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조 - 출발하기
출발 | AI 인공지능 시대, 사람은 어떻게 인간의 고유성, 인간성을 확립, 보존할 수 있는가? 인간의 성능을 넘어서는 기술, 인간 능력 대체 현상에 패배, 좌절, 무기력으로 무너진 바닥-인간은 어떻게 존엄성을 회복하고 인간 자아를 재정립할 수 있는가? 인간의 능력, 성능을 대체하는 기술에 떠밀려 존엄성과 자아 정립법을 잃어버린 시대,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은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인간성을 존립, 보존할 수 있는가? 지능(이성)과 대립된 몸성이 그 기지基地라면 바닥에 누운 무기력한 몸이 어떻게 다시 존엄성을 회복하고 역신체화를 거쳐 인간 자아를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인가?
1 구간 | 인간의 몸
현재의 인류는 지난 세기와 사뭇 다른 위기를 맞았다. 인간사회 내의 경쟁, 싸움만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과 성능을 대체하는 기술, 인공지능에 떠밀린다. 인간의 지능, 정신이 다른 종種의 우위에 있는 자부심으로 이룩한 문명 위에서 기술의 종種이 인간의 지능을 대신할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우위를 가능하게 했던 기존의 존엄성과 그를 바탕으로 이룩한 자아 정립법을 잃었다. 존재 의미의 모호성, 삶의 실행력에 대한 무기력증에 빠지고 정확한 승부 없는 패배, 경제원리 싸움에서 밀려난 좌절감을 겪고 있다.
기술의 개발과 소비를 동시에 누리며 함께 성장한 세대는 AI와 같은 시간대를 공유했다. 기술은 대단한 성과, 인간을 대체할 만한 성장세와 경제적 가치를 취득했고 인간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세계에 종속되었다. 기술의 지배에 대한 두려움, 상대적인 패배감, 도리어 기술에 값을 지불해야 하는 삶과 인간성의 경제 가치 하락과 같은 무기력한 상태에 이르렀다. 심지어 디지털 리터러시와 인공지능을 위한 철학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마당에 인간은 어떻게 이 틈바구니에서 고유한 인간적 가치와 인간성을 보존하고 인간적 자아를 존립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찰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작금의 좌절을 떨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 고유성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보존하고 인간성을 존립하며 기술과 병행하는 세계에서 자아를 정립할 수 있겠는가?
나는 ‘몸’을 그 대답의 장소로 정하려 한다. 고대 그리스철학 시기부터 ‘정신’에 대립한 ‘몸’은 이성, 지성보다 낮은 가치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의 몸 안에서만 실현 가능한 이성, 지성의 한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한계를 지정하던 몸이야말로 도리어 인간만의 것임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근대 철학은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인공 지능, 정신적인 활동, 지능과 대립된 ‘몸’이야말로 인문학의 새로운 기지基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연약하며 유한한 인간적인 유연한 기지다.
몸의 철학, 몸의 인문학은 이미 많은 사유의 질료다. 사르트르, 들뢰즈, 지젝. 퐁티, 등 많은 철학자들이 언어로 상기시킨 개념은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극단적인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실체인 몸의 움직임이 아닌 형이상학적 몸에서 출발한 언어의 특징을 띤다. 다흔 한 편에서 몸에 극단적으로 집중한 예술 작품이 창작, 향유된다. 오로지 몸만으로 귀결되는 극단적인 형태다.
우리에게는 적당한 온도가 필요하다. 몸과 지능을 동시에 운영하며 살아내야 한다. 두 개의 극지점이 만나 36.5•를 유지하는 인간다운 장소를 세워야 한다. 따라서 극단적이지 말 것, 몸으로만, 이성으로만 사유하지 말 것, 복합적 Compound으로 할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애매모호한 것, 결과값으로 증명하지 못할 것을 추구하는 길이다. 명확한 값으로 대응하지 않는 길이다. 인간성과 몸이 그렇듯이 절대 진리 외에는 단일하지 않을 것.
2 구간 | 바닥
기지基地는 바닥이다. 몸은 눕는다. 앉는다. 딛는다. 중력과 바닥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바닥’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떨어짐, 좌절함, 실패, 패배, 무기력이 바닥의 것이다. 알 수 없는 신체화 증상에 시달리고 정신적인 것에서 몸으로 밀려 들어온 통증에 인간의 몸은 바닥에 누워 있다. 기술에 밀리고 인간 사회 내에서 인간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려 추락Fall down한 상태이다. ‘바닥’은 그야말로 현재의 자리이다.
나는 바닥을 딛고 살아야 하는 인간 존재의 숙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바닥을 디뎌내는 방법을 알기 이전에 '바닥에 달라붙은 몸' 을 집중하고자 한다. 바닥의 성질, 바닥-몸의 관계를 연구하고자 한다. 정신에서 몸으로 인과 되는 ‘정신 위주의 철학’의 방법이 아니라 인공지능에 대항하는 몸, AI에 저항하는 몸성의 인문학을 숙고해야 한다. 즉 정신에서 신체로 이어지는 ‘신체화’의 방향을 바꾸어 신체에서 정신으로 이관되는 ‘역신체화’의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그래야만 바닥을 밀어냄, 딛음, 버팀의 상호로 '나-나'(*AI는 타인인가? 나의 투영인가? 또는 실체없는 대상인가? 아니면 인류 정보의 총체인가? 마르틴 부버의 태초어 '나 - 너'의 자아정립이 AI를 통해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AI를 통해 의사 결정하는 세대에게서 AI는 거울이 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후술) 의 온전한 존립을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닥은 실제實際이며 인간은 실제하는 몸이다. 몸과 감각은 데이터로 변환될 때 많은 부분 유실된다. 실제實際는 오직 실제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실제實際 자체에 대한 감각의 실재實在다. 반드시 실제에 대한 감각의 실재로 몸의 실체를 구축해야 한다. '실재 감각'을 통해 가상공간 공감각에 길들여지고 있는 비실재적 감각을 환원하고 철저히 바닥-몸의 경험적 인문학이 체화되는 과정을 실험해 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인간성이 보존되고 재정립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해야 한다.
바닥에 있는 몸을 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움직임이다. ‘바닥에 놓여있음’의 상태를 벗어나게 하기, 바닥을 접촉하는 몸이, 몸 안에서 생성되는 사유가 계속 움직이게 하기,이다. 바닥과 몸이 맺는 격렬한 행위 실험은 역신체화를 통해 행위로부터 정신으로 순환된다. 신체의 박동성, 리듬성, 생명의 신호인 움직임의 흐름과 유지를 바닥과 함께 함으로써 바닥을 한계가 아닌 필요조건으로 인식전환 할 수 있을 것이다.
3 구간 | 사유 - 인문학 - 철학하기
인간성의 지속, 보존이 가능한 미래적 인문학을 목표로 해야 한다. AI와 미래 기술에 잠식당할 인문학을 고려하여 “(인공)지능에 저항하는 인간성”에서 출발한다. 이는 전통적인 ‘지성, 이성’ 우위의 철학의 반동인 들뢰즈, 지젝, 퐁티의 신체 인식의 결을 따른다. 더 심화될 ‘상실된 인간 지성의 존엄성’의 현상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는 현재, 인문학-철학은 더 이상 이론만으로 버틸 수 없으며 현존하는 몸성의 수행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인문학에서 몸성으로, 신체화(육화)한 기존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뒤집어야 한다. 몸에서 출발해 인문학으로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사유는 몸-정신심리-언어(이론)의 순환으로 이루어진다. 몸은 출발점이다. 몸의 항구성, 감각으로부터 오는 인지를 바탕으로 하는 지능으로 출발해 몸으로 사고할 줄 알아야 한다. 몸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인지상태의 몸으로 행위Act-move한다는 것이다. 명상은 몸을 정적인 상태로 몰아 무의식의 몸을 통해 인지에 다다르도록 유도해 별도의 세계를 구축한다. 별도의 세계는 이 고찰을 시작하게 한 현재 - 미래의 세계와 거리감을 생성한다. 현제, 실체에 즉각 반응하는 의식적인 상태의 인지와 인지상태의 행위로 사고하는 방식만이 인간성과 기술성의 양립 병행 세계와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정신심리는 중간자다. 몸은 정신심리를 통해서 사유 가능하며 이 과정이 관찰되어야만 유의미한 자료를 축적할 수 있다. 몸과 지성의 교가로 사유의 통로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인문학은 반드시 언어로 귀결되어야만 한다. 언어로 정립하고 학문화할 때 그 가치를 가늠, 유지,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다시 실제로, 몸으로 환원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몸-정신 심리-언어는 다시 몸으로 순환되며 끊기지 않는 사유의 순환으로 '지속 순환의 사유‘가 된다.
어느 때보다 불투명한 미래와 단발적인 사유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무기력한, 무력한, 좌절된 바닥에 누운 세대이다. 그러나 몸이 존재하는 한, 중력과 바닥을 이용해야 하며 바닥에 누운 몸에서 출발한 정신심리, 언어로 순환하는 사유를 시도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간’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기술에 둘러싸인 삶에서 나의 인간적 가치를 찾고 바닥을 친 인간 가치의 존엄성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가상에서는 체감할 수 없는 인간성은 어느 정도의 부피감을 갖고 바닥에 누워 있는가, 철학하기를 시작하며 기지개를 켠다.
ⓒ EHP 박은혜
2025. 05.29 Park Eun hye박은혜
『딛는 몸 - 철학의 장소』첫 번째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