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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냉이처럼 다시 돋아나게 해주세요.

누구나 시한부이긴 하다만...

by 김달래



한 달 반이라고 너의 생명이 정해졌다고는 한다.

그런데 너는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아 보였다.

눈빛도 맑고 총명하다.

남양주 요양병원에 1년 넘게 방하나 세내서 천국 갈 날만을 생각하며 누워 있을 너를 상상하며 병실문을 여는 순간 너는 10대 때 만난 여중생의 얼굴로 팔을 한아름 펼쳤다. 낯색도 밝고 얼굴살도 축나지 않아 환자같지 않았다.


담가간 알타리 김치와 파김치 쑥버무리를 꺼내는 나에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공준줄 알았는데 이런 것도 해?"

하며 믿어지지 않는다고 못 만난 5년간의 공백이 쑥스러운지 너스레를 떤다.

"국민학교 다닐 때 너는 서울서 전학 와서 얼굴도 하얗고 공부도 잘해서 다들 동물원 원숭이 쳐다보듯 신기해했었지."

"그런 소리하지 마라 공주는 무슨~무수리 된 지 오랜대."


친구 셋이 손을 잡고 앉아서 다시 만날 수 있음에 주님께 기도를 올렸다.

면바지에 눈물이 두두둑 떨어져 기도가 끝날 때까지 콧물을 손으로 쥐어 짜야했다.

간절히 기도했다.




순희는 암환자다.

암이 처음 발병한 건 10년이 조금 넘었고 3년 만에 재발이 되고 지금은 온 장기에 물이 차고 시한부 진단을 받은 지 10일이 넘었다. 그런데 나부터도 시한부 날짜를 믿지 않는다.

환자 본인도 다 나았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주신 분이 거둬가신다면 그것도 감사하고 또 히스기야처럼 15년을 연장시켜 주신다면 더더욱 감사하다. 그것은 주님의 영광을 간증하는 것이다.


그녀의 얼굴엔 암환자의 어두움과 통증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암환자는 말기에 살이 다 빠져 뼈만 남고 물이 차고 통증을 못 이겨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한다.

나의 아빠도 간암으로 돌아가셨기에 복수를 빼는 약을 드시다가 돌아가셔서 그 고통을 가히 짐작을 한다.


그런데 순희는 신기하게도 통증이 없다 한다.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서 그럴까

내가 오늘 여기 온 거는 순희가 언제 하늘나라로 갈지 몰라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주님의 자녀가 어떤 얼굴빛인지 보러 온 것인지 가늠이 안되었다.

그만큼 환자 같지 않았다.

이러다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쓰러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로 봐서는 나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

"나 어제 소변줄 뗐어. 이것만 떼 달라고 기도했는데 떼고 나니 다 나은 기분이야."

하며 주렁주렁 달고 있던 주사도 소변줄도 뗐다고 이제 더 바랄 게 없다고 하는 순희.

마음속으로는 지금 어떤 상태까지 온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아무래도 영양식이 좋겠다 싶어 오리백숙을 미리 예약해 놓았다.

이 집이 감자전 맛집이라며 함께 시켰다.



순희가 뜬금없이 막내딸 이야기를 한다.

"수빈이가 초등 2학년 때 내가 첫 발병을 했어. 큰 애는 대학생이었으니 암이 뭔지 알아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겠지. 한숨을 쉬며 병원을 찾고 엄마를 수발했지. 막내는 암이 뭔지도 모르고 뭐 감기쯤으로 알았는지 교회든 학교든 아는 사람들한테

'우리 엄마 암이다!~~~ 암 걸렸대요~'

라고 자랑하고 다녔대.

암이란 게 아직 충격이어서 입을 다물고 있던 내게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는 거야. 학교 선생님도 목사님도.. 그렇게 뭘 모를 나이긴 하지.."

듣고 있던 우리도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서 얼굴만 바라보았다.

옆에서 울고 있는지 언니한테 "

언니는 근데 왜 울어? 암이 뭔데... 울어? 주사 맞음 되는 거 아냐?"

라고... 철이 없어도 한참 없는 아였지.

"늦둥이를 놓고 내가 잘못되면 안 된다 싶어 열심히 항암치료를 했지. 머리에 가발을 쓰고 다녔으니까."

지금은 다 커서 엄마 웃으라고 아이돌이 추는 춤을 꿀렁꿀렁 추며 재간을 피운다 하며

순희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수빈이의 오디션 나가도 될만한 댄스를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내리사랑이 맞나 보다. 남은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자식들 이쁜 모습을 눈에 넣고 싶겠지.'

.


두 딸이 있어서 그래서 큰 힘은 되겠다. 이 아이들 눈에 밟혀서 생명의 질긴 줄 못 놓고 더디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순희 남편은 원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암투병하는 아내를 돌보며 교회에도 나가고 전도도 하는 그런 사람으로 바뀌었다 한다.

10년 전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사람이 바뀌니 순희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분위기가 다운되고 있을 때 마침 음식이 나왔다.

감사의 기도를 각자 올리고 식사를 했다.


고기는 오린지 닭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촉촉했다. 아픈 환자를 앞에 두고 밥을 먹자니 그다지 마구 먹어지질 않았다. 배가 고프긴 해서 날개를 뜯어 입에 넣었다.

순희에게 다릿살을 뜯어 덜어주고

"너 먹는 거 보니 안 아픈 것 같다."

말을 해놓고 왠지 친구의 병이 다 나은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말을 잘못했나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고 ,,, 하며 뜨끔 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와 아이들의 간절함과 남편의 회개로 인해 병을 치료해 주실 것을 믿고 싶었다.


" 3주에 한 번 맞는 주사를 맞고 1년이라도 연장을 해야 한다 해서 주사 맞기로 했어."애들이 통곡을 하며 애원해서...

"그래? 1달만 살다가 가면 아이들이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겠니... 1년이 10년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잘했다."

순희가 의학의 힘을 빌어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니 다시 밥맛이 확 돋았다. 친구가 더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주시는 그날까지라도 말이다.



강판에 간 감자전이 이렇게 씹히는 맛이 느껴지다니...이제야 맛이 느껴졌다.


조금 더 순희를 볼 수 있다니 '감사해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식사를 잘 마치고 근처 수목원으로 가기로 했다.

몇 달 동안 걸음도 못 걷고 누워만 있었는데 오늘 어쩐 일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기운이 난다 한다.

어제도 휘청거리며 넘어질 것 같아 소변줄과의 싸움을 했었는데...

우리를 만난다니 기운이 난 걸까?

입구부터 진달래가 반겨주었고 수목원이라 꽃과 나무들이 계절을 뽐내고 있었다. 순희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찬양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전에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다만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찬양을 하는 순희의 마음이 간절하게 느껴졌다.

언제 숨이 다할지 모르지만 주님이 거둬가시는 그 순간까지 오직 예수라고 하는 믿음을 본받고 싶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물이 차서 숨도 쉬기가 힘들었는데 성가대원처럼 우렁차게 부르는 걸 보니 참으로 놀라웠다.

'어떻게 저렇게 찬양이 나오지?'



긴 겨울 언 땅을 헤치고 솟아난 냉이를 몇 뿌리 뽑고 쑥 한 줌 캔 친구는 말했다.

"이렇게 만물이 소생하는데 내 목숨도 소생시켜 주실 것은 나는 믿는다."

라고..

나도 믿고 싶다.


다음 달에 또 빠삭한 감자전을 먹으러 오자며 아쉽게 친구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비가 후드득 떨어지는 수목원을 뒤로하고 서울로 귀가를 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친구 둘 사이로 비둘기가 찍혔다.

친구들에게 보내주니

"성령의 비둘기가 함께 있었네!"

라고 답이 왔다.

주님을 사랑하는 순희에게 생명을 조금만 더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냉이처럼 질기게 생명력 있게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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