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이 끝난 뒤 먹는 별미, 묵은지 잡채
묵혀서 더 은근한 맛
몇 해전부터 김장을 하지 않고 있다. 가만히 헤아려보니 얼추 삼 년 정도 된 거 같다. 아이가 먼 곳에 일자릴 잡아 독립을 했고 남편은 고맙게도 거의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오는 지라, 나 혼자 먹자고 며칠 동안의 수고를 품 삼아 김장을 하는 일이 왠지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한 편 시시해졌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은 우리 식구들 입맛을 기준으로 담아 젓갈 향이 넘치도록 나는 '경상도식' 김치가 그립기도 하지만 여기저기서 얻은 김치로 만족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얻은 김치들을 정리해 김치냉장고에 넣으려고 살피니, 작년에 받았던 김치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 참 곤란해지는 순간이다.
꽤 많은 양의 김치가 갑자기 성가셔져서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이를 어쩌지? 그래도 누군가는 정성스레 건넨 김친데 죄다 버릴 수도 없고 저걸 한꺼번에 다 처리하자니 막막하고...' 금세 묘안이 떠오르질 않아서, 이 궁리 저 궁리하던 차였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휴대전화 갤러리에 들어 있는 음식 사진 들일 테다. 특히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그 3년 동안 해 먹였던 음식들.. 그 음식들을 소환해오면 뭔가 해결책이 따라올 듯싶었다.
"엄마, 아침밥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에 따라 수능점수 20점이 차이 난대"
"뭐? 그런 법은 어디에서 생겨났대?"
아주 오래전부터 아침밥은 간단한 선식이나 토스트 한 조각으로 갈무리하는 우리 집만의 불문율이 있었는데, 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를 다소 무시무시한 문장으로 엄마의 의무를 규정해 주었다. 마침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엔 내 커리어도 정점에 있을 때여서 일도 많았고 시간은 늘 부족했었다. 주말까지 이어지는 생방송 원고에 짓눌려 악몽을 꾸다 놀라 일어나는 날도 많았다는 것을 아이가 알리 만무했다. 수험생을 둔 엄마는 슈퍼우먼을 넘어 그 위에 존재하는 초능력자에 가까워야 했으므로.
"그래.. 알았어. 아침 밥 해줄게. 대신 늦잠 자지 않기다. 밥 먹고 학교 가려면 늦잠은 안 돼"
그렇게 시작된 아침밥이었다. 아침밥이라고 해서 마냥 가볍게 준비할 수는 없었다. 생애를 통틀어 가장 힘들다는 수험생의 길을 걷고 있는 아이 아니던가. 매번 간단한 반찬 서너 가지와 갓 지은 밥, 그리고 국이나 찌개를 만들어 속을 든든히 해 등굣길에 오르게 했다.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어쩐지 단호하게 하지 못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 같은.. 그런 시간들이었다.
아침밥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본인의 목표지향적인 노력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1학년을 마무리하는 기말고사를 끝낸 아이의 뒷모습은 무척 가벼워 보였다. 말에도 윤기가 흘러넘치고 어느새 살도 토실토실하게 올라 있었다. 그렇게 한 해를 잘 마무리해 가던 12월의 느지막한 어느 날, 미뤄뒀던 김장을 하기 위해 김치냉장고를 열었더니 아뿔싸! 묵은지가 제법 많은 게 아닌가.
우선 아이의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위해 돼지고기를 넉넉히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끓여 놓고 며칠 전부터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김치 전도 몇 장 부치기로 한다. 시작한 김에 콩나물 김칫국도 여분으로 만들고 간식으로 먹을 김치만두도 만들어 놓아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릿속으로 셈을 하고 또 해 봐도 묵은지를 몽땅 처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고민이 깊어갈 무렵 언뜻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음식 하나가 무심코 떠오른 것이었다. 엄마가 기분이 좋을 때 종종 해주시곤 했던 '묵은지 잡채'였다.
언제나 본인의 품성만큼 음식에 있어서도 손이 컸던 엄마는 김장김치도 항상 넘치게 담갔었다. 요즘처럼 다양한 먹거리가 없어서 김장김치에의 의존성이 높았다 손 치더라도 우리 동네에서 엄마만큼 많은 양의 김치를 담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항상 다음 해 김장 무렵 감나무 밑에 묻어 놓은 김장독을 열어보면 시큼한 내음의 묵은지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는 무한 '묵은지 루프'에 빠질 걸 각오해야 했었다. '콩나물 갱시기'부터 시작해 김칫국을 지나 김치찌개에 물릴 때쯤이면, 김치만두를 넘어 김치전이었다. 뭐, 따져보니 내 레시피도 엄마의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 못함이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그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음식 하나가 '두둥' 하고 등장을 한 것이 아닌가. 한눈에 봐도 참기름을 넉넉히 두른 것이 분명한 윤기가 좔~좔 흐르는 잡채였다. 당시만 해도 잡채라면 잔치상이나 명절에나 나올 법한 귀한 음식이어서 김장 무렵에 잡채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잡채가 떡 하니 상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잡채는 이전에 익히 알던 잡채와는 색깔이 좀 달랐다. 소고기를 볶아 넣고 시금치와 당근으로 색을 맞춰 곱디고운 잡채가 아니라, 뭔가 허여멀건 해서 많이 모자란 듯한 잡채였기 때문이다.
"엄마, 이거 먼데? 당면하고 저거는 오뎅(어묵)이고... 설마.. 이거는 김치가?"
"어, 맞다. 김치 아이가! 묵은지를 독에서 꺼내가 찬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씻어가, 길이대로 써리가 볶아가..."
엄마의 레시피는 어느새 하이 톤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전에 없이 굉장히 신나는 목소리였다.
"엄마, 이거 군내 안 나더나? 일 년을 독에 들어 있다가 나온 긴데.."
"아이다 함 무봐라. 엄마가 매~매 씻어가 하나도 냄새 안 난다. 카고(그리고) 깊은 맛이 있어가 의외로 당면하고 잘 어울린다 아이가..."
엄마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처음 대하는 '묵은지 잡채'가 신기해서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맛의 신세계였다. 자칫 달거나 짤 수 있는 잡채의 맛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묵은지의 묵직함이 놀랍게 한 접시에 잘~어우러져 있었다. 평범하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맛이었다. 어쩌면 외할머니가 짜주신 참기름이 신의 한 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손맛으로 천하를 평정한 엄마의 새로운 레시피, '묵은지 잡채'가 또 하나의 '인생 음식'으로 등극한 순간이었다.
결혼을 하고 내 손으로 직접 김장을 담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묵은지 잡채'는 약간의 변이를 거쳐 다시 나만의 '묵은지 잡채'로 진화했다. 식재료들이 넉넉지가 않아서 기껏해야 잘게 썬 어묵이나 재수가 좋은 날이면 시금치 정도가 들어 있던 엄마의 '묵은지 잡채'는, 고기도 넉넉히, 버섯도 종류대로 볶아 넣어 자꾸만 손이 가게 만드는 신형의 잡채로 변신한 것이다.
그 옛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묵은지의 다소 강한 향에 얼굴을 찌푸리던 아이도 이젠 겨울만 되면 "엄마 묵은지 잡채 좀 해 먹자"며 말을 건넨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음식 하나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한 세대를 거쳐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 그 과정에서 들고 낢은 있어도 원형은 쉬 손상되지 않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통해 어머니, 혹은 그 어머니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지난한 생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또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려 노력하기도 하는 것은 아닐지.
다시 돌아온 겨울, 비록 김장은 하지 않았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묵은지 잡채'를 만들기 위해 시어버린 김치들을 흐르는 물에 씻는다. 하나의 의식처럼 단단하고 견고하게, 한 생을 건너온 율법을 대하듯 그렇게 성스럽게.
묵은지 잡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