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교 Aug 07. 2024

용식이-5화

도매상이 되다

동대문 도매시장은 밤이 되면 더욱 활기차고 밝아진다. 아마도 우주에서 한국을 내려다본다면 동대문이 가장 밝게 빛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매시장은 밤 10시경에 오픈하며, 이 시간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관광버스들이 도매상가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소매상들이 올라왔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커다란 사입가방을 메고 피곤한 얼굴로 원하는 옷이 다 팔리기 전에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서두른다.

유명한 도매상 매장들은 오픈한 지 1시간 만에 모든 옷을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매장에 새로운 옷이 들어오면, 매장 직원들은 봉지를 열어두기도 전에 옷이 모두 팔리곤 했다.


이렇게 도매시장은 새벽 내내, 몇 번이고 새로운 옷이 들어오고, 판매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동대문 도매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그곳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용식이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공장은 밤새도록 옷을 만들어 도매시장에 내보냈고. 도매상들은 매장 안의 쓰레기통에 돈을 구겨 넣으며 돈을 벌었다. 아침이 되면 은행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그 돈을 수거해 갔다. 도매시장은 유명 연예인들조차 돈을 잘 번다는 이유로 찾아오는 곳이었지만, 밤새워 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경쟁의 현장이었다.


원하는 물건을 구매한 지방 소매상들은 자기 몸집만 한 사입가방에 옷을 구겨 넣고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탄다. 그들은 피곤 때문인지, 돈을 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상기된 얼굴이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검은 옷 가방들만이 가득 차 보인다. 사람들은 옷과 옷 사이에 짓눌려 간신히 숨만 쉬며 몇 시간을 차로 이동하여 집으로 돌아간다.

용식이는 그들의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이들에게는 무거운 짐과 같은 현실이 존재했고, 동시에 희망의 무게도 함께 있었다. 용식이는 자신이 짊어지는 옷들이 그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그 무게만큼의 희망도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도매시장에서의 삶은 용식이에게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 공장에서 원단 뭉치 속에서 놀던 기억처럼, 지금도 그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날이 밝아오면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다른 이들이 출근할 때 그들은 퇴근하는 것이다. 동대문주변의 고깃집은 아침에 문을 연다. 그곳의 사람들은 아침에 고기를 굽고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 하루를 마감한다.


용식이는 도매시장에서 일하는 동안 시간이 나면 좁은 골목길에 있는 식당가로 들어가 밥을 먹었다. 식당 골목은 커다란 짐을 든 소매상인들과 쟁반을 몇 개씩 머리에 얹고 바쁘게 움직이는 조선족 아줌마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억센 소리로 "좀 비키소. 비키라오" 라며 외쳤고, 사람들은 몸을 피했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옷 짐 때문에 길이 더 좁아져 지나가기가 어려웠다. 용식이는 그런 사람들 사이를 뚫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식당 안은 밥을 먹는 사람들과 옷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땀 냄새와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냄새, 그리고 옷에서 나오는 먼지가 섞여 식당 안은 흐릿하고 숨이 막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용식이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간신히 끼니를 때우며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 지 3년이 되었다. 용식이 조금씩 모은 돈으로 매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장사가 잘 된다는 도매상가에 입점하기는 용식이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용식이와 같이 성공의 꿈을 안고 입점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상가는 입점 신청자들에게 사업계획서와 포트폴리오, 그리고 많은 경력을 요구했다.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하려는 용식이에게는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상가 관리인에게 뒷돈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돈만 받고 모른 척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용식이는 이렇다 할 방법이 없어서 무작정 건물 꼭대기에 있는 관리 사무소에 찾아갔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 본 조폭들이 운영하는 사채 사무실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아무도 용식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용식이는 그나마 인상이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남자는 30대 중반으로 보였고, 잘생긴 얼굴에 깔끔하게 뒤로 넘긴 머리를 하고 있다. 왼쪽 팔뚝에는 파란 용문신이 있지만, 용식의 시선은 그가 손에 만지작거리고 있는 벤츠 마크가 달린 차키에 머물렀다. 최실장이라는 사람이었다.


용식이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최실장은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입점 신청하려고 합니다. “


최실장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누구 소개로 오셨어요? “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아뇨. 하지만 사입자입니다. 경력도 오래되었고 부모님도 의류 공장을 운영하십니다. 잘할 자신 있습니다.”


“아이고 개나 소나 찾아오는구먼.”

"소개비 가져왔어요?"


최실장의 말에 용식이가 머뭇거리자 남자는 다그치듯 언성을 높였다.


"소개비. 소개비 몰라요? 소개비를 줘야 알아보지"


한 손은 의자에 걸쳐있었고, 다른 한 손은 잡고 있던 볼펜을 툭툭 내리치며 말했다


"백만 원입니다"

"아 백만 원이요. 그러면 입점할 수 있나요? “


최실장은 말했다.


“그건 아니고, 우선 대기리스트에 올려둘 테니 전화가 가면 딱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입정대상자가 되면 오백만 원을 가져오세요. 그래야 입정 확정됩니다.”


최실장은 용식이가 준비한 사업계획서와 포트폴리오를 한쪽에 던져두고 담배를 물었다.  그는 이곳에서 여러 개의 매장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으며, 자신이 소유한 매장의 도매상들은 모두 대박을 터뜨렸다고 자랑했다.



한 달이 지났다. 용식이는 틈만 나면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최실장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용식이는 다시 최실장을 찾아갔다. 최실장은 용식이를 처음 본 사람처럼 대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용식이는 말했다.


“아. 한 달 전에 입점 신청한 정용식이라고 합니다. 연락이 없으셔서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요”


최실장은 책상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찾듯이 뒤적였다. 서랍 속에서는 반쯤 구겨진 용식이의 사업계획서가 나왔다. 최실장은 무심하게 말했다.


“아! 사입자라고 했지. 어떡하나? 요즘 자리가 안 나와요. 최소한 1년은 기다려야겠는데”


최실장은 용식이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다시 한쪽에 던져놓고 담배를 물었다. 용식이는 말했다.


“그럼 저번에 드린 소개비는 돌려주세요. 입점 포기할게요”


최실장은 담배를 입에 물고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날카로운 목소리 돌변했다.


“이런 사입자라는 새끼가 아무것도 모르네? 환불이 어디 있어? 물건 사러 왔냐?

 넌 여기 절대 입정 못해. 알겠어!”


순식간에 사무실에 있던 검은 양복들의 시선이 용식이에게 집중되었다. 용식이는 힘없이 저항했지만, 결국 사무실 밖으로 쫓겨났다.

혼이 빠진 것처럼 동대문 시장을 걷고 걸었다. 그때 광장 앞에서  오팀장을 만났다. 여전히 핏기 없는 얼굴의 오팀장을 보고 용식이는 반가운 마음에 그날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오팀장은 굵은 목소리로 반응했다.


"에이, 나쁜 놈들. 그거 다 짜고 치는 거야. 거기 들어가는 사람들은 다 인맥으로 들어가. 그 놈들에게 아무리 돈을 갖다 줘도 소용없어. “


오팀장은 무엇인가 생각난 듯 용식이의 어깨를 내리쳤다. 살이 없는 오팀장의 손은 마치 쇠몽둥이가 내리치는 것처럼 아팠다.


"아! 아야. , "


오팀장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저기 입점해. “


주황건물이 보였다. 이제 막 공사가 끝난 새 상가였다. 오팀장은 말했다.


"새 상가라 입점 상인들을 받기 위해 저렴한 임대료로 입점 신청을 받는다고 하더라. 그리고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물론 손님이 없다는 단점도 있지만 “


용식이는 힘없이 말했다.


"에이 손님이 너무 없잖아요. “


오팀장은 단호하게 답했다.


"손님이 없어도 네가 사입자 아니냐! 손님은 네가 끌어오면 되는 거야. "


용식이는 오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능력 있는 사입자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새 상가에 입점하는 것이 도전이지만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용식이는 다시 한번 용기를 얻었다.  오팀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새 상가에 입점하기로 결심했다. 용식이는 사입자로서의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에 하기로 마음먹었다.




용식은  새로 생긴 크고 깨끗한 여성복 전문 도매상가에 5평 남짓한 매장을 얻었다. 이천만 원의 보증금과 월세 이백만 원, 도매상가 시세치 고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매장은 손님이 가장 많이 오는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이가 칠십은 훌쩍 넘은듯한 부동산중개인은 말했다.


"장사꾼이 자리탓하면 안 돼!. 돈 버는 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달렸어."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망하는 것도 젊을 때 해보는 게 좋아 “


용식이는 불쾌감을 느꼈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다. 왜 청춘은 아파야 하는 것일까? 왜 실패가 당연시되는 것일까? 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계약이 끝나자 부동산 중개인은 법정 수수료를 훨씬 넘는 300만 원을 요구했다.


"사입자 출신이니까 잘 알 거야"


중개인은 자리가 한정되어 있고,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는 현실을 강조했다. 유명 상가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이곳밖에 자리가 없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매장과 상가를 연결하며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고 있었다. 용식이는 상가 사무실의 검은 양복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화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