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은 비처럼 내린다.

by 엄소라

싱그러운 초록 풀잎들 사이 반듯한 누각에 자리잡고 앉았다.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어보니 촉촉히 내리고 있는 비 사이로 햇빛이 가닥가닥 갈라져 마루 위로 선을 긋고 내려와 있다.


겹겹이 틈을 내어주지 않고 내리는 비들이 빗소리를 낸다. 이어지는 소리지만 멈춤이 없고, 멈춤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꽉 차 있지도 않은 빗소리. 비들 사이의 바늘 같은 틈도 틈이라고 약간의 바람이 불어 이마가 간질간질하다.


어떤 말은 비처럼 내린다. 빠져나갈 틈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그런 비 같은 말들. 마음 놓고 있다가는 스르륵 내면으로 들어와 기어이 나를 녹여내 그들과 같은 속성을 갖게 하는 티 없는 말들.


말하지 않기로 한 말들과 말해야 했지만 못했던 말들. 나의 그런 말들은 저런 비를 흉내냈으면 좋겠다. 허공에 의도를 갖고 뿌려진 것 같다가도 얼른 옷으로 훔쳐 닦아낼 수 있는 의미없는 방울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