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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Jul 21. 2024

태어나기 전의 생일

태어나기 전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 사람은 생일을 챙겨야 할까? 그의 생년월일 y년 m월 d일, 현재는 a년, 그가 시간여행을 한 시점 y년 이전인 b년이라고 하자. 우리가 관습적으로 매년 m월 d일을 기념하는 탓에,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b년 m월 d일을 기념하려 한다. 하지만 그 시점에 그는 아직 태어나지 않아 이를 기념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지 의문이 든다.


논의에 앞서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전제한다.

1. 시간여행자는 시간여행 이전의 시간선상의 생일만을 챙긴다. 복수의 생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2. 누군가의 "생일"은 누군가가 해당 시간선에서 최초로 등장한 시점을 의미한다.


먼저 시간여행자의 본래 시간선(A)과 시간여행을 하는 시간선(B)이 다르다는 입장에서 살펴보자. 시간여행자가 A의 a년에서 B의 b년으로 여행하였, b<y<a라고 하자. 숫자만 보면 언뜻 그가 과거로 여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A의 시간과 B의 시간은 별개이기 때문에 당초 A 사람인 그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흐르는 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래 그림에서 평행하는 두 직선을 각각 A와 B의 시간선이라고 칭했을 때, 그가 시간여행을 하는 행위는 a 시점의 A를 꺾어 B의 b 시점과 만나도록 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실선의 시간선을 경험하는 그는 시간이 순행적으로 흐른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A선의 a와 B선의 b가 b<a임에도 불구하고 속한 시간선이 달라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엄밀히 말해 b<a로 표시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고 b_B=a_A로 표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y년 m월 d일(정확히 말하자면 y년 m월 d일_A)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에 아무런 무리가 없다. 그는 한 살 더 먹었고, 그것을 기념할 뿐이다.


시간선이 복수로 존재하는 경우. 실선은 시간여행자가 실제로 경험한 시간선, 점선은 잠재적으로 존재하나 경험되지는 않은 시간선을 의미한다. 화살표는 그가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이다.


반대로 시간선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입장에서 살펴보자. 그가 a>y인 시점에서 b<y인 시점으로 시간여행을 하였고, 타임 패러독스를 방지하기 위해 y가 되기 이전에 a 이후로 복귀한다고 하자. 하나의 시간선상에는 오직 하나의 정체성만이 인정되므로 어느 시점에서건 그는 다른 모든 시점의 그와 동일한 인간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만약 태어나기 이전 시점으로 시간여행을 한다면, 그는 그 시점부터 시간선에 존재를 새긴 셈이다. 따라서 "생일"의 정의에 따라 그의 생일은 y가 아닌 b로 재정의된다. 시간여행 이전에 y년 m월 d일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m월 d일을 챙겼다면, 시간여행 이후에는 시간여행 도착 시점인 b년 p월 q일을 기념하기 위해 p월 q일을 기념해야 할 것이다. 이때 시간선상에서 논리적 일관성을 가정한다면 시간여행을 하기 이전, 즉 y와 a 사이의 시간 동안 m월 d일을 기념했던 일들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것은 다소 아쉬운 일이다.


시간선이 단일로만 존재하는 경우. 시간여행에서 복귀하는 상황은 생략하였다.


결국 시간선에 관한 어떤 견해를 따르더라도 매년 같은 월 같은 일을 기념하는 것은 생일로서 의미가 있다. 단지 시간여행에 따라 복수의 시간선을 이동한다면 그때의 생일은 본래의 생일이고, 단일 시간선에서 앞뒤로 움직일 뿐이라면 재정의된 생일을 챙기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시간을 넘나들고 나이가 바뀌는 듯 보여도 생일을 챙기는 것은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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