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작가일까?

-방송작가 y의 좌충우돌 생존기

나는 작가다. 방송작가다. 올해는 1월 말까지 방송을 하고, 레귤러 물은 자동스럽게 멈춰졌다.

2월에는 지방의 한 보궐선거 예비후보 캠프에서 일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으나, 바로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기다렸다. 3월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다.

조카 주안이가 네 살 때 "고모, 생일은 멋진 출발이에요." 하면서 생일을 자축하길래, 하두 신기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이후 생일이면, '새 출발'을 다짐하고는 한다. 올해도 그러했지만, 당장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방송일 하면서 간간히 했던 잡지 일을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월 두 꼭지 이상 소화해보기로 했다. 첫 편은 모 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를 섭외했다. 수소차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이면서 올해부터 학교 보직을 맡았다고 했다. 친구를 첫 인터뷰 대상자로 삼은 건 만만 해서였다. 아직도 방송일 외의 모든 일이 서툴다.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하지만, 글로써 밥벌이를 하는 건, 20여 년 방송글을 써온 나에게 아직도 힘겹다. 그렇게 잡지 일을 시작하고, 5월에는 군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방송작가협회 구인난에 육군본부에서 군무원 시험에 대해 공고가 떴다. '혹시나'하고 서류를 준비했다. 서류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다. 20년 이상 경력의 작가이지만, '리더십'과 '국군 홍보' 관련 일에 대한 경력이 있어야 했다. 최근 5년 이내, 3년 이상의... 예전에 국방부 정훈교재를 만들었던 경험이 경력으로 인정되어 서류 심사에 통과되었다. 잠시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사실 작가가 더 좋다. 하지만, 나이는 먹어가고, 생활의 안정이 필요했다. 평생을 프리랜서로, 정년이 없는 일을 한다고 자부했지만, 그동안의 생활이 만만치는 않았다. 더군다나 50고개를 넘고부터는 자신감이 부쩍 떨어졌다. 이제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소신대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온 거 같은데 실제 현장에서는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5월 초순에 시험을 보러 갔다. 대전에 있는 육군 교육사령부였다. 평생 처음 가본 곳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아니, 서울 국방부와 건물 느낌은 비슷했다. 실기 테스트 구성안은 메일로 보내 놓은 상태였고, 오늘 면접이 채용시험의 합격 여부를 판가름한다. 두렵기도 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험심으로 불타올랐다. 면접대기실에 있는데 딱 봐도 내 나이가 제일 많았다. 언젠가부터 '나이' 먹는 게 죄책감 아닌 죄책감으로 다가오고, 주눅이 들었다. 나보다 젊고, 각이 잡힌 다른 응시자들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나는 '나만의 부드러움과 따뜻함, 지혜, 명랑함이 있잖아?' 하며 최면을 걸었다. 그것도 잠시, 면접을 시작하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잠깐 눈물이 솟아났다. 아마 면접관들도 나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눈치챘을 것이다. 무슨 말끝에 감정이 북받쳤던 것. 다행히 부드럽게 지나갔다. 여러 질문이 있었지만 가장 걸렸던 질문이 "자유분방하게 살아오신 것 같은데 조직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안 맞는 동료가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하실 건가요?", "군인들 정신훈련을 시킬 때 귀하가 강조하실 부분은 무엇입니까?"였다.


조직에는 잘 적응해보겠다고 했다, 안 맞는 상사와 힘들 경우에는 대화로 풀고, 대의를 따르고, 그래도 안되면 "찢어져야죠, 뭐." 해버렸다. 순간, 나도 찔끔했다. "아니, 조직 안의 선배들이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요? 요청해서 도움을 구해야죠." 해놓고, 수습이 늦어버렸다는 걸 눈치챘다. "귀하만의 노하우는 무엇입니까?" 내가 채용시험에 도전했던 보직은 5급 군무원으로 육군 정신교육용 비디오를 만들고, 콘텐츠 제작 원고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저는 군인들의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쓰기 공부를 제 나름대로 시키는데 노력하겠습니다.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글쓰기와 읽기, 문학은 인성교육에 도움이 됩니다." 사실, 군인들-초급장교-의 글쓰기와 인성교육, 리더십 교육이 내 적성에도 맞으리라고 생각하고 지원했던 거였다.


5월의 마지막 날, 육군본부 시험에 불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사렛 대학교에 '문학과 삶' 특강을 갔던 날이었다. 옆에 계시던 유교수님께 불합격 소식을 알렸다. "힘내요, 김 작가. 더 좋은 일에 쓰일 거예요." "교수님 고맙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슬퍼할게요."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작가가 더 좋다. 하지만, 나이는 먹어가고, 생계형 작가로, 먹고살기 힘들어서 군무원 시험을 치른 거였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그래, 그냥 계속 작가야, 나는...'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