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나간 당신을 추억합니다
20여 년 방송작가를 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연예인도 있고 일반인도 있다. 유명인사도 있고, 무명을 발굴해서 함께 커가거나 키워주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교양 프로그램의 패널도 있고, 토론자도 있으며, 쇼 프로그램에는 가수, 토크쇼에는 연기자, 가수, 일반인 두루 출연한다. 교양 프로그램에는 전문가가, 시사프로그램에는 시사평론가나 대학교수가 자주 나오고... 강연 프로그램에도 교수나 전문가가 주요 패널.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수님이나 의사, 전문가도 많이 만나고 방송으로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한다.
방송작가 초년병 시절에는 연예인 보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갈수록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연예인도 사람이며,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지만 노출이 되고 부대낌이 많은 삶을 살고 있으니 안타까운 경우도 많이 봐왔다. 지금부터 언급할 이들도 그렇다. 우선 그들은 너무 빨리 돌아갔다.
첫 번째 인물은 가수 김광석. 김광석 선배님은 내가 방송작가 초년병일 때 대학 선배 S의 라디오 프로그램 고정 게스트였다. S선배가 나를 후배라며 광석이 형한테 소개했고, 우린 M본부 7층 라디오 부스 앞에서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광석이 형은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와 '우유'를 뽑아 둘을 섞어 '카페오레'라며 만들어주고, '사랑했지만'이 실려있는 동물원 2집 앨범을 직접 선물해주었다. 나는 선배님 노래를 듣고 한곡 한곡마다 리뷰를 써드렸다. 선배님은 너무 좋아하며 이번에는 자판기 커피가 아닌, 진짜 커피를 사주겠다고 구내 커피숍에 데려가 커피를 사주었다. 또 성균관대학교 앞 바르비종이라는 방송작가 선배님의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부를 때였는데 나는 그때 방송작가 동료들과 놀러 가서 임지훈 씨와 두 분의 노래를 듣고, 맥주도 마시고 그랬다. 광석이 형은 그때 딸아이가 하나 있었고, 나중에 그 딸이 발달장애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참 안됐다 싶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귀가가 늦을 경우에 아내가 걱정할 거라며 동전을 바꿔 가게 앞 공중전화로 가던 형을. 아기가 백일이 좀 지났다고 하며 딸바보 아빠의 표정을 짓던 일.. 참 다정다감 따뜻한 선배였는데... 그렇게 김광석 선배님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시고, 영화 '김광석' 개봉 시 아내분과 딸 서연 양의 스토리를 듣고 얼마나 놀라고 안됐는지... 영화는 너무 슬플까 봐 못 봤지만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서 "마셔봐, 카페오레야." 하던 선배의 웃는 얼굴과 음성이 떠오르곤 한다.
두 번째 인물은 가수 길은정 님. 이 분도 너무 쾌활하고, 똑똑하셨던 분. 얼굴도 예쁘고 노래도 참 잘하셨다. 나랑은 S본부 아침방송에서 '당뇨병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시리즈물을 했는데 일본어를 잘하시니 직접 일본에 가서 일본어로 리포팅을 해오셨다. 게다가 대장암으로 인공항문을 하고서도 방송을 끝까지 하셨다는... 그 분과의 일화는 아침방송이 끝나면 일찍부터 운영하는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고, 집에 가고는 했다. 하루는 길 선배님의 전 남편 이야기가 나왔다. 첫 남편은 M본부 카메라맨이었고, 두 번째 남편은 가수였는데 그 가수가 자신의 코디네이터와 바람이 나서 자신을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몸이 안 좋은 자신이 휴양 삼아 미국인가에 쉬러 갔는데 그 가수 남편이 환자인 자기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방송에 출연하고 시선을 끌고 싶어서 한국에서부터 프로덕션 제작팀을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마치 고발하듯 내게 쏟아놓는 선배님을 보고 안쓰럽기도 하면서 "그래도, 한 때 사랑하신 거는 맞죠?" 해버린 것. 길은정 님은 당돌한 나의 질문에 너무 부끄러워하면서 웃으셨다. "그래, 김 작가 네 말이 맞아. 한 때 좋아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하면서 씁쓸하게 웃음을 거두던 모습. 물론 지금보다 내가 훨씬 어렸을 때지만 나도 참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런 껄끄러웠던 이야기 말고는 길은정 언니와 나는 쿵작도 잘 맞고, 방송도 재미나게 했던 기억이다. 항상 열정적이고, 발랄한 모습이 참 좋았던 언니.
세 번째 인물은 탤런트 조민기 씨다. 아내분이 청담동에서 미용실을 했는데 PD와 함께 조민기 씨를 섭외하러 갔었다. PD분이 여자 선배님이었는데 알고 보니 조민기 씨 고등학교 때 본 적이 있다는 거다. 미대를 나온 PD분이 PD가 되기 전에 미술학원을 했는데 조민기 씨가 미술학원 제자를 따라왔더라는 거. 그때 조민기 씨는 자기 집이 이민 갈 거라는 얘기도 하고, 인물이 워낙 좋고, 훤칠해서 PD분이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날 조민기 씨가 자기를 알아볼까 어쩔까 싶었는데 조민기 씨는 PD를 보자마자, "선생님, 우리 TV는 사랑을 싣고' 찍고 있는 거 같지 않아요?"라고 했다.
훈훈한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재밌었고, 아내분도 오셔서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었다. 조민기 씨 아내분은 취미생활로 사진을 찍는 남편을 적극 뒤바라지 해주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완벽한 부부로 보였다. 결국은 불미스러운 일로 스스로 목숨까지 끊게 된 조민기 씨. 방송을 떠나 평범한 친구처럼, 선배처럼, 이웃처럼, 자연스럽게 대했고, 자신의 사진전에 놀러 오라고도 하고 그랬는데...
가수 김광석, 가수 길은정, 탤런트 조민기... 짧고 굵게 살았다고 하기엔 풍파가 많았던 케이스들이다. 사랑과 이별, 배신, 질병으로 고통받고 고단한 생을 살았다. 고생은 했지만, 자녀도 있었고, 재능도 있었고, 미래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아프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아직도 그 죽음이 미스터리로 남아 '왜?'라는 의문을 사고있다. 일찍 떠났지만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떠났다는 것, 슬픔도 아픔도 컸을 텐데 천진한 웃음만 기억날 정도로 해맑은 분들... 그들은 가고 없지만 함께 했던 추억은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