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단오 아침을 데려오는 시

시가 내 시간을 흔들었다 12/김권-아침 안개

by 초린혜원

단오 아침이다. 유난히 새소리가 맑게 귓전을 울려 이른 새벽녘 눈이 떠졌다. 며칠 동안 찌뿌듯했던 몸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단오라서 그런 것일까. 아무튼 단오는 우리나라의 4대 명절 중 하나이면서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그저 몇몇 고장에서 '단오제'를 지내며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단오만 되면 삼삼오오 모여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동네 어귀 느티나무에 매여진 그네를 타거나, 씨름을 하던 풍경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단오 무렵이면 세상이 푸른 기운으로 둘러 쳐져 있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광경들이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먼저 와닿곤 했었으니까. 그리고 여기, 다른 이들에겐 잊혀 가는 명절 '단오'를 일생의 하루로 기억하게 해 주는 시가 하나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시의 첫 연 두 행인데 나만의 단오를 맞는 경건한 의식을 이 시와 함께 매년 열곤 한다 열일곱 이후로.


누이의 창포 냄새가

늪을 건너 아침으로 온다.


단옷날 창포 빛깔로 사방에 번지며, 온몸을 적셔 버리는 시. 단 한 구절인데도 시각과 후각의 공감각이 동시에 작동하며 말단에 숨어 있는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시다. 이 아름다운 시는 내 오랜 '友' 김권이라는 아마추어 시인의 시인데 제목은 '아침 안개'이다. 세월 저 건너에 있는 친구의 시는 오직 이 두 행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어서 한편으론 너무나 안타깝기도 한 시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표현할 말이 달리 떠오르질 않는다. 당시 시께나 쓴다는 친구들(나를 포함해)의 시란 대단히 관념적인 언어들의 숲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허덕이는 수준이었으니까.

그것이 겉멋만 든 치기라 할지라도 왠지, 문학청년이기 때문에 용인되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친구의 시는 달랐다. 대단히 서정적이었다. 단 두 줄의 행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가뿐하게 그림으로 그려낸다. 설익은 치기를 걷어낸, 너무나 담백한 시. 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곧 그의 글이 된다는 전제를 둔다면 이 아이는 얼마나 투명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인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시를 알게 된 이후 오랫동안 이런 시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요한 초여름 아침, 물안개가 자욱한 어느 늪에 물새 떼는 날아오르고 어디선가 코 끝을 자극하는 아련하고 그리운 향기가 번져온다. 향기는 이내 창포꽃 색깔로 몸 구석구석을 물들인다. 단 두 행을 읽었을 뿐인데 녀석의 시는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했다. 자신의 언어를 과하지 않게 드러내면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명징하고 정확하게 읽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 혹여 이것이 시의 정의라면 이 시야말로 아마추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시가 아닐까 싶었다.


더군다나 이 시는 오랜 시간동안 쓰고 고치며 퇴고한 시가 아니라, 한 백일장에서 시제를 받아 들고 단 몇 시간 만에 쓴 시였기 때문에 시를 읽고 난 후의 내 마음은 어떤 환희와 좌절이 서로 엉키며 뒤범벅돼 한동안 할 말을 잃기도 했었다. 아마추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시를 고등학교 시절에 써낸 녀석은 천재였다. 적어도 그 후로 일 년여 정도는.



이 시 '아침 안개'로 녀석은 그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나는 '차상'이었고. 나의 시가 여전히 관념과 사념의 경계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녀석은 아마추어가 닿을 수 있는 어느 경지에 닿아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나 보다. 시를 미친 듯이 읽고 쓰고를 반복하던 녀석은 재수를 하면서 시를 놓아버렸다. 게다가 시와 무관한 전공을 택했고. 짐작컨대 시의 공간에만 갇혀있기엔 처한 현실의 압박이 너무 버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 빨리, 시로 이를 있는 정점에 가닿아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다.


친구를 못 본 지 십수 년이 흘렀지만, 이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또 해마다 이렇게 단오를 맞을 때마다 저 두 행이 기억에서 자동 재생되며 시들해진 시 세포를 자극해 준다. 사춘기 시절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내내 머뭇거리던 녀석의 발걸음과 풋풋한 미소 또한, 내겐 여전히 이 시가 뿜어내는 6월의 풀빛 내음으로 남아있다.


시는말이 사는 집이라는 해석을 빌려와 본다면, 이 친구의 시는 제대로 된 주춧돌 위에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이 아닐까. 매년 단오가 되면 살아나 무의식의 강물 속 물길을 열어 의식의 영역으로 밀어 올려 주는 '아침안개', 한 개인의 역사에 이런 시가 존재한다는 건 큰 축복일 것이다. 기억마저도 어슴푸레해진 지난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 간밤에 내린 비로 채색된 모든 사물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오는 아침이면 또다시 이 시를 읽어야겠다. 아니, 이 시의 남아있는 두 행을 곱씹어 봐야겠다.


혹, 친구가 살고 있는 저 먼 미국까지 단숨에 닿을 수 있는 그네가 있다면 힘껏 굴려 날아오르고도 싶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시의 세계에서 울기도, 함께 웃으며 자라나기도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가장 순수했던 우리의 초상을 다시 그려내고 싶다. 열일곱의 내겐 가장 완벽했던 시의 구절들을 낭송하며, 친구의 아름다운 시구절에 마음을 담은 나의 댓 구를 붙여본다. 청량함에 따뜻함을 더해 새롭게 탄생된 시를, 녀석이 좋아해주기를 내내 바라며.


누이의 창포 냄새가

늪을 건너 아침으로 온다.


여린 초록잎마다 디딘 발자국

이슬로 달려 찰랑거리고,

유월은 물새 떼의 날갯죽지에 숨어

도란도란 익어간다.<아침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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