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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May 20. 2022

내 결혼식 로망 깬, 남편의 노래 실력

정태춘, 박은옥/ 사랑하는 이에게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가정의 달인 5월 , 둘이 하나 된다의미를 담아 2007년 공식적으로 국가공인 법정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부부의 날' 이 왜 있어야 하는지 괘념치 않는 남편을 둔 터이기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부'의 중심이 적어도 내게는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인연의 실, 그 끝을 잡고 있다가 만나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으로 산 지도 이제 내년이면 30년이 된다. 가끔 농으로 " 아따! 우리 참 징글징글하게 살았네!"라는 말로 서로에게 지난했던 세월의 흔적을 상기하고는 한다. 그 사이 꽤 괜찮은 미소를 지녔던 남편의 얼굴엔 팔자주름이 깊게 파여 영락없는 중년의 모습이 되었고, 영원히 푸릇푸릇할 것만 같았던 내 마음에도 세월의 풍파가 가끔 지나가더니 골이 생기고 그림자가 드리우는 시간도 생겨났다.                                                                                                                                                                                                                                                                                                                                                                                                                                                   


결혼식을 하던 날, 내 친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넌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줄 알았는데.."라는 말들을 했었다. '아니 친구 결혼식에 와서 이게 할 말인가' 싶었지만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네 싶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워낙에 독립적인 데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씩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새로운 가정을 이룰 때도 공부를 하러 외국으로 가겠다는 다소 불가능한 꿈을 버리지 못했고, 그 꿈을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갑자기(친구들 입장에서는 다소 그랬다) 결혼을 한다는 통보를 했을 때, 열에 아홉은 '정말?'이라는 반문을 해왔던 걸로 기억한다. 무튼.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지만, 내게는 아주 작은 소망이 하나 있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이제 막 내 남편이 된 사람과 함께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고픈 것, 그것 하나였다. 곡목도 아주 오래전부터 정해 놓았기에 남편은 그냥 따라와 주기만 하는 되는.. 어찌 보면 너무나 쉬 이룰 수 있는 소망이었다. 그 소망의 한가운데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사랑하는 이에게'가 있었고.



실제로도 연인이었고 , 후에 부부가 된 이 두 사람이 듀엣을 이뤄 부른 노래는 흔치 않은데, 이 노래만큼은 작정하고 함께 부르기로 생각하고 만든 듯싶다. 한 소절씩 마치 대화를 하는 것처럼 주고받는 가사는 굉장히 직설적이지만 한 없이 따스하다. 특히 '그대 오소서 이 밤길로 달빛 아래 고요히'에서는 아무리 무뚝뚝한 성정과 얼음 같은 심장을 지닌 사람이라도 옅은 미소와 함께 '아, 내 심장이 누군가로 하여 녹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 연유로 이 노래를 처음 접한 날, 난 그러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이 노래를 내 피로연에서 남편과 함께 누구라도 질투가 날만큼 다정하게 부르기로.


그래서 남자 친구가 생기거나. 혹 '썸'이라도 타게 되는 대상이 나타나면 햇살이 그득한 벤치에 앉아서, 또는 어둑한 광장의 노을빛을 다정히 바라보며, 가끔은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이 노래를 불러보고는 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정태춘, 박은옥의 앙상블을 엇비슷하게라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해서 내가 부를 파트의 완성도를 높여가며 상대를 물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들을 때는 굉장히 쉽고 아름다운데 막상 따라 부르려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 노래를 , 나의 음역대와 어울리게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이지 흔치 않았다. 아니, 없었다고 하는 편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대 고운 목소리에

내 마음 흔들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네

깊은 밤에도 잠 못 들고  

그대 모습만 떠올라

사랑은 이렇게 말없이 와서

내 온 마음을 사로잡네


달빛 밝은 밤이면

그리움도 깊어

어이 홀로 새울까

견디기 힘든 이 밤

그대 오소서 이 밤길로

달빛 아래 고요히

떨리는 내 손을 잡아주오

내 더운 가슴 안아주오 /정태춘 박은옥-사랑하는 이에게 가사


이처럼 서정성의 물기가 곱게 배어 나오는 한 편의 시 같은 가사를 사랑하는 사람과 눈빛을 마주하고 '둘만의 언어'로 노래 부르고픈 내 기대는 어쩌면 너무 큰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이에게'를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짝꿍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더 놀라운 것은 지금 내 옆지기는 지독한 음치에다 박치여서 이 노래로 단 한 번의 합도 맞춰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는 '婦'의 한 축 ''를 담당하며 어쨌거나 목하 결혼 30주년을 함께 앞둔 사이가 돼 있는 것이다.  '월하노인' 은 대체 우리 부부의 어떤 점들을 눈여겨보고 인연의 끈을 맺어준 것일까? 'ESFP'남자와  'INTJ'여자 , MBTI 성향만 보더라도 극과 극에 자리하고 있는 낱낱이 하나하나가 다른 우리 두 사람을 말이다. 하여 아직도 질문은 유효하고, 궁금증은 날이 지나도 해소되질 않으니 참 재밌는 게 인생이다.



마침 정태춘의 데뷔 40주년(사실은 2019년이다)을 기념해 만들어진 다큐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이 지난 18일에 개봉됐다는 소식에 세월의 흐름이 너무나 빠르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했다. 이를 통해 한 시대를 이끈 가수의 얼굴에는, 그를 감싸 안은 아우라에는, 그가 불러온 노래들이 '인'처럼 때론 '문신'처럼 박히거나 새겨져 있음을 본다.  


그가 서정적이고 고요한 노래로부터 시작해 광장에 모인 이들의 울분을 관통하며 대변하는 노래들을 부를 때까지, 노래로 연명해온 40년 이상의 세월 그 곁에는 아내 박은옥이 있었다. 힘듦과 어려움의 폭풍 속에서도 지지하고 견디며, 같은 곳을 향하는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평생 같이 살며 뜻을 함께 하는 동지' 그것이 부부의 진정한 의미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부부' 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덕분에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 오늘 하루 종일 사위를 맴돌았다. 비록 듀엣으로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를 수는 없어도,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것들의 소중한 가치, 그 정점에 이르게 되는 날까지 우리 부부도 마주 보는 날보다는 같은 방향을 보며 어깨동무를 하는 날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시간이 혹여 다시 다가오면 이 노래 '사랑하는 이에게'를 꺼내 들으며, 노래에서 정태춘ㆍ박은옥이 그러했듯 각자가 잘하는 것을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가 화음을 이루어야 할 때는 서슴없이 함께 일수 있기를 거듭 기도한다.


비록 희미해지긴 했어도 서로에게 '사랑하는 이' 였던 그 순간을 애써 떠올려 보는 것도 잊지 않아야겠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인 [음악방송작가의 선곡표, 문득 이 노래]에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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