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신박한 정리가 필요해 지금 당장

넷플릭스오리지널다큐/미니멀리즘 :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by 초린혜원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 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약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왜 지금, 미니멀리스트인가?


장기화된 코로나 시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각광받게 된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신박한 정리'라는 tv 프로그램이다. 주로 유명인들의 집을 정리해주고 거기에 관련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곁들이는 전형적인 예능 프로그램인데, 왜 하필 요즈음 이 프로그램이 주목받게 됐을까?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동안은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던 '집'과, 그 안에 거하는 '사람과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게 해 준 프로그램의 의도 때문이었다.


간간이 화면에서 집주인들이, 물건을 덜어내고 재배치한 후 바뀐 집을 보고 감동을 받아 울먹이곤 하는 모습에, 저렇게까지 울 일인가 싶었는데 여기 소개할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을 통해 의문은 말끔히 해소되었다. 집이 바뀌면 거기에 거하는 사람의 마음도 극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 다큐멘터리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어떤 계기를 통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의 구심점은 바로 조슈아와 라이언이라는 두 친구인데, 어린 시절 아주 불행한 가정사를 겪었고, 지독하게 가난했다는 공통의 성장사가 바탕이 돼 있다.


조슈아와 라이언이 물건을 비워내며 얻은 삶의 지혜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웹사이트로부터 이 다큐멘터리는 출발하게 되는데, 이 두 친구의 프레젠테이션과 이 웹사이트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사실적 인터뷰를 결합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현재의 미니멀리스트들이 과거의 자신을 돌아볼 때 가장 많이 하는 표현은 이전엔 물건에 얹혀사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집의 주인, 나아가서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물건들이었다는 얘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조슈아와 라이언을 비롯해 다큐에 등장하는 모두는 더 많은 물건을 가지기 위해 돈을 벌었고 물건을 많이 가지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거야'라는 생각으로 물건을 사 모았다고 한다.


물건, 소유- 자본주의의 허상


채우고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강요하는 '결핍 광고' 때문에 거의 모든 이들은 이것이 없으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광고를 보라! 성공한 삶을 살려면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은 더욱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때로는 맹목적으로 소비에 몰입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사 모으기도 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이 모자라면 신용카드의 최대치를 사용해서라도 물건들을 수집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은 이런 삶이 바로 성공의 잣대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원하던 물건을 소유하면 인생의 어떤 한 면이 화려하게 바뀔 거라는 기대와 함께. 하지만 이는 물질적인 부를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성공이라 생각하는, 학습된 자본주의의 허상일 뿐이다. 사실, 사회적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자리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소비한 외에,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물건을 사들이고 또 사들여도 갖고 싶은 걸 다 사거나,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 깨달음이 온 순간에 느껴지는 공허감이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집이 물건들로 가득한데도 왜 공허감은 찾아오는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 수많은 물건들 중에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다큐 내용 중 라이언의 경험에서 오는 접근법을 한번 예로 들어보자. 라이언은 먼저 미니멀리스트의 길로 들어선 조슈아의 권유로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단순히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포장 파티'즉, 이사 갈 때처럼 짐을 다 싸버리는 것을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박싱을 해 놓고 매일 필요한 것만 빼서 쓰는 방법이다.


그런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 그는 진심으로 놀라게 된다. 자신이 꺼내 쓴 물건은 가지고 있는 물건의 채 20%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머지 물건들은 필요하지도 않고 존재가치조차 없는 쓸데없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방법을 통해 깨닫는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인데, 왜 여태껏 물건이 주인이 된 삶을 살고 있었을까?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라이언처럼 물건이 주인인 집에 우리가 종속돼 사는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또 우리 집에 이런 물건도 있었던가? 싶다가, 언제 산지도, 때로는 사용처도 모를 물건들에 당황스러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고. 물건이 내 공간과 정신까지 비집고 들어와서 그야말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어느 순간 각성하게 돼 버렸다.


이것을 깨닫고도 이런 채로 삶을 이어간다면, 평생 우리의 삶은 자유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건 그토록 바라던 멋진 삶에서 멀어져, 엉뚱한 삶에 매몰된 채로 살아가도록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미니멀리스트로 가는 길


지금부터라도 물건이 아닌 내가 주인이 되는 공간을 가진 미니멀리스트가 돼 보는 건 어떨까. 갖고 있는 자원을 계획적으로 쓰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 하나하나의 물건이 내 삶에 미치는 가치부터 따져보고 물건에 구속되는 것이 아닌. 독립성과 자유를 누리는 나를 상상해보는 것도 좋다.


목적의식이 사라진 물건이 있다면 과감히 버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 효용가치가 떨어진 물건들은 이것이 필요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거나, 모아 기부를 해도 좋을 것이다. 다큐에 등장하는 비우는 사람들이 느낀 공통점은, 물건을 정리하면서 삶을 짓누르던 쓸 데 없는 기억과 생각들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삶의 목표를 재정립하게 된 것도 주목할만했다.


특히 조슈아는 어머니의 죽음 후 유품을 정리하면서 인생의 어떤 모멘텀을 갖게 됐는데, 65년 동안 그녀가 모은 짐이 어마어마한 걸 보고 이 모든 것들이 쓰임새도 없는 한낱 잡동사니인 것에 놀라 물건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물건이 그 사람의 역사가 될 순 없고, 물건에 소중한 추억이 저장되는 건 아니라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유품 정리 이후, 본인 물건까지 비워내면서 자신의 삶도 점차 가벼워지는 걸 느끼게 되고 바로 이 순간의 경험을 토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웹 사이트를 개설하게 됐다고 한다.


어떻게 비울까


그럼 어떻게 비우는 것이 좋을까? 비우는 데, 어떤 절대적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큐의 출연진들이 실행한 방법들을 공유해보기로 한다.


하루에 한 가지씩 아주 작은 것부터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버리기 전에 그 물건의 가치를 따져보는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걸 알게 된다. 비우면 비울수록 자유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또 다큐 말미에 붙여진 '적을수록 좋다 챌린지' 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나 동료, 혹은 절친한 이웃도 좋고 짝을 이뤄서 혼자일 때보다 더 열성적으로 해 보는 거다. 첫 째 날은 하나, 둘째 날은 두 개, 셋째 날은 세 개. 이렇게 하다 보면 공간을 점령하고 있던 그 수많은 잡동사니들로부터 해방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집안을 구역별로 나눠 정리하기, 하나의 물건에 가치를 부여해 꼭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기 등도 꽤 좋은 해결책이다.

다큐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물건을 비워내면서 서서히 인식의 변화가 생기고, 매 순간을 감사하게 되는 맘을 갖게 된다고! 그렇게 비워내고 아주 최소한의 물건만 갖게 됐는데도, 왠지 모르게 풍요로운 기분을 느끼게도 된다고. 이게 바로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것이다. 물건이 아닌 고유한 정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


이제 우리는 추억이란 물건으로 기록되는 게 아님을 절감해야 한다. 또한 삶을 가치 있게 만들려면 미루지 말고 당장 비워내야 한다. 나를 짓누르던 어떤 것들을 비워내야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으로 인해 쓸데없이 복잡해져 있던 삶을 심플하게 만들어 보자.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놀라운 경험을 위해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들을 덜어낼 순간의 용기만 있으면 되니, 늦게 시작하면 할수록 손해 아니겠는가.


결국 우리가 꿈꾸는 건 주도적인 삶이다

평소 필요 없는 물건들을 잘 정리한다 자부하는 나도, 욕구를 완전히 버리진 못했다. 당일배송, 모바일 결제, 같은 현대사회의 편리함, 그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의 중간쯤에 끼여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내가 꿈꾸는 삶은 소박하지만 주도적인 삶이라는 걸 깨닫게 다행이다. 인생의 설계도, 그 중심에 사람이 아닌 물건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발견했으니 고마운 일이고. 그리고 버리면서 얻어질, 진정한 삶의 정수만 남게 된 내 모습도 그려보게 됐다. 이는 예능, 혹은 드라마나 영화와는 그 결이 다른 사실에 기반한 다큐멘터리만의 힘이 아닐까 한다.


미니멀리즘은 잠시 지나가는 트렌드가 아니다. 그렇다고 맹목적인 규율에 가깝지도 않다. 그러나 신념으로 무장된 순수한 정신의 결정체임에 틀림없다. 지켜낼 때, 무한한 삶의 기쁨을 얻을 수 있고, 삶에의 의지가 더 풍성하게 샘솟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일어서야 하는 이유다. 혹시라도 비워내는 것의 한계에 도달했다 싶을 때면 이 다큐에서 조슈아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한 문장을 곱씹어 보자.


짐을 줄이면 인생이 어떻게 더 나아질까?
인생이 나아지면, 건강을 챙길 시간도 생길 테고, 인간관계도 좋아지고, 창의력도 발휘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나 자신을 챙길 수 있을 거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