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움직임 사유 1

서울 국제 즉흥춤축제 (탄츠테이터원스)

by Ggockdo



즉흥 공연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


즉흥공연은 장르를 막론하고 허들이 높다. 뚜렷한 서사, 예상 가능한 서정 없이 "예기치 못 "하게 펼쳐지는 즉흥 공연에 어떤 관람태도를 가져야 할지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즉흥 공연의 재미를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은 공연자(창작자)와의 감각적인 교감으로 이뤄지는 관람의 묘미를 절대 잊을 수 없다. 공연자도 관람자도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서로 궤를 맞추어가는 즉흥 공연은 어떤 의미로 정신적 이머시브, 혹은 교감Correspondant형 공연의 형태를 띠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즉흥 공연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명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즉흥은 해프닝 Happening, 감각 Sense, 혹은 현존 Dasein, 그 밖에 다양한 것으로 이루어진다. 단일하지 못한 복합적인 움직임** Compound Movement의 성질을 가졌다. 따라서 우리는 즉흥 공연을 통해 단일하지 않은 것을 느껴야 한다. 만약 단일한 주제, 서사, 단일한 서정을 찾으려 애쓴다면 즉흥이 가진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는 셈이다. 단일, 하나만으로 만족하려는 마음이나 젓가락으로 한 가지 요소만 콕 집어내려는 욕심을 버리고 좀 더 큰 것, 넓은 것을 느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섯 개 팀의 즉흥 공연을 보고 난 후에 많은 말을 나누었다. 이같이 풍성한 말들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이 단일하지 않은 서정, 복합적인 운동성이 뒤흔든 복합적인 심상 때문이다. 우리는 이 복합적인 심상을 느껴야 한다. 우리의 삶은 결코 단일하지 않고 이 짧은 즉흥 공연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복잡하며 해프닝과 감각과 실재적이고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삶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의 의거하여, 우리 삶의 경험자로서 즉흥 공연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즉흥을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어떠한 의도나 목적이 없는 담백한 사람 자체의 이야기를 누릴 수 있다. 억지로 감정과 감각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도 없고 복선과 강요 없이 일상의 속도로 진솔하게 다가오는 몸짓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즉흥 공연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몸이 살아 있다는 것의 담담하고 깊은 감흥을 잔잔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Happening, Sense, Being의 요소에 대한 즉흥의 논의는 후술한다.

** 복합적 움직임Compound Movement은 복잡한, 다양한 Complex-Variety movement 움직임과 다르다. 몸은 단일하지 않으며 움직임 또한 거의 동시다발적인 복합적인 움직임이다.


의미 없는 것을 공들여할 때, 생기는 의미 The Meaning comes from recherché insignificant |


즉흥적인 움직임은 대단한 의미를 담은 상징이 아니다. 무용도 제스처나 언어처럼 적절히 기호화되고 기성화 된 신호를 갖는다. 그러나 즉흥은 예고 없이 켜지는 신호들이며 갑작스럽게 발음되는 말들이다. 그래서 때로는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움직임에서 어떤 신호를 기호를, 의미를 찾고 연결해서 문장으로 만들려 애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특별한 의미나 완성형의 문장 찾기를 그만두게 된다. 그때부터 진짜 감상이 시작된다.

다섯 개의 공연 중 가장 좋았던 즉흥은 그런 것들이었다. 어떤 특별한 의미, 의도가 담기지 않은 움직임이 주가 되는 무대였다. 특별한 캐릭터나 서사 없이 담박하게 다가오고 버리는 것 없이 모두 진중한 움직임이었다. 의미, 의도를 가지지 않은 몸은 오로지 진심으로 꽉 차 있었다. 특히 탄츠테아터원스의 삼인 즉흥은 몸과 마음이 복합된 Compound 상태로 무대에 올라 아주 단단하고 작은 움직임 하나 버릴 것 없는 순수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무대가 다른 공연보다 돋보였던 것은 공들인 움직임에서 발생한 풍부한 뉘앙스 덕분이었다.

이들을 제외한 4개의 팀 모두가 즉흥 음악 연주와 동행했다. 두 개의 즉흥 그룹, 음악과 무용 그룹의 시너지는 놀라운 무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몰입 전 단계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서로의 융합점을 찾기 위해 무대에서 주변을 환기하고 뉘앙스를 맞춰가는 과정까지 모두 가감 없이 드러났다. 과정의 노출은 관객을 즉흥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가이드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연주자와 무용수 모두 아직 몸과 마음이 덜 복합된, 몰입지점에 아직 다다르지 못한 상태를 드러내 관객에게 혼란을 주기도 했다. 반면 탄츠테아터 원스는 간단한 무드를 주는 사운드를 배경으로 이미 몸과 마음이 충만한 상태로 무대에 등장했다. 관객은 특별한 준비나 관찰 없이 바로 몰입된 삼인의 무용수에 직접 몰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짧은 공연시간에도 불구하고 가장 밀도 높은 무대로 기억되었다.


즉흥적인 공연의 움직임은 의미로 지은 움직임보다 훨씬 더 또렷해야 한다. 훨씬 더 확신을 가지고 분명하게 움직여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보편적으로 '즉흥'은 '준비되지 않은 선'으로 취약한 맥락과 불분명한 것, 애매모호한 성질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리어 무대, 작품으로서의 '즉흥'은 매 순간 확실한 것, 보다 치밀하게 준비된 것, 인위적이지 않은 무한한 연결로 이뤄지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 무용수가 공들여서 자기의 매 순간의 움직임을 분명하게 발음해 주어야만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고 형태 없는 형태를 읽어낼 수 있다. 분명한 움직임, 공들인 움직임은 흔들리는 즉흥적 순간을 엮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의미는 관객 개인이 모두 각자의 마음에 맺히는 것이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고 애초에 공연이 의도하지 않은 의미다.

후발된 의미는 사전에 예고대로 솟아나지 않는다. 사람이 타인에게 말을 할 때, 타인이 자기의 의도대로 말을 알아들을 확률은 40%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공연들은 사전에 예고한, 의도한 의미를 전달하려 짧게는 20분 내외, 길게는 한 시간 반 동안 많은 말과 음악과 몸짓으로 전달하여 애쓴다. 그러나 결국 의미는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좋은 즉흥은, 오히려 준비된 의미 없이 진행되지만 도중에 분명한 의미를 생성한다. 각자만의 의미지만 나중에 감상평을 들어보면 결과 색은 비슷하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라 공들이는 것, 몸과 마음이 이미 복합되어 밀도 높게 몰입된 상태의 발현일 것이다. 몸은 정직하고 몸짓은 의미 없이 다가와 의미가 된다.



준비된 우연prepared Accident,Improvisieren & 던져진 몸, 회수하는 몸thrown body, body recover |

*** 위의 개념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사유하도록 한다.


즉흥에도 이제 여러 차원, 다양한 결이 생겼다. 다섯 개의 팀만이 아니라 컨템퍼러리의 시대, 모두가 각자만의 즉흥이 있다. 꽤 많은 즉흥 공연, 워크숍, 수업을 체험하면서 격차를 발견한다. 격차는 '준비된 우연'에 있다. 말라르메가 말한 '주사위는 결코 우연을 배제할 수 없으리(Un Coup de Dés jamais n'abolira le hasard 한 번의 주사위가 결코 우연을 배제할 수 없으리라. Stephane Mallarmé)의 준비이다. 즉흥에서 일어나는 우연은 준비된 우연이어야 한다. 짜인 우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을 유도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협업의 즉흥 공연으로 해외 무용/음악인과 짧은 시간 호흡을 맞춰야 했던 공연이 많았던 만큼, 짜인 우연이 많지 않았다. 공연자들이 무대에서 우연을 발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준비된 것(이것을 역량이라고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과 우연 발생을 위한 시도뿐이었다. 마지막 공연이었던 HuanBo_JIa & Li Meilling & 주희 & 김원 & Tamura Ryo 팀의 공연은 우연을 발생시키기 위한 시도가 좌충우돌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앞선 공연들로 무대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어려운 환경에서 뮤지션 타무라 료와 젊은 대만 무용수들은 기성화 된 동작과 접촉을 통해 우연을 발생시키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Daniel Yeung & 남정호 팀은 가면과 손전등, 장구 등 준비된 오브제 준비를 통해 우연을 발생시키기 위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준비된 우연을 내재한 채로 무대에 올라온 무용수들도 있었다. 외국인 무용수들은 언어를 배제한 채 오로지 움직임만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우연을 내재한 준비가 철저해 보였다.

탄츠테아터원스는 무대 전에 공연을 위한 '준비된 우연'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공연 팀 중 가장 팀의 결속력이 강한 만큼 준비된 우연을 무대에서 발생시키기 위한 몰입을 이미 거치고 무대에 임했다는 것이다. 우연이 준비된 움직임에 대비되는 것은 던져진 몸이었다. 어쩌면 즉흥에서 실수하기 가장 쉬운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던져진 것은 다시 회수되어야 한다. 반동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즉흥은 액션 Action으로 끝나는 단발마가 아니다. 그것의 연속이다. 연속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던져진 것을 회수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우연은 던지기만 할 뿐 쉽게 회수하기 어렵다. 우연을 발생시키기 위해서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던져지는 몸들은, 그 자체로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연결이 쉽지 않은 것이 보였다. 다행인 점은 홀로 서는 무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던져진 것을 다른 동료가 회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좋아하는 무용수, 한상률 선생님의 움직임은 준비된 우연과 우연을 발생시키는 몸의 던져짐Thrown과 회수Recover가 가장 탄력 있는 결을 보여주었다. 함부로 던져지는 것이 없고 낭비되는 움직임 하나 없이 계속 순환되는 움직임은 우연의 띠를 만들어 연속시켰다. 자주 얽혔던 장민주 무용수는 동일한 점으로 던진 몸에 내재된 우연이 다른 무용수와 마주할 때의 찰나를 놓치지 않는 포착의 모먼트를 자주 만들어 주었다. 한선화 무용수는 우연이 던져지는 곳으로 직접 향해 뻗어가는 능동적인 회수를 통해 즉흥에 충실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삼인의 움직임이 즉흥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찰기가 느껴졌던 것은 역시 준비된 우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준비한 우연은 춤을 짜고 구성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던져지고 회수되는 연속의 작업이었음이 틀림없다.



즉흥의 정직함, 즉흥의 성실함 |


관객은 다 안다. 무서운 지점이다. 오히려 맹목적인 의도와 의미, 단일한 감상지점을 유도하는 공연보다 즉흥은 더욱 무섭다. 한번 허들을 넘기만 하면 관객은 더욱 솔직하게 느끼고 많은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경험이 적은 관객이나 무용을 잘 모르는 관객이라도 다 느끼고 볼 줄 알게 되는 공연이라는 것이다.

즉흥은 정직한 공연이다. 공들이고 준비한 만큼 드러나고 무용수 개인의 성격과 성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얼마큼 유대가 좋은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잘 보인다. 관객은 암묵적인 즉흥의 투명한 성질을 바탕으로 무용수들에게 많은 박수와 존경을 보냈다. 그것은 공연이 아니라 무용수 자체에 대한 경의이기도 했다. 즉흥은 꾸밈없이 온전히 자신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무용수의 정직함과 정직한 움직임에 대한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움직임 속에서 느껴지는 무용수의 사람다움에 끌리고 내적 친밀감이 생긴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다.

즉흥은 성실한 공연이다. 타고난 재능과 연습의 산물로 올려지는 공연들보다 개인의 성실성이 드러나는 공연이다. 춤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가,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가, 어떻게 고민했으며 무엇에 골똘했는지, 얼마나 성실하게 움직였는지를 드러낸다.

즉흥의 정직함, 즉흥의 성실함은 잘 창작된 작품만큼 아름답다. 결코 우연과 순간적인 감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대에 불이 꺼지고 시간이 지나면 즉시 휘발되어버리고 마는 순간을 위해 온전히 '자기 되기'를 서슴지 않는 순수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즉흥공연과 더불어 즉흥을 직접 해보는 시간이 국민체조만큼 중요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직하고 성실한 즉흥의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직하고 성실한 즉흥의 순간을 담아낸 90분 남짓의 무대가 끝난 후, 나와 지인들은 아직도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동작에서 스며 나오던 뉘앙스가 아직도 여운을 갖고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우연이 본 것은 아니었으나 예기치 못한 복합적 의미로, 즉흥은 그렇게 움직여 여기까지 왔다.




ⓒ EHP 박은혜


2025. 05.08 Park Eun hye박은혜

- 즉흥적 움직임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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