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줬다면 미안해"
손을 살짝 베었다. ‘요리’라 할 것도 못 되는데 양파 썰다가 선명한 빨간 피가 흘렀다. 급한 마음에 지혈한답시고 피를 빨아먹었다. 짭조름했다. 밴드를 찾았다. 예전에 S랑 고깃집에 갔다가 받아뒀던, 소주회사에서 영업용으로 준 반창고다. 요즘은 소식이 뜸한 S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만나면 더없이 다정한데 평소에는 거의 연락을 잘 안 하고 지낸다. 게다가 한동안 무슨 일로 오해를 하고, 사이가 멀어진 적이 있는데 어느 해 연말 모임에 그 S가 “영주 꼭 나오라고 해라.” 해서 나는 그 친구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반가워 냉큼 달려 나갔다. 나는 사소한 오해로 소식을 끊어버린 그 친구가 보고 싶기도 하고,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만나서 우리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정하게 악수를 했다. 그리고 금세 풀려서 하하거렸다. 평소에 내가 다정다감한 쪽이라면 -‘친절’이라고 해두자.- 그 친구는 이성친구지만 깍쟁이다. 어느 날은 둘이서 차를 마시는데 내가 그동안 쌓였던 서운한 마음을 비추며 “너 그때 왜 잠수 탔어?” 했더니 다짜고짜 “너는 오지랖이 너무 넓어.”라는 것이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만큼 창피했다. S는 학창 시절 함께 학교 방송반에서 활동하던 친군데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났지만 학창 시절의 느낌 그대로 어울려 다니며 재밌게 지낼 즈음이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사소한 오해가 쌓여, 어느새 연락도 끊어버리고, 나와는 거리를 두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이후 우리는 좋은 친구로 남았으나, 나는 그때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나 지적을 받는 일은 불편한 일이지만, 그런 때야말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뭔가 ‘깨달음’이 오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그 얘기를 듣고, 한동안 나는 나를 되돌아보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나는 대부분 먼저 다가가고, 내가 다가간 만큼 상대가 다가오지 않거나 처음 생각한 대로의 관계가 이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상처 받는 쪽이다. 좋게 말하면 친근, 친절하고 정겹지만, 누군가에게는 귀찮거나 성가시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 뒤로는 항상 마음속에 내 쪽에서 아무리 호감이 있거나 친하게 느껴지는 사이라도 “훅 다가가지 말자, 상대방과 보조를 맞추고, 적당한 거리를 두자.”라는 것이 스스로의 다짐이 되었다.
비슷한 경험으로 한동안 친하게 지낸 동네 이웃이자, 이성 친구인 선배 R이 있었다. R은 화가였다. 우연히 내가 동문회 커뮤니티에 올린 그 선배의 그림을 보고 내 친구가 그 화가 선배의 그림을 사게 되었다. 선배와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함께 그 작품을 직접 전달하려고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자신의 그림을 팔게 되어 들뜬 기분도 있었을 테고, 나에 대한 고마움으로 제안한 여행이었다. 부산에서 즐겁게 보내고 돌아와서 나는 다니던 사무실을 그만두게 되었다. 회사 사정이 어렵기도 했고, 일하는 과정에서 대표와 마인드가 달라 사이가 틀어진 때문이었다. 그때가 내 인생에 있어서 거의 유일한 직장생활이었는데, 다행히 몇 개월 이상을 다니고 그만두었기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가 있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공단에 들락거리며 절차를 밟는데 그 선배가 나한테 '실업급여'에 대해 좀 아는 체를 하길래 몇 번 전화로 문의했다. 친구 이상으로 잘 지내던 때라 이 정도의 전화 문의에 당연히 친절하게 상담을 해 주겠다 싶었는데 돌연 짜증을 냈다. 왜 이렇게 자주 전화를 하느냐고, 네가 알아서 하라고… 그때 또 한 번 좌절을 느꼈다. 좋을 때는 더없이 좋게 지냈지만 역시 상대가 느끼기에 필요 이상의 관심이나 부탁 등은 부담이 될 수 있겠구나, 싶은… 전시를 앞두고, 예민해져 있거나 뭔가 본인에게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어서 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씁쓸했다. 실업급여에 대한 단순한 상담이라기보다는 내가 직장도 잃고, 당분간 백수로 지내야 하니 그에 따른 부담감이 있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 선배를 많이 따르고 의지했기에 그조차 부담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 선배와의 관계는 좀 더 이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별을 진하게 예감한 순간이었다.
손을 살짝 베었을 뿐인데 그렇게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생각났다.
이성친구로 지내다가 "상처 주었다면 미안해."라며 헤어진 사람도 있었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었다. 깨끗이 헤어지는 게 아쉬워 그러는지 그냥 SNS 친구로는 지내자며 합의를 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사랑도 우정도 뭣도 아닌 이상한 관계의 이성친구들이다. 날도 더운데 괜한 짜증이 난다.
이렇게 조그만 상처에도 감각이 꽤나 예민해지는데 내게 상처 준 사람, 내가 상처를 줬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생각난다. 스스로를 ‘철이 없어서’ 상대방보다는 ‘순수하기에’ 뭔가 손해 본 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어쩌면 사람은 모두 자기 본위고, 이기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친절이라는 형태로 상대의 생활에 끼어들기보다는, 불친절이라는 형태로 방해하지 않는 게 좋다.’ 쪽으로 나는 바뀌고 있다. 그렇다고 한순간에 나의 오지랖이 좁아지지는 않겠지만, 크게 실망하고, 상처 받지 않으려면, 애당초 기대하지 않는 게 좋고, 기대 이상의 친절이 온다면 그때 기뻐해도 늦지 않다. 한편으로는 도무지 곁을 주기 싫어하고, 피해 끼치고 싶지도 않고, 도움을 받기도 싫은 깍쟁이 근성은 또 싫으니 이를 어찌할꼬. 선량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관대’한 사람이 나는 좋은데…
철이 조금 드는 걸까? 요즘은 뭐든 연민으로 다가온다. 친절도, 불친절도, 사랑도 미움도 다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라는 에릭 시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도움을 주거나 희생을 하지는 못할망정, 조그마한 불편함이나 거추장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내게 티 냈던 너희들을 이제는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상처란 아물면 새 살이 돋는 것, 상처가 진주가 되고, 아프면서 성숙해지는 거니까. 슬며시 멀어져 간 그들도 어디에선가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처럼.
알게 모르게 상처 주고, 상처를 받고 사는 우리 모두의 안녕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