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은 어디쯤 와 있을까?

영화 'her'를 보고

막 ‘her'가 개봉됐을 무렵, 영화관이 있는 건물에서 책을 고르다가 영화 ‘her'의 포스터를 보았다.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의 촉촉한 눈빛에서 야릇한 끌림을 느꼈다. 영화 마지막 상영 한편쯤은 볼 수도 있는 시간이었는데 망설이다가 미루었다.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당장 영화를 볼 수 있다면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어슬렁거리며 영화관에 갔다. 개봉 된 지 몇 주가 흘렀으므로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녀’에게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영화 시작에서부터 내 가슴에는 뭔가가 일렁대고 있었다. ‘울 준비가 돼 있었다.’고나 할까? 눈물이 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울컥울컥 할 뿐, 줄줄 흘리지는 않는 나. 하지만 예전에 영화 ‘그녀에게’를 보며 함께 간 친구가 민망해할 정도로 펑펑 운 경험이 있다. 그 때 친구는 나더러, 남들과 눈물 코드가 좀 다르다고 말했다. 그 영화를 보고, 그리 펑펑 우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그녀’ 라는 제목에서 뭔가 ‘그녀에게’와 눈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 ‘her'를 보고 펑펑 울지는 않았지만, 조금 조금씩 울다가 가슴에서 그렁대던 눈물이 쏟아져 나와 중간에는 줄줄 울고, 나중에는 흐느낌이 커질까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영화는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다.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름다운 손 편지 닷컴’의 대필 작가. 그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편지’로 사랑을 고백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 지금보다 약간 앞서간 미래라는 것만 빼면 지금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테오도르의 퇴근길, 아파트, 사무실, 로스엔젤레스, 미래의 도시는 아름답고 군더더기 없이 현대적이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고독하다. 그는 우울한 음악을 듣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햄버거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다.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게임 속 캐릭터와 대화하는 걸 더 편안하게 생각한다. 인간이 진화할수록 점점 더 외로워질 것이란 우리의 선입견 그대로, 그는 아주 많이 외로워 보인다. 유년 시절부터 함께 자라 결혼까지 한 아내와는 이혼 직전이다. 그의 아내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며 으름장을 놓지만 별거 1년이 다 되도록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을 그렇게나 많이 써댔지만, 정작 자기 사랑은 완성하지 못한 위기의 남자인 것이다.

외로운 이 남자는 어느 날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쇼핑한다. 그는 그녀와 친구가 된다. 사만다는 몸이 없는 인공지능 운영체제로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인간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가지고, 스스로 확장하고 진화하는 이 시스템은 그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그의 편지를 대신 읽고, 그에게 필요한 정보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한 마디로 친구이며, 애인, 비서, 엄마 같은 존재인 셈이다. 사만다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테오도르를 보며 나도 덩달아 기뻤다. 나는 사만다가 되기도 하고, 테오도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위태로워보였다. 사만다는 ‘육체 없음’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 여자에게 접근해 그녀의 몸을 빌려 테오도르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자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이며 탐험이다. 그녀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앨런 와츠’ 같은 철학자와 대화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있으니 말이다.

둘의 사랑도 이별을 맞는다. 사만다는 테오도르, 즉 한명만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다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점점 더 용량이 늘어나서,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오직 ‘나만의 것’이길 원하고 바라는 인간의 사랑과는 달리, 그녀는 8,316명과 동시 얘기 중이며, 그중 641명과 사랑에 빠졌다. 중간에 ‘운영체제’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사만다’가 사라졌던 순간, 인파들 사이를 뚫고 사만다를 찾아 헤매던 테오도르를 보며, 나도 함께 휘청 휘청댔다.

테오도르는 그렇게 서로의 성장을 바라보며 많은 걸 경험하고, 함께 해온 아내와의 이혼을 받아들이게 되고, 나중에는 사만다도 홀연히 떠나보낸다. 사만다는 “But now know how”라며 비물질의 세계로 돌아가고, 테오도르 대신 그간의 대필해준 편지글을 출판사에 보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된다.
결말 부분에 가상체제를 사랑했던 친구 테오도르를 끝까지 이해해주고, 힘든 순간을 지켜주는 ‘에이미’라는 친구가 있어, 앞으로 두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아직은 사만다와의 사랑이 더 절절하게 내 가슴에 남아있다.

맘에 드는 영화를 보게 되면 늘 그렇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전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아니, 이미 밖으로 나왔지만, 문 앞 쪽에 서서 끝까지 화면을 지켜보았다.
OST도 좋았고, 전체적인 화면구성이나 색감도 좋았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잔잔하면서도 깊은 공감으로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넘치지 않게 꽉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결국 나도 테오도르와 똑같은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전 관계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후, 다음 사랑을 만나 환희에 가득 찼다가, 다시 상처 입고 서로가 성장하면서 결국엔 한 쪽을 떠나보내는 방식의.

더불어 인간의 기술적 진보가 우리 삶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껏 정의해왔던 사랑은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될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은 의문을 던져주면서도 스스로 정리가 되는 영화, 깊이 와 닿지만, 계속 고민하게 될 문제. 나의 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계속 변하고, 진화할 것이지만, 사랑의 본질은 같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영화가 내겐 ‘her'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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