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십여 년 전, 새 사무실로 옮긴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나에게로 장미꽃 서른 세 송이가 배달되었다.
사무실 사람들은 “아직 얼굴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새 작가에게 웬 꽃?” 하면서도 연신 부러운 듯 내게 배달된 장미꽃을 보고 박수까지 치며 좋아라 했다.
그때 진지하게 사귀는 애인 내지는 남자 친구 한 명 없었던 지라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초등학교 동창 남자 친구나, 고향 친구, 남자 동료들을 떠올려봤다.
‘누굴까?’
곁들인 카드라도 한 장 있을까 했는데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다. 핸드폰으로 꽃배달 간다고 얼떨결에 확인 전화는 받았지만 도무지 집히는 인물이 없다.
당시, 난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내가 맡은 프로그램에 출연하신 해 주신 인자하신 노교수님까지 떠올려졌다.
교수님은 방송 출연이 처음이라 "방송작가란 이런 일을 하는군요~" 하시며 내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이 내게 꽃까지 보내실 리는 없고 의문만 더해졌다. 배달한 분에게 물어봤지만, 자기는 아르바이트생이라며 꽃집에 물어보라고 했다.
꽃집에 전화했더니 논현동에 있는 꽃집이라고만 얘기해 주고, 원래는 꽃 배달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누가 부탁해서 배달을 하게 됐다며 잘 알지는 못하는 사람이라고 애매하게 말해주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꼬치꼬치 묻는 나이지만 그땐 당장 눈앞의 꽃이 너무 예쁘고 들떠서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장미 바구니를 들여다보며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연분홍 장미였는데 은은한 향기에 이슬까지 맺힌 듯이 싱그럽고 예쁜 꽃바구니였다.
당시 내 나이 그대로 장미꽃 서른 세 송이가 배달돼 왔으니, 최소한 내 나이와 이름, 핸드폰 번호까지 아는 이의 선물인데...
왠지 더 이상 캐내고 싶은 생각보다는 누가 어떻게 알려 줄 것만 같아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 후까지 더 이상 아무런 연락도 없고, 주말에 목욕탕에 가서 열탕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우연히 떠오른 인물!
지난 사무실에 있었던 말이 통했던 선배가 아닐까 싶어서 목욕탕에서 나오는 대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왈, "꽃 사 달라는 말보다 더 무섭다."라며 타박을 주는 바람에 더 이상 나의 호기심은 꼬랑지를 내렸다.
비가 내린다. 문득 그때 내게 배달되었던 장미꽃 바구니가 떠오른다. 누구였을까? 누군가 키다리 아저씨처럼 몰래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이가 보낸 선물이었을까?
짓궂은 친구들은 아마도 꽃 배달이 잘못된 모양이라고 놀려댔지만, 내 나이와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아는 이가 보냈는데도?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났다. 평소에 상냥한 마음을 갖고 상대를 대하면 돌아선 애인의 어머니에게서 오닉스 브로치를 되돌려 받을지도 모른다는...
그때 난 그 구절이 퍼뜩 떠오르며 눈먼 장미가 내게 왔을지라도 어쨌든 행복하고 감사해서 모르는 누군가에게도 친절하고 상냥한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 꽃을 받는 일은 즐겁다. 나는 때때로 꽃을 선물하고 꽃을 선물 받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멋진 프러포즈로 꽃을 받은 적은 없다.
내가 누군가의 꽃이 되어 그 사랑의 징표로 꽃을 선물 받는 그날까지 아니, 그 후로도 계속 상냥하고 착한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