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본부 교양제작부 작가에 지원하다
고2 때부터 나는 진로가 확실한 학생이었다. 신문. 방송. 출판. 언론계로 진출하리라 일찍이 마음먹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나의 무기로 삼고 있었고, 대학생이 된다면, 글쓰기는 기본이고, 전공은 사회학과나 심리학과, 신문방송학과로 가고 싶었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거의 수재급이었다. 하지만, 연합고사를 치러서 진학한 소도시 명문학교에서는 성적이 중간밖에 안되었다. 게다가 다시 부산으로 전학을 하게 됐는데 나 대신 추첨하러 가신 아버지께서 이번에도 운 좋게 부산에서 손꼽히는 명문여고를 뽑아주셨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이번에는 거의 반에서 중하위권이 되고 말았다. 엄마는 집안이 기우니까 애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서 성적이 나빠지는 거라고 나를 감싸주셨고, 4남매의 맏이인 나는 집안이 어려워졌는데도 재수까지 시켜주셨다. 나는 아나운서나 기자가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의 맛'을 알게 된 나는 전업작가는 후일로 미루고, 우선 대학을 졸업하면 밥벌이를 해야 하는데 그럴싸해 보이는 직업부터 갖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신문방송학과가 인기였다. '언론고시'라는 말이 생겨나기 이전이었지만, 법관, 은행원, 공무원에서 대기업 회사원, 프로듀서 등으로 인기 직업이 변해가던 무렵이었다.
하지만, 가세가 점점 더 기울고, 덩달아 학교 공부보다는 책을 보거나, 혼자 전시회를 가거나 음악회 등 문화생활하는 것을 즐기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성적이 안 받쳐주니 갈 데가 없는 것이다. 부모님 두 분은 최소한 IN 부산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마 인근 경남권이나, 전국의 제2캠퍼스, 국립대 문예 특기생으로 도전했다면 턱걸이라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대신 부모님은 1년 간 재수를 시켜주셨고, 이듬해 성적이 조금 올랐지만 전체 평균이 오르는 바람에 나는 제자리였다. 그래도 현역 때는 후기까지 4년제 대학, 최소한 내가 원하는 학과에 지원했지만, 재수 후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철학과, 경제학과, 외교학과에 까지 성적에 맞춰 지원했다. 어문계열이 경쟁률이 높아 상경대까지 진출한 것이다. 재수 후에는 후기대학은 알아보지도 않고, 일찌감치 전문대인 서울예대로 진학하기로 했다. 그 전에도 J대학 문예창작과에 지원해보고는 싶었는데 당시 안성에 있는 J 대학교에 가기가 두렵기도, 싫기도 했다. 어렸을 때였지만 서울에서 산 경험은 있지만, 안성이라는 곳이 낯설고, 서울이 아닌 더 촌으로 가야 하는 게 별로였다. 그렇게 해서 진학한 서울예대는 일로 서울에 계시던 아버지가 합격자 대자보를 보러 가주셨는데 "어떻게 여기는 기분 좋게 붙었네."라고 말씀해주셨다.
돌이켜보면 학교 생활은 재밌었고, 좋은 스승님, 좋은 친구들이 있어 후회는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문대라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어머니께서도 전문대 가는 게 부끄럽다며 가능하면 내 힘으로 편입을 해서 4년제를 나오도록 하라고까지 말씀하셨다. 나는 다른 거 보다도 전문대 나와서 아나운서나 기자가 될 수 없음에 절망했다. 서울예대는 재밌는 학교일 것 같기는 한데 내가 꿈꾸는 '성공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서울예대에서는 제일 쎄 보이는 연극과에 가고 싶기도 했다. 연극과에 간다면 희곡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서울예대는 실기에 비중을 많이 두니까 혹여 연기를 시키실까 봐 정식으로 연기 공부를 못해본 나는 그 점도 두려웠다. 그래서 결국은 '언젠가는 작가도 되고 싶다.'에서 '당장은 작가밖에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작가'란 '배고픈 직업'이라고들 했기에 이왕이면 덜 굶을 것 같은 '방송작가'를 하자 싶었다.
그렇게 문창과에 진학했고, 나는 입학 후 학교 방송국 활동을 하면서에 순수문학이 아닌 방송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일찌감치 다짐했다. '소설'전공에, '시' 수업, '희곡' 수업, '아동문학'까지 당대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대가'인 훌륭한 교수님들에게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학시절의 일화나 추억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난 기대했던 거 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무난한 대학시절을 보내고, 졸업을 했다. 재학 중에도 방송국 박수부대며 아이디어맨으로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이 있지만, 내 힘으로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못하고 있는 와중에 당시 M본부 '출발, 차인태의 새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를 뽑는다는 자막이 나왔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그것도 잠시, '4년제 대학 졸업'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방송국에는 분명 예대 출신 선배 작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응시자격이 안된다니 좌절했다. 수소문을 하여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선배와 전화가 되었다. "선배님, 이번에 그 방송국 교양제작국에서 작가를 뽑는다는데 지원해도 될까요?" 선배가 어떻게 말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 번 해봐라."였다.
나는 선배님 말씀에 용기를 얻었고, 당장 인근 동국대 도서관에 가서 '미아 찾기 캠페인' 기획안과 구성안을 만들었다. 사실 방송 구성안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은 없다. 그냥 학교 방송국 활동하면서 했던 대로 내 나름대로 열심히 기획.구성안을 만들어 본 것이다. 그때 미아가 많이 발생하던 시절이었고, 인신매매범이 활개를 치고 다닐 때라 '미아찾기'와 '사람찾기'가 사회적 이슈이기도 했다. 딴은 열심히 프로그램 모니터링도 하고 이미 방송작가가 된 것처럼 신나게 기획안과 구성안을 만들어 제출했다. 결과는 낙방. 졸업 후, 사회생활 초년병으로서 첫 번째 좌절이었다. 일단 부산 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부산행 무궁화호 야간열차를 탔는데 뭔가 분위기가 암울했다. 지금도 고3 학력고사 성적발표 전날, 난생처음으로 밤새 잠 못 들었던 기억과 이때 야간열차를 타고 서러운 마음으로 부산 가던 기억이 난다. '왜 나같은 인재를 못알아보는 걸까?' 30년도 더 지난 기억이지만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은 그만큼 그때 나에게는 커다란 시련이었고, 일찍이 적성에 맞춰 진로계획을 세웠지만 막상 졸업을 하자, 앞날이 막막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