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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강경재
Jul 31. 2024
거제 두모마을에서
앙(仰) 이목구심서Ⅱ-48
거제 두모마을의 한 펜션에 왔다.
이곳은 매미성이 가까이 있고 멀리에 거가대교가 보이는 작은 어촌마을이다.
이박 삼 일간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지내고 있다.
낯선 방, 익숙해서
문턱이 닳아
지워진
아침이다.
파도가 황량한 꿈의 영토에까지 물밀져 온다.
물방울들이 부딪는 파도는 꿈의 광장에 들어와 모든 허상을 밀어낸다.
꿈속 모난 존재들이 잠잠해지니
잠
이 맑아진다.
파도소리는 정수리에서부터 새끼발가락까지 훑어내리듯 통과하며 남은 찌꺼기를 쓸어간다.
2박을 여기서 한다.
자고 나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 같이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이처럼 숙면할 수 있는 것은 파도 때문이 아닐까.
자장가처럼 다독여 주는 파도는 잠에 취하게 만든다.
파도는 노래로 나를 덮어주고 편안하게 잠들도록 밤새 다독여 주었다.
나의 호흡은 파도의 몸짓에 맞춰 들숨과 날숨을 반복한다.
몸 안의 세포들은 고향의 소리를 듣고 있다.
수십억 년 전 엄마의 뱃속 같던 바다의 냄새를 맡는다.
생명에겐 태초의 소리, 가장 근원의 소리다.
그래서 바다에 오면 늘 편안해지는가.
막힌 곳이 뚫리듯 상쾌해지고 눈동자는 곧 순해진다.
고향을 찾은 막내아들처럼 따뜻해진다.
파도소리에 정신이 맑아져 베란다로 나온다.
태양이 바다 위에서 이글거리고 바다와 마을은 데워지는 물처럼 안개가 피어올라 사위는 해무로 뻑뻑하다.
눈앞에 퇴역한 배처럼 떠 있던 섬들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다만 파도소리만 싱싱하다.
이곳은 몽돌해변으로 파도소리가 특별하다.
파도는 율동처럼 리드미컬하게 찾아온다.
밀려와 해변에 부딪치는 소리는 어느 바다나 같을 것이다.
그러나 들어왔던 파도가 물러갈 때 나는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몇 번을 작게 다가오던 물결이 한 번은 세력을 키워
해변을 친다.
"쏴아아 아~"
"쏴라라라 락~"
소리는 해변을 따라 파노라마져 길게 이어진다.
몽돌사이에서 물이 새어나가며 나는 소리다.
한 덩이가 되어 무겁게 다가오던 파도가 잘게 부서지면서 구르는 소리다.
잘게 부서진 소리 알갱이가 동글동글 해변을 구른다.
이는 파도가 내는 함성인지, 검은 몽돌이 우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큰 물결일수록 빠져나갈 때의 소리는 강열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푸른 바다가 타다닥 타는 소리인 듯, 검은 몽돌이 비보이처럼 몸을 굴리는 듯. 무수히 많은 구슬이 한꺼번에 쏟아져 부서지는 소리인 듯.
어떨 땐 거대한
바다용
의 발소리 같아 몸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리산 자락은 사위가 녹음으로 물결치는 나뭇잎의 바다다.
눈앞의 산과 강과 약간의 논밭은 땅에 뿌리를 깊숙이 박고서 바람에 일렁이는 머리카락처럼 몸을 흔든다.
그래서 이 녹색의 바다는 가슴에 흘러 들어와 가득 들어찬다.
이때의 내 가슴은 채움에서 오는 충만함이다.
든든한 그 무언가가 있어 편안해진다.
그러나 두모마을의 물방울 가득한 바다는 내 안으로 밀고 들어와 역시 나를 채운다.
이때의 내 가슴은 텅 빔의 충만함이다.
비어있기에 마음은 가볍고 시원하다.
가리어졌던 장막이 사라진 후의 통쾌함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산골을 잠시 떠나 바닷가에서의
한가로움
은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이래서 낯선 곳으로의 떠남은 필요하다.
여행의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이제 즐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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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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