고 왔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무서운 생각이 들어 주기도문을 외웠다.
심판은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다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라시아테 오니 스페란차, 보이 켄트라테:
모든 희망을 버려라, 들어오는 그대들이여)'.
단테의 신곡 지옥문에 새겨진 글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