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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불길 속 서툰 사랑

아버지의 상흔을 톺아보다

by 능수버들

아이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옷을 태웠다. 제때 빨지 못한 옷 무더기가 마루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열악한 살림살이 속에서 그 옷들은 우리 가족의 중요한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깔끔하게 정리정돈 된 집안의 모습을 기대했던 아버지 눈에는 그것이 ‘꼴불견’이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옷 무더기를 마당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엄마의 심장을 겨누듯, 누런 종이에 성냥을 칙 그어 불꽃이 화르르 일자, 아버지는 그 종이를 옷더미 위에 툭 떨어뜨렸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길이 옷자락을 집어삼켰다. 알록달록한 나일론 천이 비명을 지르듯 바스락거렸다. 머리카락 타는 듯한 역한 냄새가 마당을 뒤덮었다. 아이는 숨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새 옷(학교 입학할 때 사준 꼬까옷)이 타들어 갈 때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이는 어떤 옷을 입고 학교에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창가에 앉아 까만 재로 변한 꼬까옷을 자꾸 떠올렸을 뿐이다.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못한 채 멍하니.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두메산골에서 온종일 논밭을 종횡무진하던 사람이 엄마였다. 해가 기울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밥을 했다. 텃밭의 푸성귀로 찬거리를 만들고, 젖먹이부터 두세 살 터울인 네 아이를 먹여야 했다. 열 사람 몫을 해내는 철의 여인이었지만, 아버지는 엄마의 그 모든 일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엄마가 부엌에서 밥을 할 때 아버지는 마땅히 주변 정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엄마의 헌신과 노고를 고마워하기는커녕 신처럼 더 완벽하게 해내기를 바라셨다.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무지와 폭력이 난무했던 아버지의 몹쓸 습성은 일찌감치 버렸어야 했다.


아이의 부모님은 60여 년 전, 추수가 끝나갈 무렵에 혼례식을 치렀다. 식을 올린 후 친정에서 사흘을 보낸 후 신혼집으로 갈 때 친정어머니가 인절미(햅쌀로 만든)를 해 주셨다. 그 인절미를 광주리에 이고 엄마는 40리를 걸어 신혼집으로 향했다. 머리 위엔 떡, 손에는 옷과 소품이 들어 있는 보따리가 하나 더 들려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20~30미터 앞서 걸을 뿐, 그 짐을 나눠서 들어주지 않았다. 새색시는 새신랑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그저 알아서 짐을 들어주기를 바라며 소매로 땀을 훔치며 묵묵히 걸었다.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고, 아버지의 뒷모습에는 야속함만 차올랐다. 떡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짐을 나눠 들지 않는 남자의 야속이었다. 16킬로미터를 걸어 도착할 때까지, 27세의 젊디 젊은 남자는 새색시에게 “눈길은커녕 힘들지 않으냐”라고 묻지도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 아이가 아버지께 여쭈었다.

“왜 그때 엄마 짐을 들어주지 않으셨어요?”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그때는 뭘 몰라서 그랬다(...). 시대가 그랬거든. 색시 짐을 들어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

하지만 그 말은 아이의 마음에 단 1퍼센트도 와닿지 않았다. 그건 단순한 젊은 날의 실수가 아니라, 사랑을 배우지 못한 시대의 무지였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러한 오류 속에서, 세대와 정서의 틈을 메우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왜 그러셨을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기에 아이는 종종 생각했다. 혹시 혼례식 날 엄마의 흉터를 보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마음이 얼어붙었던 건 아닐까? 아랫입술과 턱으로 이어진 흉터, 그 흉터가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건 아닐까? 아버지는 그 흉터를 본 뒤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고, 그 불편함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스스로를 옭아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난제 앞에서 어떤 마음을 내어야 될지에 대해 심오하게 고민하였을 것이다.


부모님은 중매로 혼인을 하였다. 중매쟁이는 스물세 살 처녀의 입술 흉터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으로는 ‘그 흉터 값을 해야 한다’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는 “처녀 집이 부자니, 논 한 마지기 값은 챙겨 올 겁니다”라며 희망 섞인 말을 아버지 양어머니한테 던졌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논도, 돈도 내어주지 않았다. 대신 오동나무로 짠 혼수품(압다지)을 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 시절, 여자는 온전히 사람으로 대접받기 어려웠다. 만약 데인 아이가 ‘아들’이었다면, 만석꾼이셨던 외할아버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흉터를 감쪽같이 치료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딸이었기에, 옷으로도 가릴 수 없는 상처였음에도 냉담하게 그대로 두었다.


아이가 마흔이 막 지났을 무렵 고모집에서 하룻밤 잔 적이 있다. 부모님 혼롓날의 단상을 둘째 고모가 술회해 주었다. 감성이 풍부한 고모는 한숨을 쉬기도 하고 몸을 움찔하기도 하면서 40년도 더 지난 장면을 마치 지금 막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기억을 풀어내었다. 나는 신부가 되었다가, 신랑이 되었다가, 하객이 되었다가, 고모가 되기도 하면서 그 이야기를 숨죽여 들었다.


“흰 저고리와 연분홍 치마를 입은 신부가 입장하는데 괜스레 마음이 설레더라. 여자로서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감정으로 혼례식을 지켜보았단다. 신부가 얼마나 고울까를 상상하면서."


"족두리를 쓰고 연지곤지를 곱게 찍은 신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세상에나 신부의 입술(...)! 이 눈에 들어온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지.”


고모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부의 아랫입술 밑으로 드러난 흉터를 보고 소스라쳤단다. 눈을 의심하며 다시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데인 상처였지. 몹시 당혹스럽고, 한편으로는 신부가 안쓰러워 도무지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복잡했단다.

‘우리 오빠가 왜(…)?’라는 생각 들었지.”


고모의 시선처럼, 하객들의 마음에도 한숨과 연민이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중매쟁이가 미리 귀띔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내보일 수 없었던 아버지. 그 곤란함이 부끄러움으로 변하고, 부끄러움이 서늘한 침묵으로 굳어졌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화상을 입게 된 사연은 이렇다. 엄동설한의 어느 날, 외할머니가 화로에 불을 담아 방으로 밀어 넣었다. 엄마의 큰오빠는 여섯 살, 동생은 이제 막 엉거주춤 앉을 수 있는 생후 6개월의 여린 유아였다. 오빠는 갸륵한 마음으로, 아기에게 온기를 나눠주고 싶었다. 아기를 안고 화롯불 앞으로 다가갔다. 아기의 작은 손을 펼쳐 불에 쬐어 주려던 순간, 뜻하지 않게 아이를 놓치고 말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는 속절없이 화롯불에 부딪쳤고, 아랫입술과 턱에 깊은 상처가 남았다. 그날 이후, 동생의 얼굴에 남은 화상은 오빠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죄의 불씨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아이의 큰외삼촌이 결의에 찬 듯 진중하게 아버지에게 불쑥 한 말씀을 던졌다.

“동생 입술에 화상을 입혀 자네에게도, 늘 미안했네.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네.”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낮고 진지하게 답을 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 처가 가슴 아파할까 봐, 단 한 번도 그 흉터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마땅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한때 분노에 휩싸여 아이의 꼬까옷을 태웠던 그 사람, 무자비했던 그 손이 한 여인의 상처를 지켜내기 위해 애쓴 손이 되어 있었다. 같은 불이라도 하나는 파괴를, 다른 하나는 치유를 만든다. 사람의 마음속 불길도 그렇다. 누군가는 타인의 삶을 태우고, 누군가는 그을린 자리를 덮어준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비로소, 엄마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 마음속에는 미안함과 애틋함, 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한 애정이 깊게 스며 있었다. 신혼 시절, 아버지가 엄마의 짐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은 흉터 때문이 아니었다. 부끄러워서였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체면이 마음보다 앞서던 시대를 살아낸 아버지. 그 이유가 정당하지는 않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통감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불길 속에 타들어가던 옷더미도, 외면당한 엄마의 짐보따리도 결국 한 사람의 미숙한 사랑이었다. 그 서툰 마음을 깨닫는데 반세기가 걸렸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이해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아버지 사후에서야 마침내 통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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