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미스 리틀 선샤인>
조금 ‘다른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사람들이 투닥투닥 덜그럭 거리며 한 두 걸음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별난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엿을 날리는 모습이 통쾌하기도 하다. <펀치 드렁크 러브>,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로얄 테넌바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스위스 아미 맨>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나의 영화 취향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미스 리틀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봤다. 넷플릭스에서 묵직한 드라마를 정주행 한 후였던지라 단숨에 볼 수 있는 영화를 찾고 있었는데, 그렇게 한참을 뒤적이다 귀여운 이름을 가진 이 영화를 만났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무더기로 등장하길래 별생각 없이 영화를 재생했는데 단숨에 이 영화는 나의 취향저격 리스트 탑 쓰리 안으로 진입했다.
영화는 7살 먹은 딸 올리브의 미인대회 참가를 위해서 온 가족이 1박 2일로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의 프로필부터 조금은 남다르다. 엄마는 가족 몰래 담배를 태우고 올리브의 오빠는 ‘I HATE EVERYONE’이라 필담하며 묵언수행 중인 십 대 소년이다. 삼촌은 자살시도마저 실패한 미국 최고 프루스트 연구자인 게이에, 할아버지는 마약 복용으로 요양원에서 쫓겨난 색광, 그리고 아빠는 위너를 찬양하고 루저를 극혐 하는 동기부여 강연 자이지만 막상 자신은 성공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가족들은 온갖 소동을 겪으며 대회 장소에 도착하지만 전형적인 미인대회의 프레임을 쓴 소녀들을 보고 경악한다. 성인 미인대회와 다를 바 없는 빡센 헤어 웨이브와 눈 화장, 미끈한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탤런트 쇼를 앞두고 가족들은 말한다.
“저 무대에 올리브를 세울 순 없어. 올리브가 미인은 아니잖아. 모두가 올리브를 조롱할 거야. 올리브를 보호해야 해.”
하지만 결국 무대에 오른 올리브는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스트립 댄스를 춘다. 올리브의 무대를 본 관객들과 심사위원들은 무대를 멈추라며 소리친다. 하지만 가족들만은 일어나 박수를 치며 올리브를 응원한다. 결국 올리브를 무대에서 끌어내리려는 사회자를 막기 위해 무대에 난입한 가족들 역시 올리브와 함께 춤을 춘다. 그리고 이 유쾌한 무대를 보면서 나는 또 엉엉 울어버렸다.
‘중2병은 낫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특별하기보다 모난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이 가끔은 격하게 좋고 또 가끔은 격하게 미워지는 중2 시절의 마음, 시간은 그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억누르는 것뿐이라는 뜻이다.
성인이 되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남들과 같은 갑옷을 두른다. 나는 사실 별 것 없다, 대단할 것 없다, 남들과 바를 바가 없다, 며 스스로를 자위하면서. 하지만 그 갑옷 안의 내 마음은 정말 사라졌을까. 나아졌을까. 잘못된 치료의 부작용으로 문득문득 찾아오는 삶에 대한 회의를 인내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올리브의 가족들은 올리브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무대에 세우지 않으려 하지만 정작 무대 위에서 온 가족이 다 함께 춤을 춘다. 그렇게 올리브의 올리브 다움을 세상에 보여준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 모습을 보란 듯이 내보이며 그것이 얼마나 멋있고 즐겁고 신나는 일인지 온 세상에 자랑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올리브를 보호하는 진짜 방법이 아니었을까.
고장 난 밴을 출발시키기 위해 온 가족이 밴을 밀며 시동을 거는 장면이 영화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아마 우리의 하루하루 역시 키 꽂고 돌리면 쌩쌩 달리는 차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을 동력 삼아 계속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덜컹거리면 덜컹거리는 대로, 느리면 느 린 대로.
<미스 리틀 선샤인>을 다룬 짜샤팟 1화 듣기 : bit.ly/2QJoN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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