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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미 Jul 02. 2023

일곱 살에게 배우는 칭찬의 기술

칭찬은 고래 엄마도 춤추게 한다 

여느 맞벌이 부부와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의 아침도 정신없이 바쁘다. 몇 번의 알람 끝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을 흔들어 깨우고 안방 맞은편 방에 자고 있는 일곱 살 어린이를 최대한 다정하게 깨운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유치원에서 운동 수업이 있어서 바지를 고르고, 나머지 요일은 어린이가 좋아하는 치마를 골라서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어린이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어기적 어기적 잠옷을 벗는 것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씻으러 들어가면서 역시나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남편을 한번 더 깨운다. 내가 씻을 동안 남편은 식기 세척기에서 어린이의 유치원 도시락 통과 물병을 꺼내 유치원 가방에 넣는다. 어린이가 입기 힘든 옷이면 조금 거들어주기도 하지만 일곱 살이 된 어린이는 웬만한 옷은 이제 혼자 입을 수 있다. 


남편과 화장실 바톤 터치를 끝내면 따뜻한 밥과 국은 준비하지 못하더라도 유기농 우유와 시리얼에 정성을 가득 담아 아침을 준비해 준다. 어린이가 시리얼 한 숟가락 뜨는 것을 확인하면 얼른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리지 않으면 '얼른 먹어야지.'하고 재촉해야 제시간에 다 먹을 수 있다. 평소에도 밥을 잘 안 먹는데 아침에는 더 식욕이 없는 어린이는 한 줌의 초코 시리얼도 몇 번의 잔소리가 있어야만 다 먹을 수 있다. 


'물방울무늬는 이제 좀 아닌가.' 


옷장에서 짙은 남색에 흰색 잔잔한 물방울무늬가 있는 블라우스를 꺼내 입으면서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치마를 고르기 전에 잠깐 뒤돌아서서 화장대 거울을 봤다. 잔꽃 무늬는 서른 살이 되고 졸업했으니 물방울무늬는 마흔 살까지 입을 수 있지 않을까. 바쁘게 움직이지 않고 잠깐 서서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이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옷 입어.'하고 재촉했다. 흰색 물방울무늬에 맞춰 흰색 린넨 치마를 꺼내 입었다. 


'역시나 물방울무늬는 좀 그럴까.'


옷을 갈아입을 여유도, 새로운 옷을 꺼낼 부지런함도 없으면서 괜한 고민에 빠져 양말을 고르다 말고 다시 화장대 거울로 돌아서는데 남편이 '하루종일 옷 입을래.'하고 잔소리를 하길래 얼른 양말에 발을 쑤셔 넣었다. 아직 시리얼을 절반도 먹지 않았을 어린이에게 잔소리를 일발 장전하고 전투적으로 거실을 나섰다. 역시나 세상 입맛 없는 얼굴로 숟가락을 무겁게 뜨고 있는 어린이에게 한 소리를 하려는데 


"엄마, 오늘 그 블라우스 예쁘다. 치마랑 정말 잘 어울리네." 


생각지도 못한 일곱 살의 어마어마한 칭찬에 잔소리를 삼켜버리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엄마가 예뻐 보이는 일곱 살에게 그 진심이 담긴 칭찬이 기분 좋다. 게다가 일곱 살 어린이의 입에서 나온 '블라우스' 단어가 다른 때보다 더 품위 있게 들렸다.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릴 때부터 '입이 야무지다'라는 말을 많이 들은 어린이는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골 분식집에 좋아하는 스팸 주먹밥을 먹고 계산을 하고 나가는데 어린이가 카운터에 얼굴을 빼꼼 내밀고 "사장님 오늘 스팸 주먹밥 정말 맛있었어요. 잘 먹었습니다."라고 칭찬과 인사를 해 주어 그 식당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따뜻하게 웃어주기도 했고,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성탄절 보내세요."라는 인사를 해주어 듣는 이를 기분 좋게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떤 인사와 말을 할지 미리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는 걸까. 어린이가 하는 인사와 칭찬에는 어른과는 조금 다른 진심과 진지함이 있어 더 다정하게 느껴진다. 


칭찬이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 어린이는 종종 내게 사소한 칭찬을 해줬었다. 염색을 했을 때에는 "그 머리 색깔 엄마랑 잘 어울려. 나는 엄마가 아닌 줄 알았지 뭐야."라고 얘기해 한참을 웃게 하기도 했고 오므라이스를 해 준 아빠에게는 "아빠가 이렇게 요리를 잘하는 줄 몰랐네."하고 칭찬해 남편을 우리 집 명예 오므라이스 장인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어린이의 칭찬으로 자신감이 생긴 나는 당당하게 물방울무늬를 입고 출근했다. 온종일 들뜨는 기분이 들어 화장실에 갈 때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힐끔거리기도 하고, 걸을 때도 팔을 유난히 신나게 흔들어 품이 넓은 블라우스를 기분 좋게 펄럭였다. 팔에 부드러운 블라우스가 스칠 때마다 기분이 좋아 마음이 일렁였다. 


"어르신, 오늘 평소보다 더 건강해 보이셔요." 

복지관에 자주 오시는 어르신이 평소보다 더 기운이 좋아 보이셔서 칭찬을 하니 무척 좋아하셨다.   


"복지관 바닥이 거울 같아요. 발 디디기가 아까워요." 

복지관 어르신 일자리로 건물 청소를 해 주시는 어르신께 인사를 건네니 어르신이 고맙다며 기분 좋게 인사하셨다. 


일곱 살 어린이가 내게 해 주었던 칭찬처럼, 진심과 다정함을 담아 인사 나누니 마음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칭찬'이라는 단어는 알았지만 그동안 전혀 쓰지 않았던 사람처럼, 마치 꽁꽁 숨겨왔던 마법 주문처럼 진심을 담아 칭찬하는 법을 어린이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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