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직장은
내가 다니기 전에 얘기지

빛좋은 개살구 #1

by metel

오랫만에, 잠시, 3년 전 얘기부터 해볼까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인정해야만 한다.

(나는 요즘 심각한 신앙의 문제가 있는데, 나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원래 00생명의 건강서비스앱을 운영하는 외주 팀이었다. 00생명에서는 외주로 UXUI를 주는 유일한 팀이기도 했다. 00생명의 현업은 서비스기획 전문가는 아니니 고객이 요건을 주면 나는 서비스기획과 UXUI를 같이 정의해서 개발에 넘기는게 내 일이었다.


이 00생명에서 하고 있는 마이데이터 프로젝트가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 우리 중 일부는 이 프로젝트 수습을 위해 지원을 나가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어벤저스 팀이라고 했다.

나와 개발자 둘. 리더 1명.


망해가는 프로젝트의 문제를 종합해보면 이렇다.

1. 요구사항이 명확하지 못했고 계속(우리가 지원을 나간 그 순간까지도) 바뀌고 있었다.

2. 기획자들은 고객이 요청하는대로 계속 바꾸고 기획서만 업데이트 하고 배포했어요~라고 공유폴더에 올려만 두고 있었다.

3. 퍼블과 개발자간 심각한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있었다.

4. 개발자는 변경되는 요구사항에 지쳐있었고 더이상 관심이 없었으며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5. api개발 리더, 화면 개발 리더, 어드민 개발 리더가 각각 존재했는데 그들은 서로 대화하지 않았고, 서로에게 문제를 돌리고 있었다

6. PM은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있었고, 화면 개발 리더의 말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7.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계약이 종료되고 있었고, 계약 연장을 원치 않고 있었다


나는 우선 요구사항을 정리했다. 1번, 2번, 3번, 4번의 문제를 내가 해결했다고 보면 되겠다.

5번의 문제는 본사(수행사) 인력 추가 투입으로 대체했다.

7번의 문제는 PM이 주말에 비싼포도상자와 함께 가가호호 방문하여 재계약을 요청했다고 한다.

6번의 문제는 API개발자의 빠른 철수와 우리 어벤저스팀의 개발자 대체로 해결했다.


우리가 들어가니 전체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기는 했다.

일부는 왜 쟤네가 들어와서 휘젓고 다니냐며 핑계처럼 일에서 손을 뗐고

일부는(우리가 봤을때 그래도 기존에 어떻게든 일을 하려고 노력하던 사람들) 필요한 부분에 대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보통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에이전시와 개발사간 커뮤니케이션 오류는 항상 생기는 문제였고

이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요구사항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었기에 기획자(에이전시)는 고객이 변경요청 할때마다 친절하게 다 받아적기를 하고 개발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배포를 수시로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획서대로 개발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테스트와 품질검증은 없었다.


나는 이 부분을 가장 큰 문제로 봤고, 첫번째로는 현재 배포되어 있는 기획서 기준으로 개발자들이 따라잡기를 할 수 있도록 피엘 및 각 개발 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두번째로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더 이상의 요구사항이 나와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상황은 요구사항이 나와야만 정리될 수 있는 상황으로 파악이 되었다. 고객 중 일부는 자기들이 뭘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중구난방으로 요구사항만 쏟아내고 개발된 화면을 보며 고민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 앉혀놓고 고객관점에서 일관된 방향성과 스토리를 논의하면서 쳐낼거 쳐내고 정리를 하면서 마지막 요구사항을 정리했다.


이 과정에는 c레벨의 간섭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C레벨도 만들어지는 결과물을 보며 완성도와 품질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객사 현업은 C레벨의 요구사항을 받으면 나에게 뛰어왔고, 나는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어떻게 변경하고 적용해야 할지를 가이드했다.


두번째는 온보딩 디자인의 품질문제로 고객 컨펌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와 차트솔루션에 대한 퍼블(HTML)을 누가할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었다. 결국 어벤저스 팀에 디자이너와 퍼블리셔를 포함하여 우리 운영팀에 있던 인력을 다시 불렀다.

온보딩은 정말 식상한 디자인 & 틀에 잡힌 디자인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기존에 캐릭터 디자인을 에이전시가 예쁘게 해둔게 있어서 해당 캐릭터를 이모티콘처럼 사용한 온보딩으로 다시 컨셉을 잡아서 진행했고 한번에 고객 컨펌이 났다.


고객은 이렇게 말했다 "앱 온보딩 중에 우리 온보딩이 제일 좋을거야" 에이전시 리더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우리가 뭘 한건지 모르겠다"


그렇다. 틀을 벗어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쉽고, 또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차트솔루션 문제는 심각했다. 퍼블리셔는 디자인만 주면 개발이 알아서 한다고 했다고 하고, 개발은 HTML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했다. 급기야 퍼블리셔는 짐싸서 나가겠다고 짐까지 싸고 있었다. 읍소하고 말리는 역할도 내 역할이었다. 일단 너네는 차트 솔루션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하지 말아라. 우리가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운영팀의 에이스인 퍼블리셔를 불렀다. 해당 차트솔루션은 우리가 운영하는 앱에서도 사용하는 솔루션이었고, 우리는 퍼블리셔가 솔루션 내 HTML소스를 넣어서 넘겨주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고객은 솔루션에서 지원하지 않는 차트디자인을 꽤 요청했고 우리 퍼블리셔는 개발자옆에 가서 같이 소스를 보며 고객이 원하는 차트를 결국은 예쁘게 만들어냈다.


협업이 중요하다. 협업의 과정에서는 적극성이 아주 주용한 것 같다.

누구의 일인가 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에 대해 고민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누구도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내가 퍼블리셔에게 개발자 자리 같이 가서 00기능 구현에 대해 같이 좀 봐줘~라고 시켜야만 퍼블리셔는 이동하고, 개발자에게는 00기능 구현해야 하니 고민해봐달라. 퍼블리셔에게 내가 말해두었으니 필요하면 자리로 불러서 같이 봐라~라고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둬야만 일이 이뤄지는 구조였다. 대부분은 내가 개발자 자리에서 품질 확인하는 과정에서 퍼블리셔 바로 불러서 삼자 대면으로 얘기를 하면서 기능이 구현되었다.


구구절절하게 긴 얘기를 했는데, 요점은 저 망해가는 프로젝트는 결국 오픈을 했고, 그 오픈과정에서의 내 역할은 지대했다는 것이다. 자타가(모두가) 인정하는 이야기이다. 그때즈음에 내 생일이었는데 생일선물을 평생 역대급으로 받았다는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큰 이벤트가 생기는데, 그게 나의 적극적 퇴사준비의 계기가 된다.


위 프로젝트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존재하는데

원래 운영하던 앱의 00생명 관리조직이 망해가는 프로젝트의 관리조직이었고 담당도 동일했다

(그게 우리가 지원을 가게 된 이유다)


현업은 나에게 엄청난 도움을 받아서 고마워했고, it담당은 개발진척 관리 관점에서 고마워했다. 문제는 IT조직의 PM이었다.

IT는 언제나 현업의 요구사항에 대해 불만이 많고 현업과의 관계가 물고 물어뜯는 관계인데, 그 부분에 대해 회의가 크게 열렸고 그 자리에는 IT조직, 현업, 프로젝트PM/PL등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뒤 늦게 불려갔는데 거기서 IT PM이 현업 요구사항을 자꾸 변경하는것이 문제라는 것을 얘기했고 모두가 나를 부른것이다. IT PM은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문제를 지적했고, 나는 해명을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어느 누구도 나를 변호하지 않은 것이다. IT PM은 정확하게 문제를 지적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나에게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는 것이다. 이해가 될지 모르겠는제, 자기들끼리는 못 싸우겠으니 만만한 하청업체 기획자 불러다 놓고 고함 지른 상황이다.


IT PM은 그 사건으로 고객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돌려서 했는데

그 자리에 있는 고객사 현업은 모두 아무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자리에 있는 PM/PL은 나와 같은 회사 부장님들이시다. 그들 역시 아무소리도 하지 못했다.

억울하고 분해서 스타벅스에서 2시간을 울었던것 같다.

"죽어가는 프로젝트 살려놨더니, 이제와 책임운운할때는 동네북처럼 또 이용하는 상황"


실제로 그들은 나의 퇴사 이후로

"나와 같은 기획자"를 찾는 오류를 범하느라 꽤 많은 시간과 인력을 소비했다.

개발자들은 오는 기획자에게 내가 만든 기획서를 들이밀며, 이렇게 작성해서 오라고 했고

싸우기도 하고 울며 뛰쳐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이렇게 했다고 한다.

"000같은 기획자는 없어!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찾지마!"


미안하다. 나의 부재로 인해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힘들어 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지금 컨설팅회사에 와 있다. 대기업 자회사인 IT회사에서 컨설팅 회사로 이직했다.

그 당시만 해도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냥 이전회사에 그대로 있었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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