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드라마’를 보는 걸까?
드라마를 못 쓰고, 안 쓰고 있기에...
20여 년 구성작가로 일했고, 최근 8개월 프로덕션에서 기획 작가로 일하면서 나는 드라마를 동경해왔다.
“언젠가는 나도 멋진 드라마 한 편 쓸 거야. 쓰고 싶어.” 하면서... 그렇다면, 나는 드라마 한 편 제대로 써봤나?
서른 즈음에 불같이 창작욕이 들끓어 몇 개월을 작품만 쓰다가, 서너 편 쓰고 여기저기 다 떨어지니 의욕이 급 하강하여 다시 구성작가로 되돌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5년 후, 다시 드라마에 도전하고 싶은 꿈이 슬며시 올라와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한 학기 공부를 했다. 그때도 구성작가를 하면서 다니다 보니, 습작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담임선생은 M본부 자회사 프로덕션 다닐 때 가끔 점심을 사주시던 모 국장님- 당시에는 S본부 프로덕션 사장-이라 매일 나한테 작품 분석을 시키셨다. 쓰는 능력은 떨어져도 보는 눈은 있기에 선생님이 시키면 뻔질나게 남의 작품 분석은 칼같이 해댔다. 아마 나 때문에 맘 상한 동료들도 많았으리라.
그렇게 연수반을 다녔지만, 창작반에는 진학하지를 못했다. 작품이 써지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도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기획 작가로서 무미건조하게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가끔, 놀 땐 놀더라도, 굶을 땐 굶더라도 ‘드라마’를 쓰고 싶다. 말이 되든 안 되든…. 하지만 아직도 드라마를 쓰기에는 나는 준비가 안 되었다. 그리고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올인하기에는 아직 내가 절실하지가 않은지, 막연한 동경만 있을 뿐이다.
어쨌든, 나는 드라마를 쓰지는 않지만, 드라마를 본다. 왠지 유명한 드라마, 남들이 다 보는 드라마는 잘 안 본다. 철저히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드라마를 찾아봤고 아침에 출근하다 보니, 출근 준비하면서 아침 드라마를 별 고민 없이 틀어놓고 본다.
그렇다면, 드라마 작가들은, 연출가들은 왜 드라마를 만들까? 직업이 그거니까 그냥 만드는 것일까? 아니, ‘시청자’를 의식하지 않고 만들지는 않겠지. 나는 드라마 작가가 아니니까, 평소에 존경하는 선배 노희경 작가의 글을 찾아봤다.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는 인간이다.’라는 말에 하늘이 열리는 기분이었단다. 시도 소설도 잘 안될 때, 드라마 수업에 갔던 첫날 이 말에 매료된 후 한 번도 자신의 일에 “지겹다, 힘들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단다. 이렇게 행복한 작업을 그런 말로 깎아 먹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노작가는 드라마를 쓰면서 가족과도 화해했고, 자학하는 것도 멈췄다고 한다. 지금도 늘 고민하는 문제를 드라마에 다룬다고 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그 고통스러운 직업을 행복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얻은 해답들은 만족스러웠을까? “그건 그런 거였나? 아닐 수도 있고.” 이런 느낌의 답이란다. 삶의 문제들이 쉽게 마침표를 찍거나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거니까. 노희경 작가는 지금, 삶에 대한, 사람에 대한, 고민과 애정들을 드라마로 풀어내고, 시청자와 공감하기 위해 드라마를 쓴다고 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 생색도 안 내고, 남한테 스트레스도 될 수 있으면 안 주고, 철저히 자기를 관리하며 하루 10시간 정도씩 글만 열심히 쓴다고 한다. 아무튼 노희경 선배가 존경스럽다.
노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랑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랑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힘들지만, 죽을 때까지 노력할 거라고.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향연」을 언급하면서 젊었을 때는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지금은 사랑을 어떻게 자신의 삶에서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한다. “그럼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자기 관리를 잘해야 되고, 내 글을 분석해야 하고, 인간을 관찰해야 할 것 같아. 그럼 그렇게 해보자.” 그러다 그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생각하고,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점을 짚고, 더 괜찮은 방법을 찾아간다고 한다.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고, 사람이니까 어리석을 수 있고, 사람이니까 자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동시에 사람이니까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를 돌아보고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채널 예스’ 인터뷰 기사 ‘드라마가 곧 삶이고, 삶이 곧 드라마이다’ 중에서 발췌-
요즘 나는 봄을 타는 중이다. 40대 중반을 넘어 들면서 그동안 못해본 것도 많다.- 결혼, 출산, 성공한 작가, 드라마 작가.- 험난한 일을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기에는 인생이 억울하고 아쉽다. 그리고 사랑이 뭔지, 인생이 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일과 사랑, 성공, 인간관계 같은 문제들도 함께 말이다. 나는 아직 드라마를 못 쓰고 있어서, 일단은 드라마를 보고만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