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송 입문기 2

"내일부터 출근해!"

by 꿈꾸는 리얼리스트

1990년,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부산에 가서 한 달여를 쉬었다. 막연히 방송작가를 하겠다는 의지만 있었지, 제대로 전략을 세우지 못했던 것. 계속 놀 수 없어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외삼촌에게 부탁을 했다. 어디 취업할만한 데가 없겠느냐고. 외삼촌은 무역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 주변 친구들 중에 오퍼상이라고 불리던 무억회사 오너들이 좀 있었다. 그중 한 회사에 나를 소개했고, 마침 여사원을 구하던 삼촌 친구 회사에 취업을 하기로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나보다 7년 위인 외삼촌은 당시 신혼부부였다. 외삼촌 댁에 신세를 지면서 회사까지 다니게 된 것. 강남 어디에 있는 회사에 면접을 보고, 예술의 전당 근처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주 주말 고향 친구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그 친구는 오빠네서 여동생과 살고 있었다. 그 친구의 오빠는 모 방송사의 PD였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간 그날 오빠가 마침 집에 있었다.


친구 오빠는

"영주야, 요즘 뭐해? 취직했냐?"라고 다짜고짜 물었다.

"아아뇨..." 내일부터 삼촌 친구 사무실에 나가게 되었지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럼 내일 방송국으로 오렴."

"네?"

좋기도 하고, 얼떨떨해서 되물었다.

"너 나한테 방송작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 내가 얼마 전에 입봉 했거든. 부장 CP한테 결재만 받으면 돼."

그렇다, 친구 오빠는 그동안 조연출이었고 이번에 쇼 파트 PD로 입봉 한다고 했다.

M 방송국에 아이디어맨으로, 박수부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고는 했는데 오며 가며 친구 오빠와 부딪힌 적이 있었다.

"영주 너, 졸업하면 방송작가 하러 와라."

그때 친구 오빠는 PD였고, 내 친구는 그 방송사 사장님 비서실에 있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떳떳하게 방송작가의 길을 걷고 싶었는데 당시 연줄 말고는 어쩌다 치러지는 작가 공채가 간혹 있었다. 거기 뽑힌 선배들한테 들은 얘기로는 그렇게 뽑혀도 1년 정도 전속 작가로 일하고, 후에는 결국 프로그램을 못 맡으면 쉬기도 하고, 개편 시기마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으로 옮겨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과 한 달 전에 같은 방송국 교양제작부 작가 공채에 떨어져 버렸기에 이제 쓴맛을 본 경험으로 '우선 어떤 도움이라도 받고 보자.'로 전략이 바뀐 것이다.


"내일 10시까지 M 방송국 3층으로 와라. 이력서 가지고... "

"네."

그렇게 내일이면 외삼촌 친구 사무실에 나가기로 했던 나는 오피스걸을 포기하고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1990년 봄이었다. 졸업하고, 한 달 반쯤 후에 취직이 된 것이다. 그땐 당장 메인작가도 아니었고, 회당 얼마 받는 작가가 아니고 한 프로그램에 속해서 3회 중 2회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바우처(출연료)를 탔다. 한 프로그램에 작가 3명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메인작가마다 서브작가 한 명씩이 붙었고, 3주에 한 번 일하면 바우처가 얼마 안 됐기에, 3주에 2회분을 받으며 자기 메인작가와 다른 팀에는 보조를 하는 식으로 일을 했다. 그때만 해도 방송이 죽으면 PD분이 밥을 사주고, 페이를 미리 받을 수 있도록 조처를 해 주고, 이런저런 온정이 있었다. 메인 작가 중 두 명은 남자 작가, 한 명은 여자 작가 선배가 담당이었는데 나는 여자 작가 선배의 서브가 되었다. 최근에는 조금 소원해졌지만, 내가 방송으로 만난 방송작가 선배님 세 명 중 한 분이시다. 이후 나는 다른 프로그램을 하면서 두 명의 메인 작가님을 또 만났고, 그렇게 서브 작가로서 3년 일하고, 집안 사정으로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부산으로 가서는 M본부, K본부에 다 연락을 해봤다. '나는 이러이러한 작간데 내가 일할 데가 없을까요?" 했더니 M본부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가요 운전석'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여자 아나운서가 라디오 부스에서 진행을 하고, 나는 리포터 겸 작가로 마이크를 들고 다니며 택시 기사님들의 신청곡을 받고, 방송사와 연결하는 뭐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TV가 더 적성에 맞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K본부에서도 나하고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과감히 M사 일을 그만두고, K본부로 갔다. K본부 어린이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바로 메인작가가 되었다. '신나는 날, 즐거운 날'. 그때 PD 분과는 다시 서울에서 만나 일을 했고, 아직도 메인작가로서 처음 호흡을 맞춘 PD분이라 은인처럼 생각된다. 그때는 나처럼 어린 작가가 지방에는 드물었다. 최소한 신춘문예 출신이라든지, 교사 출신 등 지방에서 순수문학을 하는, 글께나 쓴다는 사람이 방송작가를 하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스물셋부터 방송작가로 일했고, 스물여섯에는 부산에 와서 일하던 나는 다시 스물여덟에 서울로 간다. 그리고 내년이면 30년 차 작가가 되는 나. 올 1월까지 방송일을 하고, 지금은 좀 쉬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중간에 쉬는 텀이 좀 길어졌다고만 생각하고 있다. 방송일은 들어오면 할 것이고, 굳이 전보다 하기가 힘들다면 출판이나, 잡지 등으로 아예 선회하거나 글 쓰는 쪽으로 영역을 확대할 생각이다. 30년 동안 방송일로 먹고살고, 글을 쓸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방송일이 생각보다 화려하거나 마냥 신나는 일만은 아니지만, 정말 치열하고, 항상 최고의 패널과 스텝과 함께 일하고 있으며, 트렌드의 중심에 서있는 건 맞다. 방송은 문화의 첨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방송작가의 눈은 높다. 눈만 높으면 뭐하냐고? 눈썰미로부터 모든 일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눈과 마음의 소리를 따라 대중과 호흡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송작가. 나는 방송작가로 살면서 대체로 행복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자부심으로 충만한 30년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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