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편지/말이 말을 낳고
너에게 부끄러움을 감히, 고백한다. 이 글은 엄마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 결과물이란다. 상처를 드러내고 치부를 꺼내는 일이 조심스럽지만,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라 이렇게 너에게 털어놓는 것이란다. 진흙 속에서 보석을 찾듯, 고된 마음의 작업 끝에 꺼낸 글, 그 서사를 시작해 볼게.
지난 주말, 친구 딸 결혼식에 다녀왔어. 즐겁고 축복 가득한 자리였지만, 그날 있었던 일 하나가 자꾸만 마음을 쓰이게 했어.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 말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일은 엄마를 깊이 돌아보게 만들었고, 마침내 이 글을 쓰게 했단다.
일곱 명의 친구들 중 마지막으로 A가 결혼식장에 도착했어. 그 친구와 인사를 나누는 순간, 찬바람이 스치듯 서늘한 기운이 엄마를 감쌌단다. 그는 늘 밝고 리액션이 큰 친구였는데, 유독 엄마를 향한 태도만 얼음처럼 차가웠어. 왜 그런가 싶었지만, 결혼식 분위기상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지.
친구들과 둘러앉아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던 중, 그 친구가 불쑥 엄마에게 물었어.
"B 친구랑 통화 했다면서?
" 어."
"동창회 끝나고 내가 B랑 통화하면서 얼굴 관리 좀 하라 했거든. 그 말을 B가 너에게, 너는 그 말을 C에게, C는 또 D에게, 결국 D가 내게 전해 준 거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엄마는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어. 이미 석 달 열흘이나 지난 일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엄마는 B얘기를 꺼낸 기억조차 없었어. 그래서
“C 한테 B에 대해 말 한 적 없어.”
라고 반격을 했어. 그 순간부터 엄마 마음 안에 ‘화’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어. 밥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른 채 A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다고 확신했어. 그 착각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욕망이 불처럼 일었단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몰아가는 저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 자리에서는 말을 아꼈어. 작전상 후퇴였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C에게 카톡을 보냈어. 통화를 하려다 격앙 된 목소리를 친구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어.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엄마는 누명 쓰는 일이었거든.
“A 친구 걔는 왜 그런다니?
B친구 얘기 너한테 한 적 없는데 했다고 하더라.
곧바로 답장이 왔어.
“네가 나한테 B친구 얘기했어. 피부 관리 좀 하라고 했다면서.”
짧은 답글을 읽으면서 엄마는 소스라쳤어.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거든. 정확히 말하면, 지금도 그 말을 했던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 비밀을 요하는 중요한 말이 아니었기에 기억에서 지워졌나봐.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엄마가 분명히 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던 말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었어. 엄마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말 한마디가, 친구들 사이를 돌고 돌아 불씨가 되었고, 결국 그 불은 엄마 이름으로 붙어버린 것이란다. 누가 먼저였는지, 누가 더 나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결국 ‘불을 낸 사람’이 엄마로 지목되었다는 사실만 남았지.
그제서야 느꼈단다. ‘엄마가 입방정을 떨었구나.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파문이 되어 돌아오는구나.’ 동창회 끝나고 C친구랑 통화하면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건넨 말이었을 텐데(...) 뒷담화가 아니라 마음을 건넨 거였을 텐데(...)내 탓보다는 상대를 탓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앞서기에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하는 거겠지.
C친구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D친구에게 가볍게 건넨 말이었을 텐데, 별 말도 아닌 말이 돌고 돈 게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았어. 처음에 그 말을 뱉은 친구 탓을 했다가, 또 그 다음에는 다른 친구를 원망했다가, 마음 속이 실타래처럼 마구 헝클어졌어. 큰 일을 여러 번 겪어 본 엄마였는데 이 문제가 결코 쉽지가 않더구나. 무심한 사람처럼 감정을 속절없이 흘려버리려 했지만, 엄마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어. 잠을 편안하게 잘 수도 없었고, 당연히 입맛도 사라졌어. 바늘에 손가락을 찔렀을 때 따끔한 느낌을 떨쳐내지지가 않았어.
마침내 엄마가 찾은 안식처가 글쓰기였어. 그 날의 내용을 쭉 써 보았단다. 쓰는 동안 심장이 요동을 쳤고, 어떤 대목에서는 키보드를 누르는 손끝에 힘이 과하게 들어 가곤 했어. 그렇게 단숨에 글로 써보니 그 일을 타자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 글은 감정을 봉인한 상자처럼, 잠시 그 아픔을 고립시키고, 다시 끄집어내어, 스스로를 마주하게 해 줬거든.
글로 상황과 마음을 정리하다보니 엄마가 생각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방 마음에 비수로 꽂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단다. 지나가 듯이 가벼운 말일지라도 건너 건너 당사자가 들으면 충분히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단다. 에피소드 이후, 엄마는 지금 말을 삼키는 법을 배우고 있단다. 치부가 될 수 있는 사안을, 자식인 너에게 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낸 엄마. 이 글은 그런 의미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드는구나.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 지듯이 지금 엄마 심정이 그러하구나. 친구같은 딸이 있어 행복한 엄마다.
A친구에게 엄마가 보낸 톡이란다.
“내 입이 가볍긴 해도, 내가 한 말을 안 했다고 부정하는 사람은 아니야. 그날 너에게 ‘아니’라고 오리발 내민 게 참 부끄럽다. 내 입이 방정이었던 것도,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도, 진심으로 미안해. 결국 너와 나 사이에 벽을 세운 건, 내 입이었구나.”
제 글을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작가님들
앞에 쓴 글 제 실수로 삭제가 돼 버렸답니다. 작은 실수가 눈에 띄길래 수정한다는 것이 그만ㅜㅜ 라이킷과 댓글로 진부하게 관심 표명해 준 작가님들께 죄송한 마음과 동시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마시멜로 실험에서처럼 시공간을 이동하여 제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 결과 지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았답니다. 없는 얘기를 꾸며 낸 것도 아니었고, 비밀을 발설한 것도 아닌, '얼굴 관리' 좀 하라는 말을 전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파장이 일어날 줄 누군들 예상이나 했겠는지요?
댓글로 위로를 해 주셨던 <가을산, 캐리소, 김숲, 문가용, 페르세우스, 회복작가 이서온, 발자꾹, 숲song 꽃song, 박선유, 살랑하늘, 소위, 진아, 마스터 INTJ, 너나들이 작가님) 그리고 라이킷을 해 주신 100여 작가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