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by 지니쓰

무력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답답하고 갑갑하다.


내가 해결할 수 있었던 일들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일들이

작아지고 적어지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다.


결혼 이민으로

외국에 거주하는 나는 비자 때문에

제한적인 삶을 살고 있다.

물론 거주에 대한 문제는 없지만,

일을 할 수 없는 비지터비자에 갇혀있다.


이곳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갔고

적응은 이만치 하면 된 것 같은데

일할 수 있는 비자를 신청할걸 그랬는지

갑갑하고 답답하다.


그런데 또 애석하게도

비자 신청 무렵에는 언제나

아기의 소식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좋은 시절에 이민을 와서

간간히 한국에서 이것저것 외주를 받아

원고를 쓰기도 하고 레포트를 첨삭해 주며

글로소득을 벌고 있긴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다 보니

갑갑하고 무기력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노동이란 얼마나 숭고한 가치인가

노동이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는가를

느껴보면서 긍정 회로를 연신 돌렸지만

이제 이것마저도 이골이 낫는지

지쳐서 까무러쳐 있는 상황이다


삶에서 많은 역경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내 힘으로

헤쳐 나갔던 것들이 많았었는데

비자나 2세 계획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보니

무력감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자니

성질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이런 불같은 성질을 죽이라고

수양의 시간을 주시나 싶기도 하고

벌을 받는 건가 싶기도 한데

어찌 보면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남편은 오늘도 나가서 일을 해

발등이 다 까지고

피부가 여리기도 하여

손 허물이 벗겨지고 있는데

난 그냥 집에서 이런저런 글이나 쓰고 있으며

비자 때문에 일을 못한다면서

푸념만 늘어놓고 있으니

진짜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격 수준이다.


그렇지만 비자의 문제로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내가 주체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에

마음이 바삭바삭

말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은 부정할 수 없다.


자유라는 것은,

실로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팔자 좋은 소리도 늘어나보지만

도무지 마음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다하고 살 수는 없고

성질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살면 살아진다는 말처럼

몸을 일으켜서 햇빛을 받고

밀린 집안일들을 하고 부지런을 떨어본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란다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 운명과 모든 것을 시간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짜증이 난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니

이 말을 보약 삼아 또 애써 꾸역꾸역 삼켜본다.

너무 역해서 토할 것 같아도 다시 집어넣어본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니 어떻게든

마음에 털어 넣어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참는 것을 아는 것일지도

삶을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는 인내를 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호강을 위해

여기까지 왔던가 싶기도 하다가

잠자는 그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이 사람 때문에 왔구나 하곤 한다.

그리고 또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무한한 자신감이 샘솟기도 한다.



이런 아이러닉 한 상황이 반복되는

이곳은 이방인의 나라이며

내가 택한 삶이다.


그러니 또 부지런히

무너져 내리는 마음들을

불뚝불뚝 올라오는 마음들을

모두 다 끌어안고서

모두 다 짊어지고서

걸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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