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경재 Jul 31. 2024

거제 두모마을에서

앙(仰) 이목구심서Ⅱ-48


거제 두모마을의 한 펜션에 왔다.

이곳은 매미성이 가까이 있고 멀리에 거가대교가 보이는 작은 어촌마을이다.

이박 삼 일간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지내고 있다.


낯선 방, 익숙해서 문턱이 닳아 지워진 아침이다.

파도가 황량한 꿈의 영토에까지 물밀져 온다.

물방울들이 부딪는 파도는 꿈의 광장에 들어와 모든 허상을 밀어낸다.

꿈속 모난 존재들이 잠잠해지니 이 맑아진다.

파도소리는 정수리에서부터 새끼발가락까지 훑어내리듯 통과하며 남은 찌꺼기를 쓸어간다.


2박을 여기서 한다.

자고 나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 같이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이처럼 숙면할 수 있는 것은 파도 때문이 아닐까.

자장가처럼 다독여 주는 파도는 잠에 취하게 만든다.

파도는 노래로 나를 덮어주고 편안하게 잠들도록 밤새 다독여 주었다.

나의 호흡은 파도의 몸짓에 맞춰 들숨과 날숨을 반복한다.

몸 안의 세포들은 고향의 소리를 듣고 있다.

수십억 년 전 엄마의 뱃속 같던 바다의 냄새를 맡는다.

생명에겐 태초의 소리, 가장 근원의 소리다.

그래서 바다에 오면 늘 편안해지는가.

막힌 곳이 뚫리듯 상쾌해지고 눈동자는 곧 순해진다.

고향을 찾은 막내아들처럼 따뜻해진다.

파도소리에 정신이 맑아져 베란다로 나온다.

태양이 바다 위에서 이글거리고 바다와 마을은 데워지는 물처럼 안개가 피어올라 사위는 해무로 뻑뻑하다.

눈앞에 퇴역한 배처럼 떠 있던 섬들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다만 파도소리만 싱싱하다.


이곳은 몽돌해변으로 파도소리가 특별하다.

파도는 율동처럼 리드미컬하게 찾아온다.

밀려와 해변에 부딪치는 소리는 어느 바다나 같을 것이다.

그러나 들어왔던 파도가 물러갈 때 나는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몇 번을 작게 다가오던 물결이 한 번은 세력을 키워

해변을 친다.


"쏴아아 아~"


"쏴라라라 락~"

소리는 해변을 따라 파노라마져 길게 이어진다.

몽돌사이에서 물이 새어나가며 나는 소리다.

한 덩이가 되어 무겁게 다가오던 파도가 잘게 부서지면서 구르는 소리다.

잘게 부서진 소리 알갱이가 동글동글 해변을 구른다.

이는 파도가 내는 함성인지, 검은 몽돌이 우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큰 물결일수록 빠져나갈 때의 소리는 강열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푸른 바다가 타다닥 타는 소리인 듯, 검은 몽돌이 비보이처럼 몸을 굴리는 듯. 무수히 많은 구슬이 한꺼번에 쏟아져 부서지는 소리인 듯.

어떨 땐 거대한 바다용의 발소리 같아 몸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리산 자락은 사위가 녹음으로 물결치는 나뭇잎의 바다다.

눈앞의 산과 강과 약간의 논밭은 땅에 뿌리를 깊숙이 박고서 바람에 일렁이는 머리카락처럼 몸을 흔든다.

그래서 이 녹색의 바다는 가슴에 흘러 들어와 가득 들어찬다.

이때의 내 가슴은 채움에서 오는 충만함이다.

든든한 그 무언가가 있어 편안해진다.

그러나 두모마을의 물방울 가득한 바다는 내 안으로 밀고 들어와 역시 나를 채운다.

이때의 내 가슴은 텅 빔의 충만함이다.

비어있기에 마음은 가볍고 시원하다.

가리어졌던 장막이 사라진 후의 통쾌함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산골을 잠시 떠나 바닷가에서의 한가로움은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이래서 낯선 곳으로의 떠남은 필요하다.

여행의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이제 즐겨보련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숲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