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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이 뭐라 하더냐 곱기만 하더라

양다리 그놈이 미운게지.

by 김달래



대학 1년 때

미팅에서 만난 애랑 사귈 때였다. 지금처럼 철쭉이 필 무렵이다.

나랑 같은 과 여자를 꼬셔서 지리산 철쭉제에 갔다고 한다. 학교 선배가 산에서 보고 내게 귀띔해 준다.

"요것 봐라 세상이 좁은 줄을 몰랐구나 너!!"

다음날 돌아와 내 앞에 배시시 웃고 걸어오는 양다리를 책으로 뒤통수를 갈겼다.

"왜!!! 철쭉은 나랑 보러 가면 안 되었니?"

그 애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붉은색의 철쭉 색보다 더 빨갛게 물이 들면서 내 앞에서 도망치듯 꽁무니를 뺐다.

그게 나의 대학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머슴애의 모습이었다.

그 뒤로 철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세월이 40여 년이 흘렀다.

눈 한번 깜빡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말이다.

앞으로의 시간도 이렇게 금방 흘러가겠지.





비가 하루 종일 내린 어제는 꼼짝도 안 하고 종일 노트북과 씨름을 했다.

커피를 내리 3잔이나 마셔가면서 말이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내가 구독한 작가의 글만이 아닌 새로 올라온 글들도 찾아 읽었다.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어쩜 그렇게든 시도 에세이도 여행기도 잘 쓰시는지....


밤에 눈이 빡빡하고 말랐다.




오늘 아침,

친구 정희가 철쭉을 보러 가자 한다.

갑자기 좋지 않았던 그날의 일이 떠오르면서 (대학 때의 일)

"철쭉은 안 본다... 진달래라면 모를까?"

"진달래나 철쭉이나 거기서 거긴데 왜 그랭~~"

"맘 아픈 스토리가 있어서 그런다......"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뭘 담아두고 그러냐며 일단 나와라 하며 만날 장소를 찍어 보냈다.

친구에게 지난 스토리를 들려줄 겸 대충 옷을 갈아입고 얼굴에 선크림을 찍어 바르고

'양산을 쓸까? 에고 그것도 귀찮다 들고 다니기도 힘들어!'

가볍게 냉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들고 집을 나섰다.

이것도 어디다 두고 올 것 같아 잠깐 망설였다.


철쭉 동산 올라가는 입구의 모습이다.



오늘 가는 곳은 지리산이 아닌 군포 수리산이다.

친구가 지리산 가자고 했으면 진짜 안 간다 했을 것이다.(혼자 씩 웃어본다)


지하철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군포문화재단에서 제11회 군포 철쭉축제를 4월 19~ 27일까지 수리산역 철쭉동산에서 개최. 축제의 중심은 자산홍과 산철쭉 20만 그루를 심은 철쭉동산!


20만 그루면 얼만큼이지?

얼마 전 산불 나서 재가 된 나무들이 떠오르며 다시는 그런 재해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철쭉이 다 같은 건 줄 알았더니 자산홍이라는 종류와 산철쭉이 다른 모양이다.

진달래와 철쭉도 구별이 잘 안 되는 마당에 그저 색이 더 진하면 철쭉인 줄 알았다.

친구가 다행히 꽃박사이다.

집안 베란다에서 죽어가는 화초들도 살리는 묘한 기운이 있다. 보통 재주꾼이 아니다.


내가 진달래꽃과 철쭉이 구별이 안된다 하니

"진달래가 철쭉보다 일찍 꽃이 펴~

가장 쉬운 구분법은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먹을 수 있고

반면에 철쭉은 꽃과 잎이 동시에 핀다. 꽃 역시 진달래보다 더 진한 분홍색, 잎의 모양도 조금 달라. 진달래가 둥근 반면에 철쭉은 그보다 뾰족하다."

한참 꽃박사답게 설명을 해주는 친구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너는 모르는 게 뭐니? 먹고 싶은 게 뭐니? 설명을 잘해줬으니 밥은 내가 산다."



분홍에서부터 짙은 붉은빛까지 다채로운 색이 꽃동산을 덮으며 어우러진 풍경이

화려함 보다는 은은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작고 섬세한 꽃잎을 들여다보니 여러 장의 꽃잎이 모여 한송이를 이룬 걸 새삼 알게 되었다.

평일이지만 우리가 내려올 즈음에는 구경 온 인파들이 꽤 많아져서 교통 정리하는 분들도 더 늘어났다.




친구가 꽃구경 가자 할 때 갈 수 있고 밥 먹자 할 때 나갈 수 있고 친구의 허리디스크가 도져서 신경주사 맞고 눈물 뺀 이야기며 친정엄마의 치매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어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위로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텐데 이나마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전에 꽃구경도 다니고 산천구경도 다니자고 했다.


"다음 달은 장미 보러 가자"

"그래, 다리힘 있을 때 다녀 보자꾸나.

너 아니었으면 철쭉 보러 안 왔을 텐데 허리도 아픈 네가 나오라 해서 나왔다. 와보니 좋구먼"


지나간 양다리 머슴아 이야기를 들려주며 철쭉이 미웠던 사연을 들려주었다.

"철쭉이 뭔 죄겠니...

이렇게 곱기만 한데. 흐흐"

웃으며 지난 일들을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았다.

지난 일을 털어놓고 나니 꽃이 꽃같이 이쁘게 보였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수리산의 철쭉동산.

철쭉색이 더 깊어지며 내일은 더 짙어지겠다.

아직 오므리고 있는 꽃들이 꽤 있었다.

활짝 기지개를 켜고 뽐을 내보렴!!


오늘의 일기 끝!


[수리산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쭉 100미터 정도 내려가면 철쭉 동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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