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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찬 Jan 20. 2022

빌런에 공감하게 되는 것

교사의 죄의식에 대한 고백




"호빵맨! 어린이의 친구 우리우리~ 호빵맨"

문득 집에서 옛날 노래가 들렸다.  가사를 웅얼거리다 보니 전체 원본 노래를 듣고 싶어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들었다. 

추억이 새록새록.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댓글을 본다. 추억에 대한 얘기 말고 다른 베스트 댓글이 더 눈에 띈다.

'세균맨... 고생했어, 네가 내 삶에 첫 애니 빌런이였어'

나를 생각하게 한 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댓글보다 이 댓글이었다. 호빵맨의 '세균맨',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 톰과 제리의 '톰' 등등 어렸을 때는 그들은 주인공으로 부터 늘 당하는 대상이었고 거기서 만화를 보는 기쁨을 느꼈다. 근데, 어째서인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이들이 더 안타깝고 고마운 기분이 든다. 둘리, 제리가 더 인성이 나쁘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왜 그럴까?

살아갈수록,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이면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이 나의 통제나 지각 안에 있는 것이 아님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아간다. 더군다나 그것을 더욱 인정해나가게 된다. 어쩌면 '선'으로 보이는 것들이 어떤 시각에서는 '악'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반대도 마찬가지. 그것은 삶의 경험 뿐만 아니라 지식과 이론에서도 접하게 되는 일들이다. 

우리는 선악, 장단, 내외, 유무, 애증, 좌우, 정반, 음양을 동시에 깨달아간다.

살아갈수록 무엇이 가치로운지를 알아가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양면, 다면에 혼재되어 있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해본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더 나아가 이런 분류는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조커의 일대기를 보면서 배트맨이 배트맨이 된 배경보다 조커가 조커가 된 배경에 더 의식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배트맨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된다. 비로소 배트맨과 조커라는 존재로, 호빵맨과 세균맨이라는 존재로 우리의 세계가 인식된다. 어쩌면 악을 통해 신의 존재를 더 인식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물꼬는 안타깝게도 세상 이전에 학교가 터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는 늘 '선'으로 보이는 것을 알려줘야한다. 제도적으로나 암묵적으로나 교사는 '선'을 외치는 자리에 놓이게 된다. 세상과 성인의 언저리에 있는 고등학생들이라도 '악'을 보여줄 수 없다. 우리는 선에서 악을 바라볼 뿐, 악에서 선을 바라보거나 멀리서 선악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그것을 감시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삶을 알면서도 삶을 가르치지 못하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람들이 '선'이라 말하는 일이 교직이지만 어쩌면 '악'인지도 모르겠다.

대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것인지, 수학은 늘 역을 정의하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게 된다. 수학적 체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집합에서부터 그렇다. 우리는 여집합을 어떤 집합과 전체집합으로부터 정의하지만, 여집합 또한 어떤 집합과 전체집합으로 정의한다. 양수를 빼기도 하고 음수를 더하기도 한다.역함수도 함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주 다른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미적분이 서로가 역연산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아가, 우리는 역원이라는 것을 정의한다. 실수와 그 실수의 역수를 곱해서 1을 만들어낸다. 행렬과 역행렬을 곱해서 단위행렬을 만들어낸다. 정반이 합쳐서 체계를 이루는 기본 단위가 되는 것이다. 수학은 늘 이것을 학교에서 몰래몰래 말해주고 있다. 세상에는 '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논리'는 세상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뿐이다. 빌런에게도 '공감'하게 해주는 것은 '사랑'아닐까.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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