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어?
저녁은?
아침은?
엄마가 나를 보면 늘 하는 첫 한마디 말이다.
어릴 적에 꼬꼬마인 나에게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신호였고.
"영수야 저녁 먹어라~"
고등학교, 대학시절처럼 집에 가끔 들어갈 때는 인사말이었고.
"저녁은? 먹고 왔어?"
결혼하고 분가한 이후에는 전화 너머로 건네는 안부의 말이었다.
"아침은 얻어먹고 다니니?"
평범한 말이었고, 익숙한 말이어서 들리지 않던 말이었다. 그날까지는
2019년 9월. 유난히 기대되는 추석이었다.
여름 내내 바쁜 일정으로 쉬지 못한 탓에 이번 추석이 나에겐 휴가 같았다.
하루라도 더 즐기려는 기대로, 밤에 살짝 무리해서 전남 시골에 있는 처가엘 먼저 갔다.
파란 하늘이 참 예뻤고, 공기도 상쾌했다.
꿀맛 같은 연휴 첫 날을 잠시 즐기던 사이
평소 전화를 안 하던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집에서 오는 모든 연락은 엄마가 하는데,
아버지가 전화한다는 건 좀 이상했다.
이상하다는 생각도 잠시
"야, 큰일 났다. 큰일 났어. 그러니깐.. 어떻게 하냐."
말이 어눌한 아버지는 큰일 났다는 말만 반복했다.
엄마는 뇌혈관 문제로 응급수술에 들어갔다고 했다. 뇌출혈이었다. 위험했다.
아버지는 병원 관련 일들을 처리할 수 없었다. 그런 일들은 모두 엄마 몫이었으니까.
근처에 살고 있는 사촌에게 급히 SOS를 치고,
내려온 지 몇 시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살려주세요. 이렇게 갑자기는... 아니잖아요.'
운전하며 나는 딱 한 가지만 기도했다.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든 일들이 후회되었다.
바쁘게 산다고 애 봐줄 때, 필요할 때만 엄마를 찾던 내 모습.
도착해보니 아버지는 그저 힘없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담당의사에게 현재 상태와 이후로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들었으나 들어오지 않았고, 최악의 상황을 얘기하는 의사의 직업적인 절차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때는 몰랐다. 생각보다 그 의사가 명의였으며, 이야기한 최악의 상황이 정확하게 들어맞을 거라곤.
그날 저녁. 다행히 의식이 돌아왔고, 엄마는 나를 알아봤다.
다행히 몸에 마비 증상은 아직 없었다.
밥은...... 먹었...어?
나를 보자마자 한 엄마의 첫 한마디 말.
산소 호흡기 너머로 겨우 흘러나왔다.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늘따라 저 인사말이. 지나치던 한 마디가. 가슴에 들어왔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도 엄마는 아들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단다.
멀리 가있는 애 걱정한다고. 엄마는 늘 그렇다. 쟤 몸이 부서져도 하나뿐인 자식이 먼저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밥은 먹었어?'라는 엄마의 말은 늘 인사말 이상이었던 것 같다.
지금 저 말은
'처가엔 잘 갔다 왔니? 올라오는 길은 막히지 않았고? 엄마 때문에 빨리 오느라 고생했겠다.
정신없이 오느라 밥도 못 먹었을 텐데 차려주지도 못하고 걱정이네.'
라는 말인 것 같았다.
면회시간 때문에 중환자실에 엄마를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추석 명절의 냉장고에는 고기 등 온갖 재료가 한창이었지만,
엄마가 없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국, 그날 아버지와 나의 첫끼니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가능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는 찬장에 있는 라면을 끓였다.
진라면 순한 맛. 매운 것을 잘 못 드시는 엄마가 좋아하는 라면이었다.
라면을 먹으며 두 부자는 말없이 비 오듯 땀만 흘렸다. 눈물이었을까? 들을 수는 없겠지만, 조용히 읊조려 보았다.
엄마... 밥 먹었어. 걱정 말고 푹 자고 내일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