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는 사람은 알지만, 이역만리타국 땅에 거주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 유산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의 표정 변화로 상황의 심각성을 먼저 캐치했었어야 했던 내 기분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첫 번째 유산 때 외국인 의사는 나에게 큰따옴표를 강조하는 브이자를 양손 모두 까딱이며 “very commonly”라고 강조했다. ‘흔히 있는 일이다’라는 뜻이었다. 실의에 빠진 나를 위로하고자 한 말이었을 것이다. 12주 미만의 초기유산은 흔한 일이므로, 의사에게 있어서는 그 말이 최선의 위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흔한 일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는 흔한 일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아니 흔하지 않은 나의 첫 번째 계류유산을 겪었다. 계류유산이란 태아가 모체 내에서 사망한 것을 말한다. 내 경우, 주수상 9주 정도 되었어야 했는데 태아의 심장이 멈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렇게 낯선 나라에서 약물에 의존하여 첫 번째 유산을 겪었다. 그러나 이 일로 주저앉아있기에도 너무 고여져 있기에는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 스스로 좀 먹지 않길 바라며 별 일 아닌 듯 털어내고자 애썼다. 계류유산이란 일이 컸지만, 타국 땅에서 살아남는 일이라는 게, 버텨내야 한다는 일이라는 게 내겐 더 시급한 일이었다.
이 시기 이후로 1년 정도 지나서 고사난자 판정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 아마 이 시기 이후가 내 난임의 시작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 정체불명의 불임‘을 판정받은 난임여성이며, 아직도 아이의 소식을 기다리는 3년 차 예비맘이다. 3년이란 시간은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 이 3년은 길었고, 아직도 기나긴 터널 혹은 심해 어딘가로 느껴졌다. 이에 마음을 정리하며 나의 난임일지를 써보도록 한다.
참고로 아직 시험관은 하지 않았다. 물론, 시험관을 하면서도 난임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노력과 슬픔에 비하자면 나의 난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슬픔의 무게는 각자에 따라 다르며 우리는 모두 다른 경험을 하기에 그냥 덤덤히 내 이야기를 써내려고자 한다. 누구의 경험을 힐난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므로 혹여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글이 아니기를 바라본다.
난임과 유산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게,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구의 아픔이 더 크다는 둥 슬픔을 비교하며 천하제일슬픔대회, 불행배틀 같은 것을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픔이나 고통을 비교해 내가 더 낫다는 위안을 삼고 싶지도 않다. 그냥 각자의 인생에 무게가 있듯이 각자의 난임의 무게가 있는 것이다. 그냥 나의 난임 일지도, 그중 하나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