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스웨덴으로 이직한 썰 22
다른 팀에서 개발자 한 명이 우리 팀으로 이동했다. 그와 일한 지 한 달 남짓, 나와 잘 안 맞는 사람인 것 같아서 큰일이다.
1. 그는 말이 많다
가장 처음 목격한 것은 그가 말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여태껏 알고 지낸 사람들 중에 단연코 가장 말이 많은 사람이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항상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누군가에게 계속 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숨을 참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는 말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 온갖 주제의 잡담부터 일에 대한 것까지 한번 시작하면 쉽게 입을 다물지 않는다. TMI를 서슴지 않으며, 꼭 해야 하는 말도 그는 10배 정도 뻥튀기한다.
애석하게도 파티션이 없는 트인 업무공간 안에서 나는 하루 종일 그의 목소리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있다. 우리 팀은 사각형 공간의 마주 보는 두 벽에 책상을 붙여서 서로 등을 돌리고 앉고 책상 사이에는 벽이 없다. 그래서 모니터와 벽 또는 창문이 보이는 앞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나머지 사람들과 공유한다.
전 회사에서는 대부분 파티션 안에서 일을 했지만 생각보다 금방 파티션 없는 구조에 적응했고 지금은 둘 중에 파티션 없는 쪽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큐비클 안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할 때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가서 조용함을 깨뜨린다는 부담감이 없어져서 특히 회사에 막 적응하던 시기에 이것저것 물어보기 좋았다. 일을 할 때도 서로 대화가 더 많은 것 같다.
사방이 뚫려있어도 으레 오후는 저마다 집중하느라 조용한 편이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새로 온 수다쟁이는 조용한 시간을 1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팀 공간이 조용하면 여지없이 그가 자리에 없는 거다. 처음에는 옆에 앉은 사람을 붙잡고 계속 얘기하길래 질문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 혼잣말에 가까웠다! 일을 할 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근데 이건 어떻게 되는 거지?'처럼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생각들을 옆 사람을 붙잡고 늘어놓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핑프 기질이 있고,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아는 내용을 굳이 설명하려 드는 더할 나위 없는 찐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했는데 매우 매우 논리적인 분석이다. 그는 스웨덴 사람이고 양옆에도 스웨덴 사람들이 앉는데, 얼마나 스웨덴 사람들 둘이서 성심성의껏 맞장구 쳐주는지 존경스러울 정도다. 우리나라였으면 눈치를 받고 금방 청자를 일었을 것이라고 70% 정도 확신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보통 개소리라도 거의 끊지 않고 들어주고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영혼 없이 마무리해서 넘어가버린다. 그래서 결정이 필요한 회의에서 영양가 없는 말들이 많이 나오고 결국 모든 의견이 '좋은 의견'이 되고 아무도 결정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아무래도 자기주장을 강조하는 서구식 교육의 단점이 문화의 마사지를 제대로 받은 것 같다.
나의 요가에 대해 누군가에게 듣고 수다쟁이가 자기가 가끔 명상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너와 별로 어울리진 않네...'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꽤 깊이 명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말을 쏟아내면 마음속에 남아있는 생각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2. 그는 사소함에 불만이 많다
개발은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해서 글의 목적과 목차는 다 같이 정할 수 있어도 글을 써 내려가는 일 자체는 본인의 재량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취향과 경험이 가미된다. 남의 글을 읽는 것 또한 개발자의 업무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때 사소한 것들을 짚어내는 사람이 있다.
개발자의 사소함에의 집착도 등급이 있다.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는 것으로 말싸움 같은 것을 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보통 가만히 지켜보다가 빠진 디테일을 예리하게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후자는 남의 코드를 볼 때 강도 조절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센스를 타고나기도 하고 경험에서 배우기도 하는 것 같다. 전자는 경험이 많이 없는 사람들한테서 종종 보인다. 그들의 이야기는 별로 흥미롭지 않지만 당연히 이해하고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다. 과거의 내가 그랬고 현재의 나도 누군가에게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무딘 칼날이어도 투덜이가 들이대면 기분이 나쁘다. 말이 아주 많은 우리 팀 수다쟁이가 사소한 코드로 떠드니까 짜증이 폭발했던 날이 있었는데 참을 수 없는 건 그가 찾아낸 작은 불완전함을 만든 사람의 실수를 탓하는 태도다. 그 불완전한 부분에 대해 질문이 있는 척 다가오지만 잘 들어보면 나한테 돌려까기를 시전한다. 어떤 사소한 잘못이 있는지 반복해서 설명하면서 끝끝내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정받아야 말을 끝낸다. 여기서 그는 정말 말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사실 개발자들 사이에 이런 대화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을 논의할 때 적절한 톤을 유지해야 한다. 한 끗 차이 뉘앙스로 나 같은 동료를 분노하게 할 수 있으니까!
문제를 지적할 때는 오직 문제만 이야기하고 사람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왜 이렇게 코딩했는지 모르겠다는 둥, 너무 복잡하고 바보 같다는 둥 코드만 보고 사람을 지적하지 마라. 코드가 모든 것을 말한다고들 하는데, 우리가 일하는 전체 과정이 영화 한 편이면 코드는 마지막 10여 분만 담을 뿐 분명히 결코 전체일 수 없다.
사람 지적질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놓치는 것이 있는데 동료 개발자들이 비슷한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best practice나 진짜 아름다운 코드를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알지만 안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바보는 왜 이렇게 했을까’라고 단정 짓지 말고 ‘어떤 문제가 있어서 이런 방법을 택했을까’라고 코드가 삼켜버린 필름의 나머지 부분을 궁금해해야 한다.
수다쟁이 투덜이가 나를 괴롭힌 부분은 우리 팀 3명이서 만들던 핵데이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시작한 나와 동료 한 명은 빨리 UI에서 데이터를 보려고 프론트와 백엔드를 한 명씩 맡았고, 수다쟁이는 뒤늦게 합류했는데 (늘 하는 일이지만 회사 인프라에 끼워 맞추려면 시간을 들여야 하는) 백엔드 프로젝트를 배포하고 프론트에서 호출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맡았다.
코드 네이밍을 운운하는 수다쟁이는 정작 건드리는 족족 빌드를 깨먹었고 어떤 것도 정상적인 상태로 올려놓지를 못했다. 그가 깨뜨린 것들을 바로 뒤에 앉은 내가 고치는 동안 수다쟁이는 메신저나 확인하며 옆사람과 수다를 떨어댔다. 자기 눈에 거슬리는 것은 아주 열성적으로 피치하면서, 자기가 만든 실수를 남에게 떠넘기듯 하는 태도를 보며 그는 눈치가 없거나 비겁한 편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 눈치가 없거나 비겁한 건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 고치거나, 모르면 물어보고, 다른 사람이 고치고 있으면 옆에 와서 도와주려고 하고, 아무 도움도 안 되면 나중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물어본다.
전에도 팀에 불만이 정말 많은 개발자가 있었다. 그에게 질렸을 즈음 다같이 있는 자리에서 불만이 있으면 불만만 말하지 말고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작은 결점을 코딩을 까먹은게 아니면 직접 고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아직 팀에 onboarding 중이라 100% 업무를 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애매하게 핵데이라서 참았지만 계속 참지는 않을 것이다.
3. 이런 사람과 일하는 것도 배워야겠지
처음에는 화를 참을 수 없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만큼 써보니 내가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처럼 일하지 않고 사람에게 미움을 키우지 말고 제때 침착하게 피드백을 주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수다쟁이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별로 없다. 그가 인간적으로 좋지도 싫지도 않고 가끔 안쓰러울 뿐인데, 회사 사람들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없으니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감정 갈무리가 아닌가 한다.
일요일 저녁, 내일 아침에 다시 수다쟁이와 5일 업무를 시작할 나를 위해 기도를 한다. Om Shanti Shanti Shanti - universal peace.
8th Feb 2020
#개발자 #해외취업 #스웨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