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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Nov 08. 2022

남편이 목 놓아 울었다, 이 노래 때문에

조성모의 투 헤븐

죽어가는, 조금 더 극적인 표현을 하자면 이미 오래전 죽었던 연애세포마저 살려 준다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20세기 소녀'. 때는 마침 아름답고도 쓸쓸한 가을,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자꾸만 까닭 모를 뜨거운 물길 같은 것이 감지되는가 하면, 수시로 넋을 놓고 먼데 산을 응시하다 흠칫 놀라 부르르~ 몸을 떨기도 한다. '그래, 가을 타는 덴 역시 달달한 로맨스지!' 그렇게 영화가 인도하는 세기말 감성, 그 감성이 이끄는 사랑의 시작에 몰입해 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런! 이를 어쩌나. 난생처음 보는 자두꽃이 펼쳐내는 아름다운 영상미에 홀리고 풋풋하고 상큼한 소년소녀들의 사랑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다가, 첫사랑의 아린 맛과 그 불멸성에 짧은 한숨도 새나올 무렵, 영화가 가닿고자 하는 순수하고 유쾌하며 찌르르한 감정들 끝에 이끌려 나온 그 시절의 노래 한 소절에 그만 건조하기만 했던 일상이 함빡 젖어들고 흔들리는 느낌을 받게 됐으니.

                                                                              

괜찮은 거니 어떻게 지내는 거야
나 없다고 또 울고 그러진 않니
 매일 꿈속에 찾아와 재잘대던
 너 요즘은 왜 보이질 않는 거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
 내게 올 수 없을 만큼 더 멀리 갔니
 니가 없이도 나 잘 지내 보여
 괜히 너 심술 나서 장난친 거지
 비라도 내리면 구름 뒤에 숨어서
 니가 울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만 하는 내게
 제발 이러지 마 볼 수 없다고
 쉽게 널 잊을 수 있는 내가 아닌걸 잘 알잖아
 혹시 니가 없어 힘이 들까 봐
 니가 아닌 다른 사랑 만날 수 있게
 너의 자릴 비워둔 것이라면
 그 자린 절망밖엔 채울 수 없어
 미안해하지 마 멀리 떠나갔어도 예전처럼
 니 모습 그대로 내 안에 가득한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이별이 없는 그곳에
 우리 다시 만날 그날이 그때까지 조금만 날 기다려줘/ 조성모 '투 헤븐 가사'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래서 선곡 리스트에서도 어느새 사라졌던 조성모의 '헤븐'이었다. 1998년 9월 무렵 발표된 조성모의 첫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곡이기도 하다. 21세기의 잣대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 노래가 실린 1집으로 활동을 시작한 조성모는 한동안 노래는 있고 소위 '얼굴은 없는 가수'로 대중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세기말의 감성을 자극하는 낯설지만 아주 세련된 드라마 타이즈 '뮤직비디오'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었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모습을 드러낸 그는 자신의 노래 가사를 그대로 닮은 해맑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노래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장면에서 조성모는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형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불렀다고 얘기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내게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나는 장면 하나가 있다. 어쩌면 이 노래를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이유와도 귀결되는 그런 사연 하나.


1997년, 가을이 막 얼굴을 내밀었던 9월 무렵 남편은 바로 아래 동생을 잃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황망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어머니는 둘째 아들인 자신이 모시고 살겠다는 선언을 가족들에게 할 만큼 누구보다 효자였고 말수가 적었지만 자신의 일을 그저 묵묵히 하던 무던한 사람이기도 했다. 표현은 하지 않았었지만 남편도 이런 동생이 든든하고 한편 믿음직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동생이 하루아침에 떠나버렸으니 그 아픔이야 어찌 이루 말할 수 있으랴.


동생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일까, 발인 날 남편은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했었다.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그렇게 목울대가 솟아오를 정도로 대성통곡을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워낙 감정을 잘 내비치지 않는 '경상도 남자' 이기도 하려니와, 본인이 상주인 터라 내내 울음을 꾹꾹 눌러왔었던 거 같았는데...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 게다. 그의 대성통곡에 숙연했던 장례식장은 아주 잠시지만 울음바다로 변했던 것도 같다. 아직 신혼이었던 결혼 생활에 던져진 큰 '슬픔' 하나로 그렇게 우리는 어깨와 등이 굳은 채 시련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불행은 언제나 친구를 함께 데려온다고 했던가, 이 무겁고도 음울한 개인적인 슬픔에 더해 전 국민을 혼돈으로 몰고 간 IMF사태까지 겹쳐지니 '그토록 기다리던 새로운 세기가 우리 앞에 과연 펼쳐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내내 업습해 왔었다. 가까운 이의 죽음,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IMF사태, 그리고 세기말의 근원적 불안까지. 그야말로 3 연타였다.


이때 가장 많이 떠올린 구절이 아마도 철학자이자 시인인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마지막 구절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아니었을까.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독을 딛고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 그 마음이 아니었으면 남편도 나도 그리고 우리가 만나 새롭게 일군 가정도 그 어둠의 그늘에 잠식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시동생의 첫 기일을 맞을 무렵 하필이면 이 노래 '투 헤븐'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삶을 잃은 자신의 동생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이 노래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고 TV에 뮤직비디오가 자주 비치자 남편은 발인 이후 한 번도 해제하지 않았던 슬픔의 걸쇠를 끌러버렸다.


"저 노래 뭐고? 꼭 내 마음을 읽고 만든 거 같네. 참 애절하네"


단 한마디였지만 그 말에 담긴 남편의 마음이 노래를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눈물을 보이기 싫어 돌린 그의 등이 엇박자로 들썩거리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한동안 이 노래를 듣기란 참 힘들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었다. 비록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세기말의 암울을 정화시켜준 고마운 노래라 할지라도 말이다.


노래는 나이 들지 않는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노래에 담긴 사연이 늙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한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너무도 정확하게  그 노래가 품고 있던 사연이 탄생했던 시절로 돌아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를 통해 소품처럼 흘러나온 노래에 나도 잠시 세기말로 시간여행을 한 셈이었으니까. 달콤한 줄로만 알았던 영화가 소환한 인생의 어두웠던 한 때. 모르긴 몰라도 부지불식 간에 동생을 잃은 남편은 1998년, 여기저기서 많이도 들려오던 이 노래를 들으며 남몰래 눈물을 많이도 훔쳤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오기나 할까?'  의문을 품게 만들었던 21세기는 너무나 자연스레 우리에게 다가왔고 끝날 거 같지 않던 혼돈과 슬픔도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그 흐르는 시간들 안에서 우리는 삶이 지닌 다양한 결들을 경험하고 인내하면서 각자의 새로운 자아를 구축하기도 했다. 신이 주신 '망각'이라는 선물 안에서 잊을 것들은 잊고 간직할 것은 아주 깊숙하게 묻어둔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비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단 한 소절 '괜찮은 거니 어떻게 지내는 거야'는 그렇게 하늘에 먼저 간 이들이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혹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21세기를 무사히 맞고 다시 찾아온 삶의 무게를 잘 버텨내고 있는 지금의 우리가 20세기의 우리에게 전하는 '안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엔 이상하게도 슬프디 슬픈 이 노래가 숨겨왔던 농축된 '희망' 이 존재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영화가 떠올리게 만든 이 역설의 문장을 품고 지금의 나는,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20세기의 그들과 먼저 하늘로 돌아간 이들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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